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번다는 것(2015. 9. 4)
하루 세끼를 다 먹지 않고 한 끼 혹은 두 끼만으로 해결하는 다이어트는 있지만, 일정기간(시간)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종교의식은 있지만 끼니 자체를 포기하는 일은 인류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히 죽음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생존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그 어떤 행위도 의식도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렇듯 음식의 섭취는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고귀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경제활동은 밥벌이라는 슬프지만 엄혹한 현실을 반영하는 단어로 환원되곤 한다.
밥벌이는 도리 없는 일이다. 그 도리 없는 일을, 피할 수 없는 책무를 다하기 위해 우리는 말을 배우고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있을 때부터 준비를 시작한다. 얼마나 더 폼나는 밥벌이를 통해 밥을 벌 것이냐가 지상과제가 되었다. 끼니를 거르고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그 어떤 욕망과 쾌락 앞에서도 우리는 밥벌이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끼니를 해결하는 밥벌이가 비교적 손쉬운 일이 되어버린 1인당 GDP 3만 불 시대에는 얼마나 남보다 고상한 밥벌이인가를 따지게 되었다. 하지만, 밥벌이는 밥벌이라는 말 그대로 밥을 벌어주는 수단일 뿐이다.
때로는 밥벌이가 자아를 실현하는 도구로,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는 명패로, 때로는 우월감을 확인시켜주는 완장으로 돌변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밥을 벌어먹게 해주는 생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밥벌이를 갖고 있으며, 혹은 밥벌이를 구하려 하거나 밥벌이를 놓으려 하고 있기도 하다. 운 좋게 밥벌이를 갖고 있는 이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밥벌이를 탓하며, 내 밥그릇을 건드리는 모든 주위의 위협요소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촉을 세우며, 때론 밥그릇을 뺏기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해치거나 등치거나 짓밟기도 한다.
밥벌이이기 때문이다. 밥을 벌어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인간에게 최소한의 생존환경을 포기하는 일은 곧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생존에 대한 위협과 무관하게 밥벌이를 놓고 다투기 시작했다. 내 밥그릇보다 큰 누군가의 밥그릇을 시기하기 시작했고, 내 밥보다 좋은 쌀, 좋은 밥솥과 곁들인 토핑(온갖 콩, 계란 프라이, 소시지, 고기류에 이르는)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맛난 밥에, 맛난 반찬에, 근사한 식탁과 그릇에, 화려한 조명에, 고급진 반주에, 황홀한 파트너까지 갖추었다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혀를 간질이고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모든 음식은 동일한 절차에 따라 동일하게 처리되어 동일한 곳을 통해 배출된다.
곧 밥벌이가 목숨을 걸 일은 아닌 것이다. 내 밥그릇을 누군가 차 버리거나 깨버리거나 빼앗아가지 않는 한 말이다. 밥벌이는 밥벌이일 뿐인 것이다. 화려한 밥벌이 건 초라한 밥벌이 건 말이다. 밥을 벌었다면 그만인 것이다. 밥을 벌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하지만, 밥을 벌고 나면 우리에겐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다. 인류가 남긴 모든 화려한 문명의 소산은 밥을 벌고 난 인간의 여가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밥을 버는 것이지 밥을 벌기 위해서 삶을 연명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 밥벌이가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되어버린 인간보다 한심한 자는 제 밥벌이를 존중하지 않는 자들이다. 밥벌이를 하고는 있으나 밥값을 하지 못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하지 않으면서 남의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인간들이다. 그들은 인간이길 포기한 것이다. 제 밥벌이에서 조차 남에게 빌붙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이들을 의외로 많이 만난다. 더 웃기는 것은 제 밥벌이를 존중하지 않는 이들 중 상당수가 제 밥벌이를 자랑거리 삼아 산다는 것이다. 그토록 우쭐거릴 일을 제대로 해내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숟가락 얹는 일은 다반사, 요즘은 빨대를 꼽는다는 말을 쓴다. 숟가락은 밥을 퍼서 입으로 가져가는 최소한의 공이라도 드린다. 빨대를 꽂고는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쭈욱 빨아버리는 것이다. 공기 빠지는 소리가 날 때까지... 그렇게 우리는 밥벌이를 하기도 힘겨운 세상에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벌이는 밥벌이일 뿐이다. 내 밥그릇에 숟가락을 들이밀거나 내 술잔에 빨대를 꽂는 이가 있거든 너그럽게 용서하자. 그들이 내 밥그릇을 빼앗아가거나 내 술잔을 훔쳐가기 전에는 말이다. 그들이 비록 얄미운 짓을 하고는 있지만, 그들은 한 가지를 포기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부끄러움'
맹자 '공손추 편'에서는, 羞惡之心(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非人也(사람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사람을 상대하기도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