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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Nov 01. 2021

심정수를 추억하다

가족이란 무엇인가(2020. 8.20)

제목만 들으면 혹시 이분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놀라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은퇴  아주 오랜만에 근황을 담은 인터뷰 영상을 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감상이 있어 글을 남길뿐이니 오해는 말아 주시길... 이분은 미국으로 이민 가서 아주 건강하게 살고 계신다. 나이에 비해 일찍 얻은  아들이 미국에서 야구선수로 활약하고 있으며 첫째가 해외파 트라이아웃을 통해 KBO 진출을 모색하고 있어 겸사겸사 기사가 났을 뿐이다.

그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은퇴를 하였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은퇴 이후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확인해  기회는 없었다. 보통의 KBO 리그 스타플레이어들은 은퇴  지도자의 길을 걷거나 해설 위원이 되기 때문에(아주 간혹 예능인이 되기도 하지만) 선수 생활을 접더라도 쉽게 방송을 통해 만날  있다. 그러나 심정수 선수는 부상 악화로 인해 아쉽게 은퇴를 하였고,  이후 국내를 떠났기 때문에 전혀 소식을 접할  없었다.

특히 그는 세 곳의 구단에서 활약하였지만 내가 가장 싫어하는(나는 원조 LG 팬이다) 두산(당시 OB) 베어스 출신이었기 때문에 굳이 인터넷 검색을 해서라도 근황을 알고 싶을 만큼 관심의 대상이 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정수는 이승엽에 버금가는 장타력과 성실함으로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린 몇 안 되는 프로야구 선수였다. 특유의 기마자세 타격폼과 안경을 걸친 진지한 인상 때문에 화려한 선수로 볼 수는 없었지만 굉장한 내공을 느낄 수 있는 탁월한 프로야구 선수였음은 분명하다.

이제 만 45세가 된 심정수 선수의 첫인상은 전보다 조금 말라 보였지만 그 이상으로 밝아 보였다. 경기 중에 보았던 진지한 인상과는 확연히 다른 그의 모습은 치열한 선수 생활을 벗어났기 때문으로도 보였으며, 현재 그의 삶이 매우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으로도 보였다. 굉장한 선수로 기억하지만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심정수라는 인물에 대해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미국이라는 다소 의외의 지역으로 야구와 인연을 끊은 채 떠났던 그가 10년 만에 저렇게 밝은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 내게는 생경함을 떠나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고졸 신인으로 프로야구에 진출한 탓에 비교적 이른 30대 중반에 은퇴하였지만 무려 15년 동안 정상급 활약을 했던 선수였고, 그만큼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웠을 것이다. 인터뷰 중간에 사업 실패 이야기가 섞이긴 했지만 현재 그의 삶은 빈곤해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꼭 경제적 상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의 눈에 비친 그는 곤궁하거나 빈한한 삶을 살고 있지 않았다. 그에게는 두 명의 야구선수 아들과 한 명의 늦둥이 막내아들이 있었으며, 한차례 결혼에 실패하긴 했어도 든든한 아내가 곁을 지키고 있는 듯했다.

그의 행복한 삶은 사고무친의 미국이라는 낯선 환경과 다복한 가족이 이루어낸 환상적인 조합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그는 야구계에 남았어도 10 이상은 주목받는 위치에 있었을 것이고 나름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어떤 이유로 미국 이민을 결정하였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선택은 참신해 보였다. 그는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갔고, 아마추어 야구 동호인을 대상으로 코칭을 하고 있었으며, 야구선수의 꿈을 키우고 있는  아들의 든든한 스폰서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가 국내에 남았더라도 과연 그와 같은 삶을 살았을까? 세상이 그를 평범한 가장으로   있도록 방치해 두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그는 한국에서 쌓아온 명성과 지위를 버리고 낯선 땅으로 떠났으며, 그곳에서 새로운 도전에 기꺼이 몸을 던졌다. 물론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밑바닥 인생부터 시작하는 여느 이민객과는 차원이 달랐겠지만, 그의 선택은 성공한 사람이 감행하기에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가 뭐라 하든 내 눈에 비친 그의 선택은 탁월한 것이었다.

어제 오랜만에 만난  직장 선배는 이제 10 정도 남은 현역의 삶을 아쉬워하며 예전 지인들과   자주 만나서 네트워킹을 하고 싶다는 소회를 말했다. 그간 만났던 수많은 좋은 사람들과 연락하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하며 정말 순수한 의도로 그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은퇴 이후의 고립을 걱정하는 말년 현역병의 모습으로 비칠 뿐이었다. 그토록 좋은 사람들과 연락하지 못하고 일에 빠져 살았다는 그의 변명은  가지로 해석할  있었다.


그토록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연락하지 않았던 것이고, 그들이 아쉽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외면해  것이라는....


이제야 그들이 아쉬운 것은 이제 내게 남아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고, 은퇴 이후에는 그마저도 연락이 끊길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한 탓이다. 우리는 고립을 두려워한다. 우리가 고립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립에 대한 두려움과 고독에 대한 두려움이다. 고립은 의지할 곳이 없음을 뜻하며, 고독은 시간을 메울 수단이 없음을 뜻한다. ,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세상살이에 믿고 의지할 곳과 마음을 나눌 곳이 없으면 인간은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지극히 이기적인 걱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내게 비친 심정수 선수는 믿고 의지할 곳과 마음을 나눌 곳이 하나였으며, 그것은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가족은 경제적 부양의무를 지는 가장을 중심으로 일방적인 관계로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각 구성원 하나하나가 서로에게 믿고 의지할 곳이 되며, 각 구성원 하나하나가 마음을 나눌 곳이 된다.

KBO 리그 진출을 위해 준비하는 큰아들을 바라보는 심정수의 시선은 행여나 실패할까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아니라 과연 꿈을 펼칠까 하는 기대와 흥분이었으며, 혹여 실패하여 그로 인해 아들이 좌절할까 노심초사하는 것이 아니라 꿋꿋하게 털고 일어나 자신의 삶을 개척할 것이라는 믿음과 사랑이었다. 그것이 느껴졌기에 나는 그의 중년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우리는 은퇴  생계를 걱정하고, 주변의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고립을 두려워하며, 아무도 찾지 않을  하염없이 남는 시간을 감당하기 어려운 고독에 공포스러워한다.


나는  답을 심정수에게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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