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성묘

휴직일기, -94일(2021.11.26)

by 낙산우공

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5월에 성묘를 다녀온 뒤 정신없는 입시철을 보내고 나서 드디어 홀가분한 기분으로 두 번째 성묘를 감행하였다. 6개월 전과 다른 것은 정말로 오랜만에 두 아이 모두를 데리고 가는 길이라는 것…


나는 첫 번째 나 홀로 성묘의 답사 경험을 살려 짧지만 알찬 성묘 일정을 소화해 내고야 말았다. 당초엔 아내를 포함한 네 식구가 1박 2일의 오붓한 여행을 즐기려 했으나 주말 외에는 시간을 내기 어려운 아내의 사정과 집에 혼자 남게 될 반려견 호두의 처량한 신세가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KTX 왕복 열차 편으로 전주역을 찍고 쏘카로 환승하여 성묘를 하였다. 금요일 출퇴근 시간대 KTX 열차 편은 예매가 쉽지 않아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늦은 오후에 돌아오는 짧은 당일치기 여행이 되었다. 전주역에 도착하여 다시 서울로 출발하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약 7시간…


그 일곱 시간 동안 유명하다는 콩나물국밥집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부안의 산소에 들렀다가 곰소염전 앞 찐빵집 카페를 거쳐 전주 중앙동에 위치한 비빔밥집에서 꽤 늦은 점심을 해결하였다. 역 앞에 차를 반납하니 열차시간까지 딱 9분이 남아있었다. 이런 칼 같은 일정을 매우 싫어하지만 흔치 않은 기회라 어쩔 수 없이 무리를 했다.


다행히 계획한 일정 이상을 소화해 내긴 하였지만 2016년에 3박 4일 같은 2박 3일 규슈 여행을 다녀온 이래 가장 정신없는 여행이었던 것 같다. 이 짧지만 알찬 여행이 아이들에겐 오랜만의 기차여행, 생애 첫 방문지 전주의 맛집 탐방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감격의 합격소식을 친히 전달하는 기회였을 것이다.


돌아오는 열차 안, 주로 자거나 먹기만 했는데 두 아이의 동공은 초점을 잃었다. KTX가 전 국토를 1일 생활권으로 만들어주었는지는 몰라도 우리의 몸은 아직 적응하지 못한 듯하다. 무리한 일정의 결과는 무한 피로감…


KTX 열차는 잦은 정차와 신호대기로 제 기능을 못한 지 오래… 돌아오는 열차 편이 제시간에 종착역에 들어선 기억이 없다. 오늘도 용산역에서 4분 이상 신호대기로 정차한 끝에 예정시간보다 5분 이상 지연되어 서울역에 도착하였다. 급한 마음에 용산에서 하차한 적도 많지만 오늘은 서울역에 주차해 놓은 차 덕분에 금요일 퇴근시간의 트래픽을 만끽할 것이다.


그렇게 나의 휴직기간 두 번의 성묘는 마무리되었다. 휴직한 지 보름 만에 씁쓸한 마음으로 홀로 다녀온 첫 번째에 비하면 풍족한 성묘길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은 90일 남짓… 석 달의 남은 시간이 내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알 수 없지만 적당히 연말 기운에 취해 한가로이 흘려보내진 않을 거라는 예감을 해보며 오늘을 마무리한다.




오늘의 감상,

일 년에 두 번 들르는 산소는 두 차례씩 벌초하는 것 말고는 아무도 따로 관리해 본 적이 없다. 항상 대책 없이 자라난 잡초 때문에 들어엎기만 서너 번을 했는데 올봄 대략 5년 만에 잡초와 뒤엉킨 잔디를 모두 걷어내고 새로 흙을 덮어 꾸몄다는 것을 5월에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채 6개월이 되지 않아 다시 엉망이 되어버렸다. 봄의 대공사도 나는 모른 채 지나갔지만 오늘의 형색을 보고 나니 한심하고 답답한 마음만 가득하다. 볕 좋은 고향 땅에 묻혀 있으나 이렇게 흉한 거죽을 덮고 계시다면 과연 그 시후가 평화롭다 할 수 있을까… 과연 자식의 도리란 무엇일까? 5년마다 한 번씩 새로 잔디를 까는 것으로 면피가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무거운 마음으로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개운하지 못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청개구리의 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