대치사거리 스타벅스에서

휴직일기, -146일(2021. 10. 5)

by 낙산우공

새벽 5시에 일어나 레슨이 있는 딸아이를 왕복 한 시간 거리의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어제 잔여백신으로 2차 접종을 마친 탓에 오른쪽 팔뚝이 욱신거려 내내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왼손잡이라 오른손 조작이 서툴렀는데 별생각 없이 1차 접종을 왼팔에 맞아 고생을 했기에 어제는 작정하고 오른팔에 주사를 맞았다. 덕분에 밥 먹을 때 불편한 것(난 왼손잡이지만 보수적인 어머니를 둔 탓에 젓가락과 연필은 오른손에 쥔다)을 빼고는 운전하는데 문제가 없다.


집에 돌아와 아내의 출근을 지켜보다 잠시 눈을 붙였다. 8시 15분에 깨어나 밀린 빨래를 돌리고 아들을 깨워 아침을 먹였다. 지난 주말에 알레르기가 재발한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들러 진단서와 처방전을 받았다. 연휴가 지난 병원은 밀린 진료환자와 백신접종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서서 한 시간 가량을 기다려 진료를 마치고 약을 지었다. 오랜만에 오전에 짬이 난 아들을 위해 평소 좋아하는 칼국수집에서 수육을 곁들여 먹이고(너무 비싸 난 두 점만 먹었다) 저녁에 먹을 도시락을 주문하여 집에 돌아왔다.


주문한 배달 도시락을 받아 아내가 준비해 둔 과일과 함께 도시락 가방을 쌌는데 아내가 간혹 빼먹는 숟가락을 챙기느라 물병을 빠뜨렸다. 물을 많이 마시는 아이는 아니지만 기름기 많은 스테이크 볶음밥을 먹고 귤로 갈증을 해결해야 한다. 두 시간 만에 사태를 인지하고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톡을 보냈다. 물론 오후 수업이 끝나는 5시 반에야 확인할 테지만… 아무튼 도시락을 챙겨 아이를 강남에 위치한 입시학원에 내려주고 오후에 예약된 병원 치료를 위해 2시에 나오기로 한 딸아이의 학교로 향했다.


딸아이를 픽업하여 가까운 분식집에서 가볍게 요기를 시키고 다시 강남의 병원에 갔다. 아이가 물리치료와 체외충격파 치료를 마치면 대략 5시쯤 될 것이다. 첫 대학입시 실기고사가 나흘 앞으로 다가온 딸아이는 시험 전에 속눈썹 연장술을 받는다. 공식적으로 대학에서는 실기고사 때 화장을 금지하고 있으나 이 정도는 양해가 된다고 한다. 성형수술까지 미리 받는 아이들도 있고 무용 공연장의 화려한 분장을 떠올리면 애교로 봐줄 법도 하다. 오늘 저녁에는 집 근처 네일숍에서 그 시술을 받는다.


지금은 오후 4시, 딸아이의 병원 치료를 기다리며 난 대치사거리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벗 삼아 졸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저녁 6시 반에 딸아이를 네일숍에 데려다주고 아내와 바통터치를 한 후 집에서 한숨을 돌릴 예정이다.(아뿔싸! 오늘은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일… ㅠ)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시술이 끝날 때 아이와 아내를 데려와 간단히 저녁을 때우면 10시에 끝나는 아들을 데리러 왕복 한 시간이 걸리는 미술학원에 갈 것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휴직 일정이라니! 늙은 내 몸엔 백신 후유증 따위가 들어설 곳이 없다.




오늘의 감상,

아들과 점심을 먹으러 들른 단골 칼국수집에서 유난히 목청이 크고 거들먹거리는 중년의 사내들을 마주하였다. 강북의 골프연습장은 몇 야드까지 나오냐는 둥 도무지 알아들어먹기 어려운 취미생활을 떠들어 대는 그들 때문에 우리는 침묵과 함께 국수를 흡입하였다. 비좁은 식당 테이블 사이로 침을 튀기며 담소를 나누는 중년 네 명의 점심식사가 유난히 거북하였던 하루. 그들은 서울 근교의 별장 사진을 돌려보기도 하였다. 아마도 수육에 소주 한잔쯤 걸치겠지. 팔자 좋은 중년 남성들을 보며 그들과 비슷한 연배일 것 같은 나의 하루 일과가 묘하게 오버랩되었다. 물론 그들이 부럽진 않았다. 그저 조금 거슬렸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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