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일기, +43일(2022. 4.12)
해마다 4월이면 서울은 몸살을 앓는다. 이 도시에 이렇게 많은 벚나무가 있었는지 우리는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매년 3말 4초가 되면 비로소 다시 깨닫게 된다. 우리 동네 성북천에도 벚꽃은 흐드러지게 피었고 아파트 초입에도 어김없이 벚꽃이 나의 출근길을 맞는다. 벚꽃이 일본 제국주의 식민시대의 잔재인지는 몰라도 이 나라 사람들은 봄마다 벚꽃 앓이를 과하게 한다. 여의도 윤중로는 새벽부터 상춘객으로 붐비고 그 무리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반려견까지... 3년 만에 재개한 벚꽃축제가 반갑지 않을 리 없겠지 싶다가도 나의 출근길은 본의 아니게 여러 가지 불편을 감수하게 되었다. 물론 이깟 일로 그들을 탓한다면 나는 자격 없는 공무원이다. 그들의 품에 돌아가야 할 곳에 내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이유로 어찌 성가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한편으로 참 오래 견뎠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다. 이렇게 봄이면 벚꽃, 가을이면 단풍, 철마다 빠지지 않고 관광버스를 대절해야 하는 민족이 말이다. 두 해를 넘어 방콕을 하고 있었으니 역시 우리는 곰의 자손이다. 온 국민의 축제라고 떠들던 80년대 후반기에 은근과 끈기라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듣던 내가 궁금했던 건 '왜 올림픽 마스코트는 반달가슴곰이 아니라 백두산 호랑이었을까?' 하는 거다. 냉전시대 서방국가들이 보이콧했던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의 마스코트(북극의 아기곰 미샤)와 같아서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저녁 늦게 비 소식이 있던데 아침부터 잔뜩 흐렸고 한두 방울 빗줄기가 보이기도 했던 오늘 아침에 윤중로 벚꽃은 드디어 엔딩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어제 아침까지도 절정의 꽃망울을 자랑하더니 오늘은 초록 잎이 무서운 기세로 올라오고 있었다. 어제 잠시 짬을 내어 사진 한 장을 찍은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벚꽃을 사랑하는 민족성에 딴죽을 걸 마음은 없지만 난 여의도 윤중로의 봄보다 가을을 훨씬 더 좋아한다. 이곳에 자리를 잡은 아홉 해 동안 원 없이 봄과 가을을 보아왔지만 역시나 윤중로의 가을은 걸작이다. 오래전 미국 출장에서 워싱턴 D.C의 가을에 흠뻑 반했던 적이 있다. 여의도 국회와 그 주변은 그때의 가을느낌과 가장 가까운 풍경을 하고 있다.
윤중로의 벚나무는 굵고 크다. 그래서 벚꽃의 스케일이 여느 동네의 그것과 다르다. 그래서 사람들이 붐비지만, 정작 그 굵직한 나무의 가을은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다. 가을에 까지 축제기간에 온갖 행사부스들이 들어오고 각종 공연과 전시를 하면서 형형색색의 조명을 쏘아댄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벚꽃의 절정은 낮에 보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밤에 더 많이 찾는다. 시간을 내기 어려운 탓도 있겠지만, 밤의 축제를 즐기려는 무리들도 있을 것이다. 올해는 행사 없이 교통통제만 하고 있는 탓에 한결 나아졌지만 밤마다 보도블록 바닥에 설치한 색색깔의 조명으로 벚꽃을 비추는 건 정말 흉하다. 우리는 벚꽃을 보러 온 것이지 인공의 조명에 갇힌 클럽에 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 벚꽃의 색을 감상하기 어렵다면 은은한 형광빛 정도만 비추어도 충분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 항상 남았다.
아무튼 올해의 벚나무도 압도적 몰입감을 선사하는 흐드러진 꽃망울을 뒤로하고 여름을 맞기 위해 초록 잎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그러다가 얼마 안 있으면 쓸쓸하면서도 원숙해 보이는 누우런 가을로 변신해 있을 것이다. 복직 43일 차, 난 다시 가을까지 이곳에서 버텨야 할 명분 하나가 생겼다. 작년에 놓친 윤중로의 가을을 만끽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제 6개월도 남지 않은 그 시간 동안 나는 은근과 끈기의 민족으로 산다.
오늘의 감상,
아침마다 둘째를 등교시키는 코스에는 사당역사거리라는 상습 정체구간이 있다. 한 블록 앞의 이수역에서부터 막히기 시작하는데 과천으로 빠지는 직진 차량들 때문에 나는 우회전 대기를 10여분 이상 하기 일쑤다. 일찍 집을 나서도 이곳에서의 변수는 언제나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고, 특히 교통체증이 심한 월요일에는 대책이 없었다. 그래서 지난주에 인터넷 지도를 뒤지고 뒤져 우회로를 찾아냈다. 3일째 시도한 결과는 대성공... 이제 아이의 등굣길에도 적응이 되어간다.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이 지금의 문명세계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날이다. 봄의 환희가 사라졌으니 이제 뜨거운 여름을 버티려면 모든 것에 적응해야 한다. 어제 퇴근하면서 자동차 에어컨 냉매를 충전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더워지기 전에 꼭 미리미리 해놔야지 되뇌었건만 이렇게 빨리 더워질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