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휴직일기, -41일(2022. 1.18)

by 낙산우공

영화를 좋아하고 나름의 확고한 취향을 갖고 있다. 중고생 시절엔 월간잡지 스크린을 정기 구독하였고 대학 때는 주간지 씨네 21을 창간호부터 5년 가까이 모아서 현재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영화평론가 수준의 이론적 접근을 하거나 의식적으로 영화를 취사선택하진 않는다. 그저 나만의 영화 보는 가치관이 명확할 뿐이다. 그 장황하고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당연히 아니다.


학교 행사가 있는 딸아이를 가기 편한 지하철역에 내려주고 아들과 정기 병원 진료를 받고 혈액검사를 위해 피를 뽑은 뒤 밖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집에 돌아왔다. 살짝 피곤함이 몰려와 소파에 앉아 습관적으로 TV를 켰다. 뻔한 예능프로그램 아니면 드라마, 뉴스가 쏟아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수의 채널을 돌리다가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발견하고 멈췄다. 휴직한 지 9개월째 무심히 채널을 돌리다가 이 영화를 본 게 족히 세 번은 넘었다.


첫 개봉했을 때 찾아본 후에 지금까지 열 번은 우연찮게 본 것 같은 리틀 포레스트는 딱히 내 영화 취향을 저격하는 작품이 아니다. 굳이 찾아서 보지 않는데 이 영화가 방영되는 채널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임순례 감독을 데뷔작인 “세 친구” 때부터 알고 있고 그녀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우생순보다 훨씬 더 좋아하지만 리틀 포레스트는 나에게 좀 색다른 영화다.


단순하기도 하려니와 마르고 닳도록 본 탓에 줄거리는 이미 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면 장면 대사와 표정까지 기억이 나는 건 나의 최애 영화 리스트에 있는 영화들에서도 쉽지 않은 경험이다. 오늘 이 영화를 또다시 보면서 그 이유를 생각해 봐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영화가 내게 각별한 첫 번째 이유는 편안함이다. 미리 줄거리를 다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어느 장면부터 보아도 부담이 없다. 보통 이미 아는 내용이라도 중간부터 보는 영화는 몰입을 방해한다. 그래서 채널 돌리다가 우연히 발견한 반가운 영화라도 첫 장면부터가 아니면 절대 보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예외다. 언제나 반갑고 흔쾌하다. 오늘은 주인공 혜원이가 고향에 내려오고 한 달 남짓 지났을 무렵부터 시청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시청각적인 시원함이다. 타고나길 녹색 계열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품고 있는 풍경과 소리는 가히 예술이다. 굉장히 평범한 농촌이지만 영화 속 장면과 효과음은 모든 게 완벽하다. 시골길, 자전거, 숲, 열매, 달팽이, 들녘 그리고 영화의 주요소재인 각종 요리에서부터 거기에 곁들인 나뭇잎 밟는 소리, 빗소리, 개울물소리, 눈 밟는 장화 소리 등등 제주 사려니숲길의 ASMR보다 상쾌한 음향은 완벽하게 영화 속에 스며들어 있다.


세 번째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고향을 등진 젊은 주인공이 모진 세파에 찌들고 치열한 경쟁에 치이다가 돌아와 다시 정착하는 내러티브는 신선하지도 파격적이지도 그렇다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농촌의 삶 또한 영화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그런데 이 영화의 인물은 리얼하다. 세상에 없을 것 같지만 있을 수도 있다는 믿음을 갖고 싶게 하는 건 그들의 뛰어난 연기 때문일 것이다. 김태리와 류준열이라는 탁월한 배우가 보여주는 힘이 놀랍다. 그밖에 등장하는 조연들도 강렬하지 않지만 뛰어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편지를 전달하며 우체부의 숙명을 이야기하는 우체부 아저씨나 이모가 아닌 주인공의 고모는 참 매력적이다.


그런데 굳이 이 영화가 나에게 왜 특별하게 느껴질까를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게 참 부질없다. 예술작품을 두고서 그게 왜 좋은지를 분석할 필요는 없다. 그게 몇 가지 이유로 정리될 수 있지만 그래서 누군가의 궁금증을 다소나마 해소해 줄지는 모르지만 온전히 감상의 포인트를 전달해 줄 순 없다. 그냥 좋고 끌리는 게 있는 것이다.


나에게 리틀 포레스트는 휴식이고 힐링이다. 음악을 듣고 명상을 하듯 이 영화는 내게 평정심을 찾게 해 준다. 그저 반갑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매번 보았던 인물의 표정과 대사를 다시 만나면 또 기분이 좋다. 영화의 원작이 일본 소설이라고 하는데 굳이 책을 찾아보고 싶진 않다. 간혹 일본요리 느낌이 묻어나는 장면이 있지만 그저 내 음식 취향이 아닐 뿐 나쁘진 않다. 아무튼 오늘의 우연한 만남은 역시나 즐거웠다.




오늘의 감상,

아나필락시스로 응급실에 두 차례나 실려갔던 중3 아들에게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켜야 하는가를 상담하러 병원에 들렀다. 작년 내내 입시 준비 중에도 알레르기로 고생했던 아이를 진료해 준 의사 선생님께서는 우리 아이의 알레르기 반응이 호흡기 쪽에 잘 나타나기 때문에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하니 백신을 당연히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이에게 약물 알레르기가 나타난 적은 없지만 여러 가지 검사에도 불구하고 알레르기 원인물질을 찾지 못했는데 혹시나 백신 부작용이 심하게 올 수 있지 않겠냐고 되묻자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하셨다. 다음 달에 접종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노바 백신을 기다려 보라고 말이다. 사실은 자기 아이들도 그걸 맞히려고 기다리고 있다면서…


화이자나 모더나와 달리 독감 4가 백신과 같은 방식의 백신으로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덜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개인적으로 청소년은 모두 이걸 접종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작년에 공황장애로 입시를 망칠 뻔했던 딸아이의 친구는 고3 학생 대상 1차 백신 접종 후에 아나필락시스로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다. 당연히 2차 접종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입시가 끝난 후 방역 패스 도입으로 활동에 지장을 받자 몇 주 전 다시 백신 접종에 도전했고 또다시 알레르기 부작용으로 죽다 살았다고 한다.


우리의 불안은 과연 부당한 것인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정보의 비대칭은 모든 사회적 불균형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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