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전염된다

휴직일기, -109일(2021.11.11)

by 낙산우공

빼빼로데이라고 부르는 정체불명의 기념일, 무엇을 기념하는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은 특별할 것 없는 이날에 들뜨고 흥에 겨워 사람을 만난다. 11이라는 숫자가 두 번 겹치는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한 일이겠는가? 그저 이벤트가 필요한 연말, 어떻게라도 건수를 잡아보고 싶은 마음에 얻어걸린 날일 뿐이다.


그렇게 젊음은 그것을 발산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어떻게든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몸속 깊이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뿜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그것을 우리는 젊음이라 부른다. 그 생기 넘치는 모습이 부럽진 않지만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마음이 흐뭇해질 때가 있다. 젊음이란, 활력이란 그렇게 주변의 공기를 바꾸는 힘이 있다. 큰 아이에게는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온몸을 짓누르던 입시 부담이 사라졌고 아직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매일매일 반복되었던 고된 레슨 일정은 이제 없다. 그 홀가분한 기분을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겠는가? 친구들과 빼빼로데이 계획을 세우고 선생님께 드릴 가래떡과 빼빼로를 준비하며 신이 나 있었다. 얼마 전까지 말이다. 그런 아이의 기분이 한순간 가라앉았고 편치 못한 마음이 역력하게 비친다. 낮에는 오랫동안 고대해 왔던 귀 피어싱까지 했는데 말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대입 수시 결과가 속속 발표되면서 친구들이 여럿 합격소식을 전하고 있던 것에 반해 우리 아이는 지원한 다섯 곳의 학교가 모두 아직 합격자 발표 전이었다. 나름 최선을 다했고 좋은 결과를 기대해 봄직한 조짐들이 있지만 아직은 축배를 들 형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벌써 두 곳 이상의 합격소식을 전하며 여유 넘쳐하는 친구들과 어울리자니 아이는 마음이 편치 않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니 어떻게 아이의 마음을 다독일지 난감해지는 순간이다.


더구나 입시결과를 부모라고 감히 예측할 수 있겠는가? 아이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고 중간중간 괜찮은 성과를 이루었으며 든든한 내신성적을 확보했다는 사실 따위가, 당일의 실기성적이 당락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무용과 입시에서는 합격을 보증해 주지 못한다. 이런 때엔 나도 대략 난감할 수밖에 없다. 결국 밥이 제대로 되려면 뜸을 오래 들이는 법이라는 뻔한 말만 반복하는 스스로가 답답해졌다.


아이의 걱정을 덜어준다고 나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떠들어 댔는데 내가 한 이야기를 곱씹어 보니 결과적으로 비겁하고 이기적인 내용이었다. 아이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이 답답하고 한편으론 불안했을 뿐인데 나는 그 친구들의 합격소식에 나도 모르게 조급해져서는 결국 1 지망 대학은 우리 아이가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 아이들이 몇 개 학교에 먼저 붙긴 했지만 너의 1 지망 대학에서는 걔들이 떨어질지언정 너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부끄럽고 위험천만한 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기에도 부적절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할 뿐 아니라 그 감정에 공감하는 이에게 전염된다. 나는 아이의 불안감을 줄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떠들었지만 결국 나마저 불안감을 떠안고 말았다. 그리고 애먼 아이의 친구들을 소환했다. 내 아이의 피나는 노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른 아이의 부족함을 들추려 했던 나는 어른스럽지 못했다. 아이의 친구들에게 여기서라도 사과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제아무리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하여도 엄습하는 불안감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다. 이럴 땐 화제와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결국 나는 아이의 1 지망 대학 합격자 발표가 나오는 날까지 앞으로 일주일 이상을 아이와 함께 해주어야 한다. 제발 그날에 모든 상황이 종식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나마 더 마음 졸였던 둘째의 입시가 2주 전에 해피엔딩으로 마감을 쳤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 되고 있다.




오늘의 감상,

귀를 뚫고 싶어 하던 딸아이가 엊그제 친구와 방문한 백화점에서 퇴짜를 맞았다. 덕분에 오늘 오후에 아이를 데리고 집 근처 대학가에 있는 피어싱 샵에 가서 귀를 뚫어 주었다. 생전 처음 가본 그곳에서 우정 피어싱을 하면 1+1으로 서비스를 해준다는 말에 잠시 피어싱을 고민했다. 아내에게 문자를 보내자 참으라는 답이 왔다. 이십 대 때 잠시 재미 삼아 귀찌를 한 적이 있는데 귀를 뚫지 않으니 귓불이 아파서 한 시간도 버티기 어려웠다. 오랜 소원을 풀어보나 했던 기대는 아내의 단호한 답변에 좌절되었지만 난 피어싱을 한 최초의 50대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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