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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Oct 20. 2021

미친년 널뛰듯

세시풍속을 존중하는 자세(2016. 7. 8)

미친 여자가 재미도 모르고 널을 뛴다는 뜻으로, 멋도 모르고 미친 듯이 행동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속담이다.  다분히 성차별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멋도 모르고 미친 듯이 행동하는 자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널뛰기는 여자들의 놀이이기 때문에 붙여진 말이겠지만, 아무튼 공평하지는 않다. 여성비하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미친놈 삽질하듯"과 같은 말이 함께 쓰여야 할 것 같다.

미친놈 삽질하듯, 미친년 널뛰듯...

좋은 대구인 듯하다. 널뛰기는 테마파크가 없던 시절 롤러코스터를 대체하는 놀이기구로서 그네와 쌍벽을 이룬다. 삽질은 고래로 대책 없고 도리 없는 일을 지칭한다. 따라서 삽질이 더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일이다. 미친년이 미친놈보다 한수 위라는 말이다. 이제는 상욕이 되어버린 년, 놈을 자꾸 지껄이는 이유는 내 기분이 고약하게 불편한 탓이다. 고약한 일을 맞닥뜨리면 기분이 불편하다.


거두절미하고 미친년 널뛰듯 한다는 것은 종잡을 수 없는 행동으로 상대를 혼란스럽게 하여 일을 그르칠 때 자주 인용된다. 그들은 널뛰는 기분으로 신이 나 있을지 모르나, 혼자 널뛰기로 끝나면 좋을 일을 상대에게 지시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상대에게 널을 뛰라는 지시라면 차라리 낫다. 문제는 널뛰듯 오락가락하는 지시로 혼란을 가중시키어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일을 몰아간다는 것이다. 정말 치명적이다.


이렇게 보면 삽질이 널뛰기보다는 한수 위라는 생각도 든다. 미친 듯이 삽질을 하고 나면 어마어마한 구덩이가 파인다. 그것이 전혀 쓸모없는 일이었고 오히려 구덩이 때문에 빗물이 고이는 등 폐해가 있다면 다시 흙으로 덮으면 그만이다. 삽으로 구덩이를 파는 일보다는 흙으로 덮는 게 훨씬 더 수월하다. 고로 미친놈을 만나면 헛고생을 했을 망정 큰 피해를 입지는 않는다. 반면에 미친년이 널뛰듯 하는 짓은 당할 재간이 없다. 아, 또 여성비하적인 발언을 내어 놓았다.


하필이면 내 고약한 기분을 만드신 분이 여성이었고, 유독 여성 상관으로부터 삽질을 능가하는 널뛴 지시를 받은 경험이 많은 내게 왜곡된 성차별 의식이 고착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미친놈이든 미친년이든 관계없이 미친 것을 만났다는 사실이고, 그놈 또는 그년의 지시가 단순한 삽질이 아니라 도대체 수습 불가한 널뛰는 결정이라는 사실이다.


널뛰기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을 것이다. 강약을 조절하여 클라이맥스를 맞이하고 이내 서서히 강도를 줄여 다음 차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 말이다. 미친년이 널뛰듯한다는 말은 아마도 미친년에게 이런 상식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운 없게도 미친년 뒤에 줄을 선 죄로 차례를 하염없이 기다리었던 사람의 입에서 유래된 것이 아닐까?


사람이 미치면 대체로 괴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정신병동의 간호사들은 완력 좋은 남자들이 많은 것이다. 그런 미친년이 널을 뛰니 강약 조절은 고사하고 도무지 끝이 없는 것이다. 끝없는 쾌락은 파멸이다. 제아무리 널뛰기가 황홀하여도 제아무리 불같은 남녀관계가 짜릿하여도 끝없이 달리는 폭주기관차는 반드시 폭발하거나 추락하거나 탈선하기 마련이다. 아무 도리 없다. 미친 것을 만났을 땐.... 그저 피하고 피하고 또 피해야 할 뿐.


그러나, 한편으로 정말로 서글픈 것은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대부분의 미친 것들은 미친 척하는 것이며, 널뛰듯 내리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지시는 더 사악하고 저열하고 비겁하며 지질한 이유에서 비롯된 치밀한 행위라는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 과한 욕을 과하게 썼다. 사실 더한 말을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나마저 광기에 빠져들 순 없기에 이만 줄인다. 혹 이 글이 불쾌하셨을 분들께는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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