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를 견뎌라

복직일기, +70일(2022.05.09)

by 낙산우공

니체는 '깊이와 무게를 혼동하지 마라'라고 했지만, 우리는 늘 그것들을 혼동한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우리의 속은 얼마나 깊은지 혹은 무거운지 알 수가 없다. 하물며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데 누가 남의 속을 꿰뚫어 알 수 있을까? 나의 깊이를 모르니 그것이 깊지 않은 것은 자명하다. 내가 깊어졌다면 깊이를 모르는 것을 떠나 그것을 의식하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고로 나는 무거울 뿐 깊지 않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거창한 이야기 같지만 모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 사회가 지극히 개인적인 집단이든 보다 공적인 조직이든 관계없이 우리는 어떤 사회에 소속되어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모든 사회적 지위(?)는 나에게 왕관이다. 그것이 화려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위에 따른 행위가 요구된다는 뜻이다. 그 왕관은 무게의 경중이 있을지 몰라도 어느 것이건 새털처럼 가볍지 않다. 누구나 그 왕관의 무게를 감당해야 할 책임을 진다. 원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말이다. 화창한 5월의 연휴는 내게 그저 가정의 달을 관통하는 무게의 연속이었다.


오늘 아침, 피로감이 밀려오는 월요일 나의 출근길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들이 함께 했다. 지난주 금요일 중간고사가 끝나서 홀가분했던지 등굣길 내내 밝은 목소리로 조잘대던 아들은 오늘 아침엔 초반부터 수면모드다. 그 깊은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틀었던 음악을 줄이고 줄이다 결국 끄고 말았다. 그 순간 이 아이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아직 절망보다 희망이, 슬픔보다 기쁨이 많을 나이지만 이 아이를 짓누르는 미래의 무게는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작년까지 큰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큰 아이는 찰나처럼 스치는 자유를 만끽할 새도 없이 더 큰 장벽을 만날 것이다.


두 아이의 입시를 지켜보면서 나는 10대 아이들이 이고 지고 가는 삶의 무게가 50대 가장의 그것 못지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어도 나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환경을 마련하고 그 안에서 여러 복합적인 감정(권태, 피로, 우울, 불안...)을 추스르며 버티고 있지만, 아이들은 불투명한 미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아직 여물지 않은 여린 감성을 간직한 채 외롭게 싸우고 있다. 사춘기 아이를 대할 때 아이의 느닷없는 분노에 당황하지 말고 그 뒤에 숨겨진 불안을 보라는 이야기처럼 아이들은 불안을 숨기기 위해 때론 분노하고 때론 침잠한다.


내가 살아온 날의 반의 반 정도 살아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 가혹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냉정하고 단호한 세상의 이치를 조금 일찍 배우는 거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나는 그의 가벼운 입에 한방을 날릴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는 세상의 이치는 정글의 법칙이 아니다. 정당한 노력이 합당하게 보상받는 사회가 이상적이지만, 우리 사회는 그렇게 공정하고, 평등하며, 정의롭지 못했다. 그러니 받아들이라는 말을 10대 아이들에게 한다면 그 어른은 직무유기다. 모든 기성세대는 아이들이 겪어내야 하는 사회에 책임이 있다. 책임을 진 자가 책임을 외면하는 것만큼 부끄럽고 추한 것은 없다.


오늘 나는 세상의 무게를 혼자 지고 가는 것처럼 최면에 빠져 허우적 대던 늙고 추한 자신을 발견하였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내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난 그저 지겨움과 싸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 이제껏 쌓아온 세평에 행여나 상처가 갈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지난 50년을 잘 살아오지 못했다. 나는 깊이가 없다. 도대체 상처가 날만한 명예가 내게 있었는가?


내가 지금의 삶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욕망의 실체는 사실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나는 쌓아온 명예가 없다. 고로 무너질 것이 없다. 내가 그럴듯하게 포장한 나에 대한 환상은 사실 아무런 근거가 없다.


'우리가 확고하게 믿는 신념들의 근거는, 사실 아무런 근거가 없다.

너는 얼마나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느냐?

나의 삶에 필요한 것들은, 사람들이 내다 버리는 것이다.'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오늘의 감상,

내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 전전긍긍해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은 타인의 시선이었다. 누구에게도 조롱당하거나 무시받지 않을 만큼 당당하고 번듯한 나를 지키고 싶었다. 언제나 그것이 아닌 척하였지만, 나는 뼛속부터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알려면 나는 또 얼마나 깊어져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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