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일기, +45일(2022. 4.14)
현대사회는 속도의 지배를 받는다.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언택트 시대를 향유하는 배달앱 전성기이기도 하지만, 5G 이동통신이 상징하는 통신속도 경쟁은 유독 이 나라에서 꽤 오래전부터 각광을 받아왔다. ADSL이나 FTTH라는 단어가 요즘 세대에는 생소하겠지만 본의 아니게 IT라는 전공을 했던 나에게는 놀라운 속도의 변화가 내 사회경력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된 듯도 하다.
90년대 말 어렵게 모 대기업의 공채시험 최종면접에 갔다가 수모를 겪었던 일화를 하나 소개해 본다. 대학 4학년 때 IMF 구제금융 직격탄을 맞았던 나의 동기들은 일찌감치 취업이 결정되었던 기업에서 합격 유예 통지를 받기 일쑤였다. 당시엔 대기업들이 연말 공채를 실시하기 전에 대학 취업지원실로 특채 원서를 나눠주는 게 유행이었다. 미리미리 원하는 인재들을 뽑기 위해서 일정 조건(학점, 영어성적 등)을 충족하는 특정 대학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력을 미리 선발하는 방식이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당시엔 서울의 어지간한 공대생들에게는 이런 기회가 꽤나 흔했다. 특히 전기/전자/컴퓨터 분야 전공자에게는...
3학년 말에 이미 특채를 뽑아 겨울방학 중에 합숙교육을 빙자한 연수까지 시키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물론 기업이 원하는 일정요건을 충족한 이들에 한해서 말이다. 이렇게 미리 취업이 결정된 친구들은 4학년을 거의 놀면서 다니기 마련이다. 너무 방심한 나머지 졸업요건을 채우지 못해 교수님들을 찾아가 애걸하는 친구들도 간혹 있었다. 졸업을 못하면 입사는 취소되기 때문이었다. 성적이 모자라 이런 기회를 얻지 못한 나 같은 부류들은 그저 부러움의 눈으로 묵묵히 부족한 학점을 채우며 4학년을 다녔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하듯 1997년 11월에 터진 IMF 사태는 이런 예비취업자들에게 후폭풍을 가져왔고, 심하게는 대학 졸업 후 2년이 지나 정식 임용이 되는 이들도 있었다. 어차피 이들과 다른 길을 걷던 나는 어머니의 눈칫밥을 견디기 어려워 연말 대기업 공채에 지원서를 냈고 우여곡절 끝에 최종면접을 가게 되었다. 내키지도 않는 일이었지만 한가닥 희망을 갖고 들어간 면접장에서 난 단칼에 잘리고 말았다. 내 학업성적을 보았을 면접관은 연말 공채시장까지 밀려온 나에게 기대하는 바가 전혀 없었다. 뭐라도 질문을 해야 했던지 이렇게 물어보았다.
"ISDN이 뭔가?"
뜬금없는 질문에 난 "초고속 정보통신망입니다."라는 알맹이 없는 단답형 대답을 하고 말았다. 실제 알고 있는 게 그것이 전부이기도 했다. 면접관은 다시 내게 "약자를 풀어서 말해 보라고..." 하면서 말끝을 흐렸고,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나에게 결국 이렇게 자문자답을 했다. "I Still Don't kNow 구먼"
그 면접관은 자신의 순발력이 훌륭했다고 생각했는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고 옆에 있던 몇몇 다른 이들도 못 이긴 듯 따라 웃기 시작했다.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새빨개져서 면접이 끝날 때까지 넋이 나가 있었고, 그 뒤로 나에겐 한마디의 질문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와 함께 면접을 보던 일행이 문밖을 나가려는 순간 등 뒤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1번 A, 2번 C, 3번 D...."
나의 면접점수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자리를 뜨지도 않은 이들의 등 뒤에서 우리의 서열은 이미 결정되었고 순식간에 결과가 통보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속도의 면접 진행이었다.
ISDN은 Integrated Services Digital Network의 약어다. 쉽게 말해 종합적인 서비스(음성, 문자, 영상 등)를 제공하는 디지털 통신망이라는 말이고, 당시 전국에 광케이블이 깔리면서 통신서비스의 양과 질이 급격하게 올라가던 시기를 대표하는 단어였다. 온갖 광고에서 인용되기도 하였고... 그때는 모든 아날로그 시스템이 디지털로 전환되던 시기였다. 나는 ISDN도 아직(Still) 모르는 공대생으로 낙인찍혔고 그 뒤로도 꽤 긴 청춘의 암흑기를 겪었다.
뜬금없이 오늘 아침에 이 불편했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속도와 관성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그것도 속도에서는 월드 클래스를 선도하는 도시 서울에서 주변의 모든 속도를 무시하고 잠시 정지해야 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요즘 나의 평일 아침은 바쁘고 부산하다. 8시에 모든 일정이 시작되는 학교 앞에 아이를 7시 40분까지는 내려줘야 한다. 아이는 중학교 3년 내내 출석부 담당을 하더니 고등학교에 가서도 기어이 그 일을 맡고야 말았다. 그래서 더 서두른다. 조급해하는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나는 그날의 교통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막히지 않는 길에서는 최대한 신속히, 막히는 길에서는 최대한 효과적으로 차선을 변경하면서 차를 운행해야 한다.
