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복직일기, +71일(2022.05.10)

by 낙산우공

끔찍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열 달을 쉬어도 돌아오고 싶지 않더니 기어이 사달이 났다. 아무 일 아니라 넘어갈 수도 있지만 편치 않던 마음에 일까지 터지니 정녕 이렇게 끌려가야 하는 것인가? 회의감이 물밀 듯 밀려온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50대 가장에게 선택지란 없다. 그러나 자존감을 저당 잡히고 생업에 종사하는 일이란 언제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복직한 지 꼭 70일이 되는 날, 몇 달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 이 참담함을 숨긴 채 또 하루하루를 살아가려니 적어도 하루는 쉬어야겠기에 대통령 취임식에 맞추어 연가를 냈다.


삶을 부정당했을 때 그것이 억울하든지 부당하든지 관계없이 결과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도망간다고 내게 덧씌워진 부끄러운 결과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위로는 순수했던 의도와 달리 굴욕감을 상기시키는 기제가 되고 숨어도 나아가도 당최 수습이 되지 않는다.


어떤 이유에서건 어제 나의 보고서는 엎어졌다. 그럴 정도가 아니었다는 합리적 의심을 갖지만 난 대세를 뒤집을 힘이 없다. 무력하지만 상황을 받아들였고 총총히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모두가 퇴장할 때까지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그 마지막 자존심이 그들에게 어찌 비추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부끄러움을 감당해야만 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더 부끄럽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복직하고 정신없이 일을 했던 이유는 복잡하고 뒤틀린 마음을 외면하기 위해서였다. 공교롭게도 그 결과가 통째로 부정당했으니 난 휴직할 때와 똑같은 고민에 봉착해 버렸다. 이미 나와는 끝나버린 인연을 구차하게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이 고뇌의 결론은 너무나 자명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결론을 감당할 수 없는 내가 스스로 문제의 핵심을 응시하지 않을 뿐…


지금의 환경에서 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내 가족의 몫이 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50대 가장의 삶은 나를 속이지 않는다. 내가 삶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삶이 주는 메시지가 버거워 이 뻔한 상황을 왜곡하는 나는 50대 가장이다. 부끄러움 따위는 개나 줘버려야 하는 4인 가족의 가장이다.


자식을 위해 몸을 파는 어머니를 비난할 수 없듯 나는 정당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하찮음에 몸서리치지만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저 묵묵히 부끄러움을 감당하고 지겨움을 참고 우울감을 버티고 피로를 견디며 불안에 잠식당하는 수밖에… 나는 가족의 안락과 나의 자존을 바꿀 수 없다. 나는 비굴한 대한민국의 아빠다.




오늘의 감상,

아침 일찍 일어나 둘째의 등교 택시를 잡아주고 다시 누웠다. 반려견(호두)과 함께 잠이 들었지만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깨었다. 깊은 잠이 들만큼 피로하지만 어제의 사건이 여전히 내 잠을 방해한다. 예민한 호두는 깊은 잠을 못 자지만 가족들과 몸을 붙이면 세상모르고 잔다. 이 녀석은 내 몸에 엉덩이만 붙여도 그렇게 마음이 편안한가 보다. 나는 누구와 있을 때 마음이 편한가? 아무도 없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무게를 견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