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해방일지, 0일(2022.05.10)

by 낙산우공

대통령의 취임일에 맞춰 나는 내 삶을 해방시킨다. 어제부로 나의 복직이 불가피한 선택일지언정 바람직한 대안이 아니었다는 게 증명되었다. 따라서 더 이상 복직이라는 카테고리에 나를 묶을 수 없다. 그 칙칙하고 어두운 단어로 나의 50대를 열 수는 없다. 복직과 적응, 그 무한반복의 궤도에 나를 엮는 순간 나는 영원히 삶에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최근 내가 애정 하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복직하기 전 내가 열광했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같은 작가였다. 역시… 박해영 작가는 나의 휴직과 복직을 함께 하면서 계속 나를 위로하고 있다. 나의 아저씨에서 나는 삶의 무게를 홀로 이고 가는 동훈이에게 감정 이입되었는데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그 무게를 나름의 방식으로 버티어내는 염 씨 삼 남매에게 꽂혔다.


우리 모두는 삶에서 해방되길 꿈꾸지만 사실은 삶의 굴레에 어떻게든 몸을 이겨 넣고 산다.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바에는 갇혀 살던 의식이라도 해방시켜주고 싶은 이들이 모여서 해방 클럽을 만들었다. 동아리에 가입하라는 회사의 압력에 굴복하는 대신에 독자적인 모임을 결성한 세명의 아웃사이더는 그래서 용감하다.


오늘부로 나는 나의 복직일기를 접는다. 51편을 쓸 계획이었으나 숫자를 뒤집어 15번 만에 끝을 맺게 되었다. 나의 복직은 도전이 아니었다. 나의 복직은 나의 자발적인 선택도 아니요, 그렇다고 용감한 도전도 아니었다. 뻔한 결과를 알면서 끌려가듯 밀려왔을 뿐이다. 그것을 선택인 양 혹은 도전인 양 미화했던 나는 내 삶을 속였다. 오십에 휴직한 것은 도발이었지만 오십하나에 복직한 것은 항복이었다. 모든 항복의 결과는 예외 없는 굴욕이다. 어제의 굴욕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것을 알았기에 나는 계속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어떻게 종결될지 모르지만 나는 오늘부로 나의 해방일지를 쓴다. 나를 억압하는 족쇄를 하나씩 풀어낼 것이다. 물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말이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용의주도하게 하나하나 바로 잡을 것이다. 나는 언젠가 해방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단 하루도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다. 앤디가 쇼생크를 탈출할 수 있었던 건 실낱 같은 희망과 작디작은 망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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