이렇게 시간에 쫓기는 일은 집중력을 키워주는 한편으로 쾌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 예정된 시간 내에 아이를 내려주고 나서야 잠시 한숨을 돌릴 수 있다. 그때부터 비로소 여유로운 출근길이 시작된다. 나는 가벼운 음악을 들으면서 제법 막히는 길에도 큰 불만 없이 운전을 한다. 기어서 가더라도 출근시간은 넉넉하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 그렇게 여유만만하게 운전을 하던 중에 길을 건너는 젊은 남자 둘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한 손에 커피를 들고 한 손은 주머니에 꼽은 채 아주 천천히 무단횡단을 하고 있었다. 넓지 않은 2차로였고 마음도 넉넉하여 나는 잠시 차를 세우고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려 주었다. 평소 같으면 짜증이 났거나 양보할 마음이 없어 보이게 위협적으로 운전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조금은 버릇없어 보였던 젊은 친구 중 한 명이 아주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나의 양보에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인사를 받아줄 틈도 없이 그들은 지나가 버렸다. 선팅으로 어두운 운전석이 잘 보이지 않았겠지만 나는 같이 고개를 숙여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느긋하게 길을 건너던 그 친구에게서 남모를 품위가 느껴졌다. 그를 본 나의 첫인상에는 잔뜩 편견이 끼어있었지만, 그는 젠틀하고 품격 있는 사람이었다. 그들을 보내고 나서 내내 기분이 훈훈했다. 그리고 내 삶에서 그와 같은 여유나 품위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이 불편했다.
오십을 넘긴 나이에도 나는 여전히 조급하고 까다롭고 까칠하다. 나를 존중하지만 나를 편하게 느끼지 않는 주변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예의를 갖추어 타인을 대하지만 그들은 나에게서 거리감을 느낀다고 한다. 친해지고 싶지만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 이 말은 내가 학창 시절부터 줄곧 들어오던 얘기다.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가시가 있다. 나도 그것을 안다. 그 가시 덕에 남들이 나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는 거라는 위안을 해보지만 결국 내 피해의식과 열등감이 나를 까칠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안다.
마흔을 넘기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게 있다.
"몸은 가볍게, 말은 신중하게, 움직임은 부지런하게, 마음가짐은 너그럽게"
나는 항상 몸과 말에서 겨우겨우 이것을 지키다가 만다. 내가 부지런해 보이는 건 마음이 조급해서다. 남에게 폐 끼치기 싫고 책 잡히기 싫은 마음에서 그저 내 할 일은 해내자는 생각으로 바쁘게 살뿐이다. 나에게 여유가 없는 건 내게 느긋함이 없기 때문이다. 내게 느긋함이 없는 건 넉넉함이 없기 때문이고 넉넉함이 없는 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난 쪼들리고 가난한 마음으로 오십 고개를 넘었다. 부끄러운 나를 발견하게 해 준 젊은 친구가 부럽다.
나의 속도는 늙고 찌든 욕심과 이기심이었다. 참으로 하찮았다.
오늘의 감상,
복직하자마자 쏟아진 몇 가지 일들이 수습되면서 엊그제부터 나는 자리에 앉아 농땡이를 부렸다. 머릿속이 지쳐 있을 땐 그저 멍 때리고 쉬는 게 제일이다. 그리고 내일은 복직해서 처음으로 재택근무를 신청했다. 곧 제도 자체가 없어질 것 같기도 했고 아이 때문에 한 번도 써보지 못한 게 아쉬워서이기도 했다. 그런데 점심때 갑자기 다음 주 초 정도로 생각했던 일정이 당겨지면서 나의 오후는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갔다. 나는 양치를 하지도 못한 채 자리에 앉아 꼬박 3시간 30분 동안 미친 듯이 보고서를 수정했다.
오늘 타이밍을 놓치면 내일의 재택근무를 취소해야 할 수도 있고 전체 일정이 뒤로 밀리면 또 다음 업무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정해진 시간 내에 일을 처리하는 면에서 꽤 높은 생산성을 자랑해 왔다. 다만, 쫓기듯 해 놓은 일은 항상 실수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대세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작은 실수들이 드러나지 않게 일을 처리하는 재주가 있다. 그 속도감은 나의 경쟁력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무서운 속도로 일을 마무리할 무렵 당겨졌다고 생각한 일정이 처음의 계획대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굳이 오늘 이 난리굿을 치지 않아도 될 일에 굳이 요란법석을 떤 꼴이 되었다. 갑자기 무력감이 들어 일을 놓고 나니 오늘 아침에 만났던 친구가 떠올랐다. 오늘 점심에 예상했던 일정이 어긋났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의 속도감으로 그것을 따라잡을 생각을 하지 말고 정상적인 속도로 일을 처리할 계획을 다시 세웠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남들이 못하는 시간 내에 해낼 수 있다는 것 따위로 스스로를 차별화하다니 그저 나이를 허투루 먹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난 그저 조급하고 까칠한 오십 대일 뿐이었다. 언제 철이 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