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일기, +52일(2022. 4.21)
직장생활을 하는 이들치고 업무에 대한 압박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모든 조직은 최적화된 상태로 운영되기를 원하지만 그건 다른 말로 최소의 인력으로 최대의 성과를 내자는 말이기 때문이다. 결국 적은 인력으로 많은 일을 해내길 바란다. 그럼 당연하게 따라오는 게 업무에 대한 압박감이다. 제 아무리 능력이 출중한 인간도 업무량과 성과에 대한 부담을 즐기긴 어렵다. 대부분 이걸 즐기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건 능력에 대한 찬사와 보상이다. 이건 단기적으로 잠재력을 끌어내어 놀라운 성과를 만들기도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인간을 망가뜨린다.
그래서 어떤 조직에서 소위 에이스라는 칭호를 받는 이들 중에 심각한 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몸을 돌보지 않고 일에 몰두하면 그렇게 된다. 그는 능력 이상의 재주를 부린 것이다. 그러나 조직은 그가 병에 걸리거나 말거나 그에게서 뽑아먹을 만큼 뽑아내면 그만이다. 그렇게 버려진 인간들이 뒤늦게 소모품이었던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새 삶을 꿈꾸거나 슬프게 운명하는 류의 드라마가 먹히는 이유다. 모가지에 걸린 넥타이와 신분증에 우쭐대던 신입도 몇 년이 지나고 나면 흐트러진 모습으로 낮에는 니코틴과 카페인, 밤에는 니코틴과 알코올에 의지하며 연명하게 되는 것이다. 표현이 좀 과한 측면이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직장인에게 압박감은 필연이다. 그걸 어떻게 관리하는가가 직장에서의 성공(?)을 보장한다. 그런데 난 도무지 이 압박감 하고는 친해지기가 어렵다. 직장이 불편한 건 바로 이런 감정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업무 압박을 벗어나고 나면(아주 잠시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 거드름을 피운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 초조하고 긴장되어 표정관리가 어려웠는데 말이다. 압박감과 성취감 사이에서 불안한 동거를 해야 하는 직장인은 마약에 중독된 환자와 다름이 없다. 내 기준에서는... 모르핀의 환각 증상은 오래가지 않는다. 중증 환자가 아니고서야 이것으로 삶을 연명할 수는 없다.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현대인에게 가벼운 긴장과 불안은 삶의 무료함을 이기는 힘이 되고, 더 큰 성취를 맛볼 수 있는 일종의 통과의례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차이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차이를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부여한 기준이 있다.
"Not so bad"
직장에서 내게 벌어지는 상황들이 "너무 나쁘지 않다"면 거기까지는 견뎌야 한다는 것. 내게 일어나는 상황들이 단순히 나를 자극하여 더 나은 성과를 내게 하려는 독려(?) 정도로 이해되면 그건 참아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순수한 의도를 넘어 나를 배제하거나 뭉개거나 밟으려는 불순한 목적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다면 참아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여섯 번째 직장을 9년째 다니고 있다. 우린 참아야 하는 것과 분연히 맞서야 하는 걸 구분하고 선택해야 하는 숙제를 늘 안고 산다. 남의 돈 받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오늘의 감상,
복직하고 한 달 반 동안 마무리한 보고서의 최종 평가를 코앞에 두고 이 글을 쓴다. 오후에 잡혔던 회의가 갑자기 다른 일정 때문에 늦춰졌다. 자칫하면 다른 날로 연기될 수도 있다. 누군가로부터 평가를 받는다는 게 조직생활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언제나 불편하다. 누군가의 업무 결과를 평가하러 오는 이들은 칭찬만 하고 갈 수는 없다. 물론 그럴 마음이 애당초 없기도 하다. 그들이 갖은 꼬투리를 잡아 남의 원고를 트집 잡을 생각을 하면 제아무리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도 견딜 제간이 없을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겸허히 받아들이려 하지만 언제나 이 자리에 서는 마음은 고약하다. 그저 고약하다는 말 외에는 적당한 표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