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은 어려워(2015. 5.18)
사물을 분별하는 지혜,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사람으로서 일정하게 이를 수 있는 한도.
이상이 네이버 어학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는 분수(分數)의 뜻이다. 그러나, 수학에서 말하는 분수는 다르다.
‘정수 a를 0이 아닌 정수 b로 나눈 몫을 a/b로 표시한 것'이라고 나와 있다.
같은 한자로 이루어진 분수의 의미가 이렇게 다양한 줄은 몰랐다. 그저 수학적 분수와 네 분수를 알라고 할 때 쓰는 분수 정도가 우리가 이해하고 사용하는 분수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어제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둘째가 뜬금없이 차 안에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에게 분수를 가르쳐 줘"
요즘 부쩍 수학 점수가 잘 나온다 싶었지만, 아직 선행학습을 시킬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아이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수습할 방법을 궁리해야 했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감이 상승한 탓이겠지만 느닷없이 분수를 배우고 싶다는 참 생뚱맞은 발언의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아이의 대답은 이랬다. 친구들이 자기 보고 분수도 모른다고 놀린다는 거다.
헐, 아무리 선행이 유행이라고 하지만, 제 학년 진도도 완벽하게 숙지하지 못했는데 섣부른 선행학습이 웬 말인가 싶어 아이를 타이르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나눗셈을 하기 시작한 녀석들이 도대체 분수의 의미나 제대로 이해하면서 너를 그렇게 놀렸을까. 분수가 결국 나눗셈인 거다. 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아이의 대답은 또 우릴 당황스럽게 했다. 아이가 들려준 구체적인 상황은 이랬다.
친구 OO이 왈, 우리 아이가 똑똑하고 예쁘기로 유명한 여학생 **와 사귄다는 소문이 돈다면서 제발 너의 분수를 알라고 놀렸다는 것이다.
과연 친구 녀석이 알라고 한 '분수'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수학의 분수였을까? 아니면 여자 친구를 사귀는 게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수학의 분수도 모르는 게 제 분수도 모르고 똑똑한 여자아이를 사귀려 든다는 것이었을까?
우리 아이 친구 녀석의 놀림은 앞의 셋 중 어느 것이었어도 적절치 못했다. 동년배 이성 간에 친구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 어떤 기준으로도 말이다. 비록 좀 조숙하게 연애 비슷한 흉내를 냈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그것은 분수와 관계되는 일은 아니다. 설령 우리 애가 사귀려 했던 여자아이가 김태희 뺨을 치는 미모와 학력에 재벌 상속녀이더라도 말이다. 그건 10살짜리 아이들의 가치 기준에서 논의될 사안은 아닌 것이다.
차라리 그 친구 녀석의 놀림에, "그래 내가 수학을 좀 못하기로서니 이런 모욕을 주다니.. 나도 어서 선행학습을 해서 분수를 배워야지.."라고 생각한 우리 아이의 착각이 좀 더 아이답다.
그리고 한편으로 궁금해졌다. 이 녀석이 정말 여자아이를 사귀는 건 맞는 건지? 이를 기특하고 신통해하는 내가 주책맞은 건지?
그리고 부러움 혹은 거부감 중 하나였겠지만, 우리 아이를 놀린 친구 녀석이 괘씸해졌다. 우리 아이가 부러웠다면 친구 녀석은 비겁한 것이고, 우리 아이가 거북했다면 친구 아이는 사악(?) 한 것이다. 부럽거나 거북한 감정을 놀림으로 상쇄한 것이 괘씸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분수 타령을 한 것이 못내 걸린다. 아이들 답지 못하다.
나는 아이를 둘씩이나 키우는 지금도 모든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모든 어린이는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모든 어린이들이 아름다운 성품을 타고나지는 못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분명히 한 때 어린이였을 어른들이 어떠한 지를 보면 명백해진다. 어떤 아름다운 성품도 세상의 풍파에 찌들지언정 변질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