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 three의 귀환

복직일기, +40일(2022. 4. 9)

by 낙산우공

어려서부터 손이 많이 가던 둘째에게 붙여준 별명이 ‘새우깡’이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우리 집 애들의 공통분모가 되었다. 무용을 해서 돈도 시간도 그리고 신경 쓰임도 가장 많아진 첫째는 깡 one, 본래 손이 많이 갔으나 미술의 세계에 빠지고 알레르기 면역질환까지 생긴 둘째가 깡 two, 그리고 느지막이 업둥이처럼 들어와 온 가족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으나 사고도 말썽도 어지간히 피우는 반려견(호두)이 깡 three가 되었다.


만능 엔터테이너 ‘비’에서 시작된 ‘깡’ 열풍이 엉뚱하게 우리 집에도 번져 나는 휴직기간 내내 제발 ‘1일 1 깡’만 하자고 외치곤 했다. 입시생인 두 아이를 챙기다 보면 ‘1일 2 깡’은 일상 다반사가 되었지만 가끔 호두가 아프거나 미용을 하게 되는 날엔 ‘1일 3 깡’도 무시로 일어났다. 그렇게 정신없던 한 해가 지났고 나는 두 아이의 입시를 무사히 치렀다. 그 중간에 호두는 한차례의 중성화 수술과 두 차례의 예방접종과 세 차례의 미용과 슬개골 치료, 기관지염 치료 등등을 마쳤다. 어려서 자주 병원 신세를 지던 호두도 돌이 지나고는 무탈하였다.


3월이 되자 아이들은 입학을 했고 나는 복직을 했고 아내는 개학을 했다. 휑한 집을 외롭게 혼자 지키던 호두가 안쓰러워지던 즈음에 아이의 소변에서 피가 보이기 시작했다.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모든 인간은 피를 보면 긴장하기 마련이라,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여 토요일 아침 일찍 병원에 들렀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방광염이나 결석일 거라더니 검사 결과는 심각한 수준의 결석으로 밝혀졌다.


엑스레이 사진을 무심히 살피던 의사 선생님은 1년 8개월 된 아이에게는 흔치 않게 엄청나게 많은 양의 결석이 생겼다고 놀라셨다. 확진을 위해 초음파 검사를 하며 결석이 칼슘 옥살레이트라는 걸 확인하였는데 여자아이에게는 흔하지 않은 종류라 하였다. 원인을 알기 위해 혈액검사까지 하였으나 정확한 원인은 나오지 않았다. 식습관에 문제가 있다고 의심하여 모든 간식을 끊고 사료만 주기로 했다. 칼슘을 다량 복용했을 걸로 의심이 되는데 동물성 지방과 칼슘을 넣어 만드는 육류 개껌이 유력한 범인이라는 게 결론이었다.


식탐이 많은 아인데(물론 그 나이면 사람도 그렇다…) 사람 먹는 음식을 함부로 줄 수 없으니 가족끼리 식사할 때마다 육류 간식을 주곤 했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그 간식이 진짜 고기가 아니라 동물성 지방과 칼슘으로 고기 흉내를 내는 정크푸드라는 얘기였다. 아이를 배려하려던 일이 건강을 해롭게 했다 하니 미안한 마음이 더했다. 말 못 하는 짐승(가끔은 말을 할 수 있다는 의심이 강하게 들긴 하지만)이라 더 애틋할 때가 많았는데 우리가 너무 무심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수술일정이 꽉 차서 한 달 후로 예약을 했지만 취소되는 일정이 생기면 제일 먼저 넣어주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두 시간 만에 병원을 나섰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중증환자가 많았는데 그중에도 우리 아이의 병세가 가장 심각했나 보다. 어쨌든 앞으로 열흘은 약으로 염증 수치를 낮추고 수술 날짜가 잡힐 때까지 마냥 대기하는 신세가 되었다.


언제나 공교롭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삶이나 직장 일에 회의감이나 무력감이 들 때쯤이면 여지없이 나의 깡 원, 투, 쓰리는 흐트러진 내 정신을 번쩍 깨어나게 하는 재주가 있다. 흡사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주마가편’과 같이, “아직 갈 길이 머니 한가한 생각하지 말고 정신 차렷!!!”하고 말하는 것 같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나에게 이 채찍이 없었다면 오늘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호두가 제 언니와 오빠에게 몰래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깡 three 임무 완수!!!”




오늘의 감상,

동물병원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건 대한민국의 건강보험이 얼마나 국민의 삶에 기여하고 있는가다. 엑스레이, 초음파에 혈액검사까지 하는 순간 예상했지만 병원비는 내 일 년치 그것과 맞먹었다. 아픈 아이를 안쓰러워하며 안고 있던 아내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하더니 입을 씰룩거리며 뻔한(?) 구박이 날아왔다. 언제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은 이거다. 인간의 의식이 공간의 지배를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돈에게는 여지없이 자발적 맹종을 바친다는 것… 말 못 하는 짐승도 듣는다는 사실을 아내는 늘 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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