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일기, -100일(2021.11.20)
지난 9월 초에 있었던 일이다. 아내가 주문한 청포도 포장 안에 난데없이 청개구리 한 마리가 발견되었다. 벌레든 동물이든 살아있는 종류는 잘 못 건드리는 체질 탓에 이 녀석을 끄집어내는 일은 이번에도 나의 몫이 되었다. 물론 나도 이런 일에 젬병이지만 그나마 우리 집에선 별 수 없다.
두 아이의 입시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예민했던 그때 이 녀석을 어찌 처리해야 할까 잠시 고민을 했다. 우선은 비어있는 락앤락 음식 통에 몇 군데 구멍을 뚫어 모셔두었지만, 내 집안으로 들어온 생명체이기에 함부로 다룰 수는 없었다. 처음엔 길러 볼까 하는 생각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지만 대략 난감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몇 년 전 하늘다람쥐를 키우며 깨달은 사실은 야생동물은 야생의 환경에서 서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녀석을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문제는 잘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보는 일이었다. 청개구리의 서식환경은 기본적으로 물과 풀이 있어야 했다. 언뜻 떠오른 것은 집 근처 성북천이었지만 인공적으로 조성된 곳이어서 비좁고 천적들이 많아 오래 버티기 힘들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멀리 교외로 나갈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다.
고민 끝에 둘째 아이를 강남의 학원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성수대교 북단에서 멀지 않은 중랑천에 들렀다. 한양대학교 뒤편 살곶이다리가 있는 천변은 도심 같지 않게 갈대밭이 무성하고 제법 넓은 개천이 흐르고 있다. 첫아이를 낳은 후 성수동에 4년 정도 살았던 덕분에 이곳이 바로 떠올랐다. 조금이라도 물가와 가까운 곳에 보내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주차를 한 뒤 한참을 걸어가 이 녀석을 놓아주었다.
하룻밤을 우리 집에 묵었던 청개구리는 밤새 꼼짝 않고 있어 걱정했던 것과 달리 뚜껑을 열자마자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갈대밭으로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제아무리 작고 하찮아 보이는 것이라도 생명이 있는 것들은 존중해야 한다. 그런 신념이 번거로운 걸음을 가능하게 했지만 내심 아이들의 입시가 걸렸던 것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아내에게는 농담 삼아 부러진 제비다리를 고쳐준 흥부이야기를 꺼냈다. 금은보화가 가득 나오는 박 씨 따위는 필요 없고 그저 우리 아이들 합격소식만 가져와 달라고 말이다. 한편으로는 박 씨를 기대한 놀부보다 큰 욕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덕분인지 두 아이는 감사하게도 모두 원하는 학교에 합격하였다. 그저 대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세상 일이 모두 뜻대로 되지 않기에 이 경사스러운 일은 굉장한 행운이기도 했다. 호사다마, 새옹지마라 섣부르게 흥분할 일은 아니지만 무겁게 시작한 나의 휴직이 한결 가벼워졌음을 부정할 순 없다.
아이들의 노력이 이루어낸 일이지만 아내와 나도 한몫을 하였고 우주의 기운과 청개구리의 역할도 부정할 수 없다. 중랑천에 살고 있을 청개구리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부디 건강하게 잘 살기를…
오늘의 감상,
큰아이의 1 지망 합격소식을 접하고 하루가 지난 오늘 드디어 나에게는 100일의 시간이 남았다. 이제 아이들의 뒷바라지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나의 시간… 나의 휴직은 300일이 아닌 100일이다. 난 이제 시작한다. Just Do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