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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Oct 31. 2021

맥락과 행간

소통의 기술(2012. 9.14)

'나무는 보면서 숲은 보지 못한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동일한 현상을 보고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결과를 예측 못하고 대비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킬 때 주로 쓰는 말이다. 가혹하다고 할 수 있지만, 사회생활은 늘 다각적인 시각과 해석이 요구되는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단지 성실하게 업무에 임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요령 있고 센스 있는 사람이 더 각광받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하나를 알면 둘을 생각해 봐야 하고, 나무를 보았으면 숲을 어림으로라도 짐작해야 하는 것이 맞는 이치이겠으나, 그렇다고 둘을 안다고 떠들다가 하나를 놓치고, 숲만 지껄이다가 나무를 잊어버리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짓이다. 큰 그림을 그렸으면 세부 전략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그렇게 기획보고서에 단련된 이들은 실행에 취약하고, 그 취약함은 기획의 허점으로 고스란히 돌아온다. 기획은 보고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성과를 위한 것이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기획이 실행 가능해야 한다. 100% 실현은 아니라도 최소한 작동 가능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매끄러운 프리젠테이션과 깔끔한 보고서보다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태생적으로 방향감각이 떨어지는 나에게 길눈이 좋은 사람이 조언을 해주었다. 현실의 나는 2차원 평면 위에서 길을 찾지만, 나의 시각을 3차원으로 전환하면 길 찾기가 한결 쉬워진다는 것이다. 하늘 위에서 길을 내려다본다고 생각하고 길을 찾아가라는 것. 그럴듯한 말이지만, 실행에 옮기자면 말 그대로 차원을 바꾸는 일이다. 머릿속에서 눈높이를 구름 가까이 올리려고 버둥거리는 순간 앞차와의 거리는 보이지 않게 된다.

 

현실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을 분류해보면, 이렇듯 눈앞의 현상에만 집착하거나, 커다란 담론만 떠드는 사람으로 나뉜다. 이론과 현장에 모두 강한 사람이 그만큼 드물다. 복잡해진 현대사회의 구조적 한계이고, 분업화로 인해 빚어진 단절의 결과일 것이다. 갈라파고스 제도와 같이 우리는 대륙에서 왔으나 이제 섬 생활에 익숙해져 대륙의 광활함을 잊어버렸는지 모른다.

 

짧은 직장생활의 경험을 읊어보자면, 업무추진에서 필요한 덕목은 딱 두 단어로 요약된다. '맥락'과 '행간'. 맥락은 나열된 현상들의 연결고리를 이해하는 것이고, 행간은 세밀한 계획의 빈틈을 찾고 숨겨진 부작용(negative effect)을 잡아내는 일이다. 그래서 '맥락'은 '짚는다'라고 하며, '행간'은 '읽는다'라고 한다.

 

맥락은 아무리 읽으려 해도 읽히지 않는다. 읽는 것만 가지고는 파악이 안 된다. 읽은 내용을 꾸준히 복기하다가 큰 줄기를 짚어내는 것이다. 땅속에 있는 수맥을 발견하듯이 말이다. 수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존한다. 그래서 짚어야 한다.


행간은 아무리 짚으려 해도 짚이지 않는다. 문장과 문장 사이를 아무리 짚어보아도 빈칸만이 짚이며 시야를 가리기만 한다. 암호를 해독하듯 문장 사이를 꼼꼼히 읽다가 누락된 글자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읽어야 한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 중에 가장 한심한 이는, '맥락'을 읽으려 하고, '행간'을 짚으려 하는 이다. 그들의 과도한 업무 의욕과 열정은 주변에는 재앙이다. 이들의 업무 습성이 구제불능이라면 국가가 나서서라도 정리해줘야 한다. 정말 누가 좀 말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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