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일기, +57일(2022. 4.26)
우연히 출근해서 달력을 보니 오늘이 4월 26일이었다. 나에게 4월은 애잔한 달이다. 4월은 잔인할 만큼 맑은 달인데 그래서 더 잔인한 일이 많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미세먼지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20여 년 전의 4월은 계절의 여왕이었다. 나는 여름 초입 같은 5월보다 4월을 최고의 계절로 친다. 그래서 '사월'이 여인의 이름으로 쓰였는지도 모른다. 영어 'April'도 여자아이의 이름으로는 그만이다.
그 4월 중에서도 26일은 내게 특별하다. 내가 이 날에 유독 혼자만의 감상에 빠진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내 주위에 없다. 그 이야기를 할 상대가 없기도 하다. 그저 매년 이날이 되면 여러 가지 상념이 떠올라 복잡한 심경이 되어 버리곤 한다. 4월 26일을 달력에서 찾으면 세계 지식재산의 날(World Intellectual Property Day)이라고 나온다. 이 날이 제정된 것이 2001년이라고 하는데 나와 이 날의 인연은 1997년부터 시작되었다.
대학 4학년이던 1997년 4월 26일에 나는 한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 4년 동안 징글징글한(?) 연애를 했고 2001년 4월 26일에 결국 종말(?)을 맞았다. 내 연애가 끝을 맺던 날에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운명과도 같은 지식재산(IP)의 날이 제정되었다. 나는 1998년부터 당시 공대생들에게 인기가 높던 변리사시험에 도전하였다. 그리고 세 번의 고배를 맛보고 깨끗이 접었지만 그 뒤로 나의 사회생활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IP가 되었다.
내가 첫 번째 연애(다운 연애)를 시작한 날이 1997년 4월 26일이고, 처음으로 변리사시험에 응시했던 날이 1998년 4월 26일이며, 수험생활을 접고 취업한 후에 결국 첫사랑과 헤어진 날이 2001년 4월 26일이다. 그날은 세계 지식재산 기구(WIPO)가 기념하는 World IP day가 되었다. 헤어진 날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건 그날 그녀와의 커플 요금제를 해지하였고 그날을 거꾸로 하면 나오는 6월 24일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기 때문이다. 나의 연애가 실패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게 밤샘 작업을 밥먹듯 하는 공대 대학원생 여자 친구와 수험생인 내 삶의 루틴이 너무나 달랐다는 거였다.
그 뒤로 한동안 4월은 나에게 잔인한 달이 되었다. 나는 1997년 4월에 처음으로 연애를 시작했고 1998년 4월에 처음으로 도전을 시작했지만 2000년 4월에 자의 반 타의 반 그 도전을 접었고 2001년 4월에 자의 반 타의 반 그 연애를 접었다. 2000년을 전후하여 해마다 4월은 기가 막히게 화창했다. 나는 4월에 희망의 서사를 쓰다가 4월에 절망의 나락에 빠졌다. 그렇게 4년 간 해마다 4월은 내 삶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그런데 오늘이 4월 26일이다. 20년이 넘게 지났건만 내게 4월 26일은 여전히 우울하다. 그래서 오늘은 각별히 긴장해야 할 것 같다. 오늘의 운세를 보며 말도, 행동도 조금 더 조심해야겠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오늘의 내 운세 총운은
"할 수 있다"
라고 한다.
오늘의 감상,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작년 5월부터 10개월의 휴직을 감행하였지만 사실은 남은 연가를 쓰고 2021년 4월 26일부터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 2001년 그날로부터 딱 20년 후에 나는 또 한번 절망의 끝자락에서 다시 일어섰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