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휴직일기, -81일(2021.12. 9)

by 낙산우공

위드코로나가 무색하게 코로나19 바이러스와는 공존하기 힘들어 보이는 하 수상한 시기에 벼르고 벼르던 아이들과의 여행을 감행하였다. 서해안 영종도 앞바다나 당일치기 전주 맛집 탐방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아이들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엄마의 방학 때까지 기다리기 어려운 아이 둘과 함께 부산 해운대로 향했다.


다행히 딸아이의 친구가 동행하여 흡사 2인 2조의 “따로 또 같이” 여행이었지만 두 아이를 온전히 챙기기 버거웠던 나에게는 이보다 더 나을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였다. 아내와 반려견 호두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 되었지만 분리불안이 심한 호두에게도 직장에 메인 아내에게도 불가피한 일이었다. 이런 핑계가 스스로도 좀 무책임한 인상을 지울 수 없지만 말이다.


타고나기를 체력적으로 부실한 내가 아이들 셋을 책임진다는 것은 부담스럽기도 하였다. 다 큰 여자애 둘이 밤늦게 겨울 밤바다를 헤매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아들은 천성이 집돌이인 탓에 호텔방을 벗어나기 싫어하니 어떻게든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즐길거리를 찾아 꼬드겨 내야 했고, 둘만의 오붓한(?) 시간이 필요한 딸아이와 친구에게는 최대한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동선과 시간을 챙겨야 했다.


한편으로는 나 홀로 즐기는 여행이 아니었지만 나에게도 여행기분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렇게 양자를 조율하며 그럭저럭 2박 3일의 부산여행이 마무리되고 있다. 스무 살을 코앞에 둔 두 언니들은 모든 것이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그 아이들의 생기 넘치고 가끔씩 자지러지는 듯한 웃음과 하이톤의 목소리만으로도 보는 이에게 유쾌함이 전달되고 있었다.


낯가림이 심한 아들 녀석은 어색한 인사로 누나 친구와 짧은 만남을 가졌지만 여행기간 내내 누나의 행적을 궁금해하며 누나들의 노는 모습을 흉내 내었다. 이를 테면 그녀들의 뜬금없는 웃음포에 대해 절묘한 성대모사를 하면서 말이다.(아마도 이 모습을 제 누나가 보았다면 주먹 한방이 즉시 날아왔을 법하다.)


부산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은 역시 바다다. 전국에서 가장 긴 해변이라는 해운대는 남해안 특유의 적당하면서도 존재감이 분명한 파도와 우뚝 솟은 마천루와 절묘한 야경 만으로 연말의 흥분을 배가시킨다. 그것뿐이라 하여도 겨울의 부산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부산을 자주 와본 편이지만 언제나 바쁜 출장에 쫓기거나 뻔한 관광코스의 덫에 걸리기 일쑤였다. 이젠 조금 다른 느낌의 부산을 즐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지만 나의 다음 부산행은 기약이 없다.


이번 여행은 친구와의 여행을 간절히 바라던 딸아이에 대한 배려가 가장 컸다. 당초 엄마 둘이 함께 가기로 하였으나 직장에 메인 아내는 방학이 멀었고 합격소식에 잔뜩 달아오른 아이들은 그 시간을 기다려줄 여유가 없었다. 아들과의 여행을 계획하던 나는 절충안을 제시했고 몸이 달은 아이들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친구 아빠와의 여행이 불편할 법도 하겠지만 그녀들은 지금 찬밥 더운밥을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딸아이의 친구는 예고 3년을 단짝처럼 함께한 찐 친이다. 두 아이의 깊은 우정은 학교에서도 양쪽 집에서도 화젯거리가 될 만큼 보기 좋았다. 그런데 딸애 친구가 작년 하반기부터 부상에 시달리다가 급기야 입시 직전에 공황장애가 오기에 이르렀다. 워낙에 성실하고 재능이 출중한 아이였기에 집에서도 주변에서도 충격과 걱정이 컸다. 특히 친구의 슬럼프에 덩달아 힘겨워하는 딸아이 때문에 학교에서도 고민이 많았다.


그런 아이가 최악의 상황을 이겨내고 입시에서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특히 3주 전에 발표가 난 1 지망 대학에서 두 아이가 동반 합격하는 기적 같은 일(모두가 그렇게 말했다.)이 일어났다. 그런 아이들의 기쁨은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전달되었고 나는 이번 여행에 나서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피곤하지만 서울행 열차 안에서 나는 행복하다.




오늘의 감상,

올라오는 열차 안에서 딸아이의 마지막 합격소식을 접했다. 1 지망 대학에서 떨어졌을 때를 대비해 다소 무리를 하여 준비했던 2 지망 대학이었다. 입시 스타일이 딴판인 두 학교를 동시에 준비하며 아이는 친구들에 비해 두배 가까이 많은 레슨을 소화해야 했다. 3주 전 1 지망 대학에서 불합격했다면 아이는 오늘까지 마음 졸이며 여행 따위는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느긋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지만 역시나 합격소식은 기분이 좋았다. 여행의 피로를 풀어준 딸아이의 마지막 선물에 감사하며 오늘 저녁은 한잔해야 할 거 같다. 이젠 무려 80일간이나 나만의 시간이 남았다. 세계일주도 할 수 있다는 시간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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