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일기, +55일(2022. 4.24)
정당한 이유 없이 십원도 손해보지 않으려는 세상, 인터넷 최저가를 무한 검색해야만 물건 하나를 살 수 있는 세상, 당신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호갱이 되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등쳐 먹히지 않기 위해 들이는 노력치고는 그 이문이 너무 하찮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저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으려는 강박이 우리의 태도와 삶의 패턴을 지극히 소모적이고 피곤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기름을 물쓰듯 쓴다는 게 죄악시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어린날의 기억에 세뇌된 탓인지 언젠가부터 주유소마다 걸어놓은 리터당 단가에 집착하게 되었다. 10원이라도 더 싼 곳에 가기 위해 1킬로미터는 가볍게 손해를 보는 어리석은 부류까지는 아니더라도 합리적인 가계 소비자라는 타이틀에 대한 과한 집착에 빠졌던 내 자신을 인정한다. 그렇게 자주 이용하는 주유소가 동네에 있다. 가격이 저렴했고 멤버십 카드가 있는 브랜드여서 굳이 따로 만들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집으로 드나드는 길목에 있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그런데 이곳을 이용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직원들의 불친절이었다. 긴 세월 탓에 직원이 수시로 바뀌었지만 퉁명스럽고 형편없는 서비스는 변하지 않았다. 팀 칼라라는 게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식당이건 주유소 건 어떤 조직이나 부서건 모두 변하지 않는 색깔이 있다. 주인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직원들의 성향에 묘한 공통점이 보인다.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그 주유소가 그랬다. 언제나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구분이 애매한 말투와 고압적인 자세, 성가신 듯 귀찮은 듯 대하는 태도 하나하나가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딱히 나와 신경전이 오간 적은 없었지만 성격 급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이라면 백이면 백 싸움이 났을 것 같은 묘한 분위기… 그곳이 그랬다. 그곳 직원들의 그런 성향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농담 삼아 무슨 조폭에서 인수한 주유소 아니냐는 말을 했을 정도로 매번 거북한 상황이 연출됐다. 셀프주유소로 바뀐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셀프주유소가 들어서기에는 너무나 비좁은 공간에 무리하게 주유기를 여러 대 설치한 까닭에 운전이 미숙한 분들이 오는 경우 말썽이 자주 생겼다. 자동세차를 할 때는 더했다. 손가락만 까닥 대면서 차를 앞으로 뒤로 이동시킨 후 세차기에 밀어 넣는 그들의 방식은 가끔 내가 서커스단의 동물처럼 다루어진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그곳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아주 급한 경우가 아니면 잘 이용하지 않았다. 대기업에서 직영하는 큰 셀프 주유소를 찾아내고는 더 그랬다. 그러다 요즘 다시 예전의 그 불편한 주유소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동선이 바뀌기도 하였지만 휘발유값이 급등하면서 그 고약한 주유소의 장점이 부각된 것이다. 저렴한 휘발유값, 저렴한 자동세차비… 그 어리석은 선택이 오늘의 사태를 일으키고야 말았다.
마침 내가 주유소에 진입하던 순간에 직원은 한 명뿐이었고 그조차 자동세차기 앞에서 세차하기 위해 서 있는 차들을 신경 쓰느라 주유기가 설치된 공간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내 차는 왼쪽에 주유구가 있어서 들어갈 수 있는 라인은 두 곳뿐인데 마침 한 라인에는 오토바이가, 나머지 한 라인에는 거대한 SUV 차량이 들어서 있었다. 문제는 그들 앞에 각각 두 곳의 주유기는 텅 비어 있었는데 모두 제일 끝에 위치한 주유기에서 주유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별 수 없이 주유 라인 밖에서 대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경우(?) 없는 직원이 나와 제일 앞에 위치한 주유기로 가라고 난리를 친다. 그런데 그날따라 나와있는 직원이 한 명도 없었고 양쪽 라인의 주유기를 차지한 두 분은 모두 셀프주유가 생소한 연로하신 분들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린 끝에 한쪽 라인에 자리가 나서 그리로 들어갔다. 물론 나는 제일 앞에 있는 주유기에 멈추었고 내 뒤에는 두대가 더 주유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나는 셀프주유에 익숙한 편이고 평소 성격이 급한 탓에 이런 곳에서 절대 굼뜨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주유를 마치고 영수증을 뽑아 차에 타는 그 순간, 그때까지 이쪽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세차 라인의 직원이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동해~~~~~~(요?)"
자리가 텅 빈 주유소에서 오래 기다린 탓에 썩 기분이 좋지 않았던 차에 직원이 짧고 굵게 나를 재촉하는 소리를 내는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그런데 그와 거의 동시에 건물 안 사무실에 있던 젊고 껄렁한 직원이 나오면서 또다시 나를 향해 "이동하세요!"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방금 차에 탔고 안전벨트를 메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10분 넘게 기다려서 겨우 주유를 마친 나에게 쫓아내 듯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아마도 내 앞에 계신 분들의 서툰 셀프 주유 탓에 뒤에 차들이 밀려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공연히 욕은 내가 먹고 있는 꼴이었다.
정말 한순간 온몸이 꿈틀 하면서 차에서 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 앞과 뒤에 있던 직원을 모두 불러 모아 호통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알지만 정말 이성을 잃을 뻔했다. 겨우겨우 마음을 추스르면서 주유소를 나왔지만 개운하지 않은 마음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그리고 곰곰 생각해 보니 이 주유소가 형편없는 서비스로 유명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몇 푼 아끼자고 여기에 온 내가 한심해졌다. 리터당 몇십 원 차이라면 결국 연료통을 가득 채운다고 해봐야 1~2천 원 차이가 날 것이다. 그 돈을 아끼자고 불쾌감을 담보 잡혔으니 나는 어리석고 또 어리석은 인간이다. 누구를 탓하랴? 푼돈에 간과 쓸개를 팔아버린 내가 바보였다. 이래서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소리를 듣는 거다.
오늘의 감상,
잔뜩 주유소에서 마음이 상해 집에 왔는데 화장실 발판에 올라서는 순간 아내가 강아지 배변판을 씻다가 흘려서 흥건해진 물에 발이 첨벙 빠졌고 마침 배달앱으로 주문한 점심 메뉴가 서버 다운으로 30분이 넘도록 식당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제나 이런 참사는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특성이 있다. 나의 뒤틀린 심뽀를 알기라도 하듯 말이다. 마음의 평정을 찾는 게 어려운 날이었다. 바이오리듬이 최악인 날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