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간이 돌아왔다

휴직일기, -118일(2021.11. 2)

by 낙산우공

다급한 일이 코앞에 닥쳤을 때 한동안 머릿속을 지끈거리게 했던 고민 따위는 삽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가족 중에 누군가 사고를 당했거나 큰 병에 걸렸다면 어젯밤 회사에서 벌어진 상사와의 갈등 따위는 새까맣게 잊어버리게 된다. 이렇듯 근심이나 걱정은 더 큰 우환을 겪게 되면 그중 상대적으로 작고 소소한 것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수면 아래로 잠수를 타버린다. 애초에 그런 고민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세상 무너질 것만 같던 큰 걱정거리가 해결되고 나면 까맣게 잊고 있던 본래의 근심거리가 연기처럼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건 잊고 있었지? 이 바보야.’라고 말하는 듯 숨겨진 본색이 드러나면 우린 또다시 걱정과 근심 속에서 허덕거리게 된다. 불가에서 말하듯 인간의 삶은 그 자체가 고통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헐벗고 굶주린 중생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현대의 인류에게도 삶을 짓누르는 고통은 여전히 건재하다. 신기하게도 말이다.


나의 휴직 결정에는 뿌리 깊은 개인적인 문제가 내재되어 있었으나 표면적으로는 두 아이의 입시라는 엄중한 현실이 덮고 있었다. 숨을 쉬기 힘들 만큼 조여 오는 삶의 무게에 버거워하던 나에게 두 아이의 입시는 가뭄 끝 단비와도 같았다. 그러나 예상대로 아이의 입시는 그야말로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그 숨 가쁘고 고달픈 하루하루의 일정을 소화하면서 내 안에 잠재된 다른 생각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나는 몸이라도 관리하자는 심정으로 식단 조절과 운동을 병행하였다. 그것만으로도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렇게 6개월 남짓한 시간이 흘러갔고 마음 졸이던 아이들의 입시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다. 휴직의 보상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최소한의 보람은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긍정적인 신호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일은 어디까지나 아이들의 문제다. 어떻게 끝나든 결국 이 사건은 마감을 친다. 그리하여 잠시 내려놓았던 내 안의 일들이 멈추었던 숨을 고르러 물 밖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갑작스럽게 휴직을 결정하기까지 쌓였던 스트레스와 무너진 자존심은 시간과 함께 소멸하고 복구되어 갔다.


시간이 약이라는 옛말은 언제나 정답이다. 잠시 멈추는 것만으로도 자연은 모든 것을 복원해 낸다. 문제는 남은 휴직기간과 복직 후의 내 삶이다. 그것은 고스란히 내게 숙제로 남았고 이제 지나온 시간의 1/3 밖에 남지 않은 기간 동안 나는 온전히 나의 문제와 마주할 것이다. 그 끝이 시작과 같다면 나의 휴직은 절반의 성공과, 그와 똑같은 실패의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시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열 달을 허비하고 싶진 않다.


어김없이 나의 시간이 돌아왔다.




오늘의 감상,

마지막 다섯 번째 대입 실기고사를 이틀 앞둔 딸아이의 레슨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10월 초에 시작한 아이의 입시는 지난주에 끝을 낸 대부분의 친구들과 달리 홀로 마지막 지원대학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 한 곳도 발표가 나지 않았지만 아이의 친구들은 벌써부터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기에 여념이 없다. 거리두기 제한이 풀린 것도 한몫하였을 것이다. 해방감에 취해있는 친구들을 보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 묵묵히 마지막까지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는 내게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 고작 일주일을 못 버티겠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미 들떠버린 분위기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딸아이의 모습이 왠지 나를 응원하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찌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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