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일기, -45일(2022. 1.14)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자주 깨거나 가끔씩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일이 잦았다. 그저 예민한 성격 탓이려니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다. 피로가 쌓이면 숙면을 취하기도 했지만 그래 봐야 7시간을 넘긴 적은 잘 없었다. 대개는 허리가 아프거나 화장실에 갈 용무가 생겨 깨곤 했다.
그런데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고 며칠 동안 9시간 넘게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점심식사 후에도 밀려드는 잠에 취해 1~2시간 눈을 붙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저녁 반주삼아 마신 술에 취기가 돌면 소파에서 1시간씩 자다 깨는데 그러고도 이불 속에 들어가 곧잘 잠이 든다는 것이다. 흔하지 않은 일이 며칠간 지속되니 신기한 것보다는 이유를 알고 싶어졌다.
요즘의 잠은 깊다고 할 순 없다. 꿈을 많이 꾸고 꿈자리가 괴이하곤 했다. 내용이 온전히 기억나지 않지만 복잡한 나의 심리상태가 반영되곤 했다. 맞다. 나의 심리는 복잡하다. 복직을 불과 40여 일 앞두고 있으나 난 무엇도 준비된 게 없는 것 같다. 나보다 서너 해 먼저 휴직을 경험했던 직장 동료는 복직을 앞두고 출근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더란다. 그런데 난 그렇지 않다.
복직 후의 일상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감은 별로 없다. 그저 휴직 전과 지금이 다를 바가 없다는 것과 곧 발표될 정기인사에서 나의 거취가 결정되기 때문에 살짝 신경이 쓰이는 정도다. 아무튼 10개월의 휴직은 내게 일상의 브레이크 타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는 게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 같다.
난 소기의 휴직 목적을 달성했지만 그렇다고 활력과 열정을 재무장하진 못했다. 물론 크게 기대했을 리 없다. 나이 오십에 없던 열정이 생길 정도면 휴직할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저 말 그대로 휴식이 필요했던 거였다. 그런데 난 제대로 쉬지 못했고 그 누적된 피로감이 요 며칠 급격하게 나의 수면시간을 늘려놓은 것이다.
휴직을 시작할 때 체력을 키워 보겠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그저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 근육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였다. 마음에 만들어진 근육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불가피하게 마주하게 되는 불편하거나 불쾌한 상황에서 소위 ‘마상’을 입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시켜 주리라는 기대에서였다. 지금도 나의 휴대폰 바탕화면엔 맑을 담(淡)과 응시(凝視)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런데 내가 놓친 것이 하나 있었다. 모든 맷집은 실전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복싱선수들이 상대의 펀치를 견디기 위해 갖은 훈련으로 몸을 무장하지만 맷집은 몸의 영역이 아니라 정신의 영역이다. 결국 네 번 다운되고 일어나 K.O로 상대를 때려눕힌 홍수환 선수의 신화는 그가 쌓아온 훈련의 결과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대한건아의 백절불굴의 정신력으로 미화된다. 그 정신력의 뿌리는 실전이다. 아프지만 죽지 않는다는 경험이 그에게 신화를 창조했다.
안타까운 것은 맷집이 정신력의 영역이기 때문에 버티어낼 수는 있지만 생존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력은 기적을 만들지만 매번 그렇다는 건 아니다. 내 세대에게는 익숙한 김득구 선수의 이야기가 그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 결국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 “매 앞에 장사 없다”는 속담이 정답이다. 요즘 유행하는 “존버”라는 말의 뜻을 알고는 참으로 천박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늘의 감상,
잠에 취해 지내는 동안 기사를 통해 접했던 사건이 하나 있다. 국내 굴지의 자동차 기업 디자이너가 공황장애로 휴직을 했다가 복직을 며칠 앞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는 아들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지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에게 공황장애가 찾아온 이유는 과로와 스트레스였고 아내와 10살, 7살 자녀가 있었다고 한다. 1년도 지난 이 사건이 최근에 기사화된 이유는 확인하지 못했지만(아마도 기업과의 보상문제가 엮여있을 것 같지만) 코로나 블루만큼이나 우울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 일 없었던 듯 복직을 할 것이고 10년은 버틸 것이다. 다만 “존버”는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