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을 자유케 하라

복직일기, +36일(2022. 4. 5)

by 낙산우공

휴직을 했던 열 달 동안 제법 몸을 추슬렀다고 생각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대단한 몸짱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침마다 스트레칭과 요가, 플랭크 운동으로 가볍게 몸을 풀어줬다. 내가 가볍다고 말하는 이유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이지 나에게 그 30분 남짓한 시간은 격렬한 몸부림이었다. 그 탓에 몸이 썩 개운해졌다. 명상을 자주 하지 못했지만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는 시간만 한 것이 없었다. 당초 계획대로 마음과 몸에 근육을 만들지는 못했으나 나는 건강해졌다. 나는 살면서 근육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인간의 몸에 휴식보다 좋은 약은 없었다.


그런데 복직하고 한 달이 겨우 지난 지금, 난 완벽하게 휴직 전으로 복귀했다. 새벽 일찍 등교하는 둘째를 태우고 다니느라 아침은 더 분주해졌고 밤 9시가 넘어 하교하는 아이를 주 5회 꼬박 챙기고 있다. 이 것만으로도 버겁지만 나는 새롭지 않으면서 조금은 새로운 업무와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중이다. 그래서 나의 아침은 사라졌고 나의 밤은 늘 녹초가 된다. 정말 완벽한 복귀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려고 내가 휴직을 하였나~'하는 넋두리가 나올 법하지만 사실 이러지 않으려고 휴직을 한 것이다. 문제는 나의 계획이 휴직기간에만 맞춰 있었다는 것... 복직과 함께 나는 돌아왔다. 한 가지도 달라지지 않은 환경으로 말이다. 방과, 책상과 사람이 조금 바뀌었지만 나를 짓누르던 많은 것들이 그대로다. 주변 사람들이 묻는다. 적응이 좀 되셨냐고?


그때마다 난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 진다. 완벽하게 적응이 되었다. 문제는 익숙하다는 측면에서 완벽할 뿐이라는 사실. 나의 직장은 언제나 낯설고 불편하다. 그렇게 8년 동안 익숙해졌다. 열 달을 쉬고 온들 그 낯설고 불편한 익숙함은 여전하다. 그러니 적응하고 말 것이 무엇인가. 내가 적응했던 익숙함은 내가 도피하고 싶은 이유와 맞닿아 있다.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아니 바뀔 수 없었다. 그것은 꼭 직장에 한정된 일이 아니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내 주변의 무엇도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바꿀 수 있는 게 없다. 과거엔 직장을 바꾸었다. 이젠 그럴 수 없다. 그러니 적응하는 수밖에... 과연 나의 복귀를 연착륙이라 말할 수 있을까?


묵묵하게 일상에 충실한 삶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지금은 견디기 어렵지만 꿋꿋이 버티어낸다면 훗날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합리적 선택지가 이곳 뿐이기 때문에 그 말이 유효한 것이다. 우린 자신의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행복을 저당잡히며 일상에 복무하는 것을 미덕이라 말하지만, 그것을 자유라 부르진 않는다.


난 성경에 하느님이 아담에게 내린 노동의 저주(평생 땅을 갈아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만 먹고 살수 있다는)보다는 프랑스 인권선언문의 자유를 추구할 권리(모든 인간은 타인을 해치지 않는 한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다는)를 존중한다. 나는 현대인이므로...




오늘의 감상,

나의 맘을 혼란스럽게 하던 동네 상가의 카페 자리에 새 가게가 입점한다고 한다. 초등학교 앞 목 좋은 전면 유리의 볕이 잘 드는 그 자리를 내가 언감생심 차지할 형편이 아닌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간사한 사람의 마음이라 혹시 로또라도 당첨되면 덥석 물어야지 하는 막연한 상상을 하곤 했다. 그 상가는 임대 또는 매매도 가능하다고 연락처와 함께 붙어 있었던 것이다. 독이든 성배처럼 그 자리는 완벽한 카페 자리이면서 번번이 망해나가는 자리였는데 상가주인이 골치가 아팠던지 아예 매물로 내놓은 것이다. 그래서 더 뜬금없이 마음이 흔들리곤 했다. 퇴근하면서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매매 문의라고 붙어있던 자리에 반찬가게가 입점한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세상에나... 그 명당자리에 반찬가게가 웬 말인가? 안내문을 읽는 순간, 이 집도 얼마 못 가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드는 건 또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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