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일기, -59일(2021.12.31)
오십이라고 하면 왠지 50대 같지 않다. 40대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50대라고 말하기엔 3월의 대학교 새내기처럼 아직은 어설프고 고등학생 티가 절절 난다. 스스로도 그 어정쩡한 모습이 낯설다. 그렇게 오십을 보냈다. 내가 오십이 되었다고 가끔 생각할 뿐 그 나이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기엔 너무 어렸다. 대개 문턱을 갓 넘은 자는 그 세계를 말하기 어렵다.
그래도 한해를 넘기니 대학교 2학년은 된 것 같다. 대학생활의 맛을 좀 봤고 신입생도 제법 들어온 2학년들처럼 50대란 이런 거야 하고 거들먹거리진 못해도 내가 50대인 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가 돼버렸다. 그게 1년이라는 시간만이 줄 수 있는 저력 인지도 모르겠다. 순식간에 지나가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그렇게 훅 지나버린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찐하게 한 해를 보냈다면 역시 오십의 무게는 이런 것이구나 또 절절히 느꼈을 테니 말이다.
오십한살을 맞으며 새해의 다짐 따위를 되뇔 생각은 없다.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는 수없이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인류가 문명을 이루면서 만들어낸 가장 놀라운 발명품이 바로 시간이라고 한다. 우리는 하루, 한 달, 한해를 기준으로 시간이 반복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특정한 현상이 일어나는 주기를 구분한 것일 뿐 결코 시간은 반복되지 않는다. 시간은 우리가 그 단위를 정해 놓기 전부터 그저 흘러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해마다 나이를 세면서 새해를 맞는다. 새해도 묵은 해도 없다. 그저 내 노화의 진행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거창한 새해의 각오도 부질없다. 무언가 새롭게 계획하고 실천하고 싶다면 굳이 새해를 기다릴 이유가 없다. 그저 전환점의 동기부여가 필요한 것은 알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새해 기분을 내고 싶은 건 지나온 시간을 떨쳐버리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간 속에 얽매인 나를 일으켜 세우고 싶은 것이다. 뭔가 다시 시작하기엔 새해만 한 것이 없다. 그래서 새해다.
나의 연말 계획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새해를 특별하게 느끼는 이들은 입시를 치른 아이들이지 나는 아니다. 난 여전히 그들의 희망찬 새해맞이의 찬조 출연자일 뿐이다. “세상의 주인공은 나야 나!!!” 하고 외치기엔 너무 늙었다. 내 삶의 주인공이 나인 것은 당연하지만 세상의 주인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은 한 편의 연극도 영화도 스포츠 경기도 아니다. 주인공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우리의 상상력이 드라마를 만들어 낼 뿐 사실 각자가 주인공인 삶에 매몰되어 허우적댄다.
엊그제는 입시가 끝난 아이들과 느긋한 마음으로 연말 공연을 관람했다. 11년 전에 보았던 발레 공연이었는데 둘째의 고집 덕에 재관람했다. 당시 다섯 살이었던 둘째는 1막은 신나게 즐겼지만 인터미션이 지나고 쏟아지는 잠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보고 싶다는 성화에 못 이겨 가게 되었지만 시간의 힘이 놀라운 건지 난 처음 관람하는 기분으로 몰입했다. 무용을 전공하는 딸 덕분에 조금의 안목이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무용이나 뮤지컬 공연은 공연 횟수가 많아 주인공의 경우 더블 캐스팅 이상을 한다. 우리가 본 발레 공연은 남녀 각각 무려 6명의 주인공이 캐스팅되어 있었는데 운 좋게도 그중 가장 뛰어난 실력의 1번 주자가 공연하는 무대였다. 그런데 연일 이어지는 공연에 지친 탓인지 나의 눈에도 위태위태한 순간이 여러 차례 보였다. 다행히 베테랑의 능숙함으로 결정적인 실수는 하지 않았지만 한해의 공연 중 가장 흥행이 되는 연말 공연 치고는 좀 실망스러웠다.
그렇지만 난 박수는 열심히 쳤다. 그들이 성의 없이 공연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장기 공연에 지쳤을 수도 있고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을 수도 있으며 공연 날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을 수도 있다. 아무렴 어떤가? 그들은 2막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남녀 주인공이었고 자신의 무대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보였다. 조금 불안한 순간이 있었지만 공연 전체는 매끄러웠다. 그리고 새해를 단 3일 앞둔 연말이었다. 그들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그날 공연의 주인공이었고 난 내 삶의 주인공이었다. 나의 박수는 쓸쓸한 연말을 맞는 나를 향한 것 같았다.
오늘의 감상,
아내는 커튼콜이 끝나고 객석에 불이 켜지기 무섭게 출구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주차정산을 미리 해야 빨리 빠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단다. 공연의 여운을 즐길 틈도 없이 달려 나가는 아내를 보며 든 생각은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도 어쩌면 저럴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저 짊어져야 할 책임감으로 똘똘 뭉쳐 돌파해야 한다는 강박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참고로 내 아내는 평소의 삶에선 강박증이 일도 없는 사람이다. 아무튼 아내의 질주는 허사가 되었다. 아들이 공연장 밖에서 파는 기념품 인형에 꽂혀 버렸다. 나는 흡사 영화 “솔드아웃”에서 아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고 혈안이 된 아널드 스왈츠제네거나 대형마트 깜짝 세일에 몰린 주부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11년 전에 구매한 호두까기 인형은 그새 진화하였고 이제는 딸과 아들 방에 하나씩 또아리를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