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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Oct 30. 2021

명품 필기구에 대한 상념

취향의 발견(2015. 1. 5)

나는 명품에 대한 거부감이 없지만 한편으로 집착도 없다. 명품은 그 값어치만큼 혹은 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제법 뛰어난 성능 혹은 심미적 우수성을 지니고 있다. 그보다는 못하더라도 크게 기능적으로 뒤떨어지지 않는 중저가 제품을 선호하는 개인적인 성향 탓도 있으나 난 명품으로 칠갑을 하고 싶은 마음도 그것을 위한 엄청난 구매력을 보유할 혹은 과시할 의사도 없다. 특히 의류의 경우 제아무리 명품 브랜드라도 결국 정해진 수명이 있기 때문에 절대 명품을 구입할 생각이 없다. 차라리 유명한 장인의 맞춤형 정장이나 코트, 셔츠를 입는 편이 내겐 보다 현명한 선택으로 느껴진다. 물론 이조차 아직 시도해 보지 못했다. 맞춤형 정장을 입어야 할 만큼 격식 있는 자리에 참석할 기회가 없기도 하다.

 

그런 내가 보유한 명품이 딱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만년필, 하나는 볼펜이다. 필기구에 대한 나의 집착은 타고난 메모광인 탓도 있겠지만, 펜 끝에서 전해오는 짜릿한 필기감을 양보하지 못하는 사치스러운 성향 때문이리라. 구두, 가방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여인네들의 심리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내 필기구에 대한 집착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옷은, 가방은, 구두는 혹은 모자는 나에게 기능성이나 미적 가치에서 큰 차이로 다가오지 않는다. 내 둔감한 패션감각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나미 153의 볼펜 똥은 내게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을 준다. 견디기 어렵다.

 

컴퓨터, 태블릿,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우린 카드 결제 서명을 제외하고 손가락 근육을 동원하여 필기를 할 기회가 거의 없어졌다. 편지도 전자메일의 등장과 함께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다.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수첩과 다이어리도 상당 부분 스마트기기의 기능에 흡수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육필의 감각을 잊지 못한다. 대부분의 글을 전자기기에 의존하여 작성하지만, 여전히 가방에는 두툼한 다이어리를 넣고 다닌다. 주간 스케줄을 꼼꼼히 정리하는 습관도 메모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육필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탓인지 모른다.

 

초등학교 시절 3학년까지는 연필을 의무적으로 사용했고, 필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 4학년 무렵부터 선생님께서 가느다란 샤프펜슬을 허용했다. 그리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볼펜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지우개가 필요 없는 볼펜을 쓰면서 조금 어른이 된 듯한 우쭐함을 경험했다. 전 보다 빼곡하게 줄이 쳐진 혹은 줄이 아예 없는 새하얀 노트를 쓰면서 대학생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특히 영어시간에 필기체를 배우면서 싸구려 만년필을 경험했고 그 멋들어진 필체만큼이나, 종이와 펜촉이 맞닿는 소리와 감촉에 매료되었다. 이것이 실사의 힘이 아닐까.

 

나는 볼펜의 경우 볼이 두툼한 빅볼을 선호하고, 만년필의 경우 가늘고 날카로운 펜촉을 좋아한다. 볼펜과 만년필은 생김새만큼이나 감촉과 필기감이 다르다. 그리고 각각의 느낌에 나름의 매력이 있다. 아직도 2백 자 원고지에 만년필로 글을 쓰는 작가가 있는 것은 그 필기감을 사랑하는 고급스러운 취향을 버리지 못하는 탓일 것이다. 장문의 글을 쓸 때, 혹은 보고서를 쓸 경우 이제 육필은 끼어들 틈이 없어졌다. 전자기기의 놀라운 기능과 편집 능력과 속도의 격차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한 새로운 취향이 있으니 바로 키보드에 대한 집착이다. 손가락 끝에 전해오는 감각, 자판을 두드릴 때 나는 소리, 하나의 글자를 완성하고 다음 글자로 넘어가는 순간의 찰나에 전해오는 여운의 차이는 기계식 키보드가 고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수요층을 형성하는 이유일 것이다.

 

키보드 자판의 차이는 필기구의 차이와 유사하다. 그래서 난 회사에서 지급하는 키보드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나를 의아스럽게 보는 시선이 없지 않지만, 구두나 운동화 수집광과 다를 바 없다. 그 미묘한 차이를 느끼는 감각이 유별날 뿐이며, 그 차이로 인해 행복하고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우연히 선물 받은 기념품용 볼펜에서 의외로 훌륭한 필기감이 전해 올 때 나는 횡재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몇 자라도 더 적어보려고 메모지를 앞에 놓고 쓸데없는 궁리를 하곤 한다.

 

이렇게 사는 일에는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보잘것없는 것에서 충만한 행복을 느끼는 일은 기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갑고 감사해야 할 일인지 모른다. 그 소소한 즐거움마저 없어지면 내 삶이 도대체 얼마나 더 건조해질 것인가 말이다. 당신이 마흔 하고도 네 살을 더 먹어가는 시기라면 삶에서 느꼈던 짜릿한 감각을 마흔네 가지 정도는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면 맞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크리스마스의 흥분, 생일날의 충만함, 여자 짝꿍이 바뀔 때의 설렘, 알콩달콩 선남선녀의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감상....

 

우리가 잃어가는 것들은 우리가 성취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그 걸 값으로 환산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가치를 이미 망각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느낄 뿐이다. 내가 가진 소소한 감각의 예민함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너무 반가워 이제 글로 남기려 한다. 분명 그마저도 시큰둥해지는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고, 어떤 것을 즐겼는지... 까먹기 전에 꼬박꼬박 남겨보자. 갱년기 초기에 접어드는 40대 중반을 슬기롭게 넘기고 싶다. 이렇게 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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