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대하여

해방일지, +6일(2022.05.16)

by 낙산우공

우울한 복직일기를 접고 나만의 해방일지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지 일주일 가까이 되었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것인가? 이것부터 정리해야 앞으로의 계획이 그 윤곽이라도 드러나겠다 싶었다. 그리고 나니 모든 인류의 평등하고 보편적인 가치 '행복'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나의 기본권이며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 이것이 법치국가 대한민국의 헌법이 정한 가장 중요한 가치다. 그래서 나는 행복을 추구해 왔는가? 나의 행복 추구가 타인 또는 공권력에 의해 방해받았던 적은 없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나는 행복이라 생각하는 것을 추구해 왔다. 미래를 위해 대학에 갔고 취업을 했으며 결혼을 했고 자녀를 낳고 길렀다. 보다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이직을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부당한 대우를 받은 일이 딱히 없다.


즉, 나의 기본권은 크게 침해받은 일이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불행하다고 느낀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모든 국민에게 있지만 그 주체는 나 자신이다. 국가가 나로 하여금 행복을 추구하도록 권고하거나 강제할 수 없다. 국가는 내가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부당하게 침해받지 않도록 보장할 의무만 있다. 결국 나는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행복이라는 가치에 대해 잘못된 시각을 갖고 살아왔던 것이다. 원인은 내게 있었다.


그러면 내가 생각해왔던 행복과 지금의 불행은 어떤 관계인가? 내가 처한 불행은 사실 총체적 불행이 아니다. 즉, 내가 행복하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했던 많은 것들이 충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완벽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부가 내 삶을 불행하게 느끼도록 지배하고 있을 뿐이다. 아주 극히 일부가 말이다. 누구나 본인이 욕망하는 모든 것을 이루진 못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불행한 것은 아니다. 그러면 나의 우울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니 지금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충족되어야 하는 것일까?


사실 답은 너무 간단하고 뻔하게 나왔다. 그런데 그 답을 알아차리기 전에 지금의 나로 하여금 행복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나의 행복은 너무나 소박하고 하찮아 보이기까지 하였다.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기 위한 첫 번째는 가족의 평안이다. 내 가족 중 누구라도 근심과 고민에 빠져 있다면 나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건강에, 혹은 미래설계에, 혹은 인간관계에 어떤 문제가 생겨 고뇌에 빠져 있다면 말이다. 예민하고 소심한 내 성격 상 나는 그들과 같이 고민하고 노심초사할 것이 뻔하다.


그런데 이 문제는 내 의지로 해결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다행히 나에게는 이와 같은 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즉, 나의 행복추구를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제외하고 나면 나의 행복은 정말로 소박했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쓰며,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자유... 나에겐 이 정도가 행복이었다.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뜨겁게 사랑을 나누거나, 엄청난 부를 쌓아 떵떵거리며 살거나, 무언가 굉장한 일을 벌여 이름을 드날리고 싶은 욕망이 나에겐 없다. 난 어려서부터 남들보다 열정이 적은 아이 었고 9년 전 지금의 직장에 자리를 잡은 뒤로는 어떤 사회적 성장에도 욕심이 나지 않았다.


이만하면 되었다. 내 능력 이상의 결과였다. 로또 같은 횡재는 아니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과분하다고 느꼈다. 나의 현재 위치가 자랑스러워서가 아니다. 내 그동안의 삶이 고달팠기 때문에 고생의 보상은 어느 정도 받았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평안하지 않다. 그래서 1년 전 휴직을 감행했고 복직한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 내 삶을 부정하고 싶지 않지만 난 행복의 기준에선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내가 행복이라고 느끼는 것들로 채워지기 위해서 나는 백수가 되어야 했다. 이것이 답이었다. 그 어떤 사회적 구속도 받지 않는 완벽한 자유인이 되어야만 나는 행복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세상에 몇이나 그런 행운을 받고 살겠는가? 매주 로또와 연금복권을 사면서 나에게 대박의 요행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진정 어리석고 잔인한 희망고문이다.


결국 나의 행복은 완벽한 자유인으로서의 해방이다. 최소한 생업의 굴레를 벗어난 자유다. 그런데 말했듯이 내게 경제적 자유란 요원한 일이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지금껏 쌓아온 것은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지만, 그 결과가 내 가족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게 되는 걸 용납하긴 어렵다. 그래서 나는 현실적인 해방일지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잠정적 해방의 날을 정해 놓고 그날까지 조금씩 조금씩 생업의 굴레에서 나만의 자유를 찾아가는 일이다.


나는 2027년 10월 31일을 나의 해방일로 잡았다. 앞으로 5년 반도 남지 않은 시간이다. 그동안 내가 경제적 독립을 위해 충분한 자산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제 갓 대학생,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것만 생각해도 가계경제는 마이너스가 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굳이 가능성이 희박한 그날을 해방일로 잡은 이유는 간단하다.


나에겐 정년까지 10년 남짓의 시간이 남아있다. 그것을 다 채우고 나면 아마도 나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러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그 절반을 과감하게 날린 것이다. 나는 지금 당장 모든 걸 내려놓고 싶지만 그럴 형편이 아니기에 그 절반의 시간을 어떻게든 채워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래도 10년을 버티겠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리고 내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워가느냐에 따라 나의 심정적 정년은 당겨질 수도 있다. 내 경험상 5년은 무언가를 결행하기에 긴 시간이며 힘든 일을 참아내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나는 오늘부터 아침 일찍 출근하여 책을 읽기 시작했다. 소파 옆에 올려놓은 책이 1년 동안 먼지만 쌓여가던 것을 보다 못해 오늘 들고 나왔다. 이 책을 읽고 싶어 전집 10권을 장만한 게 수년 전인데 나는 3권을 채 읽지 못했다. 집에서는 도저히 책을 읽을 기운이 나지 않았다. 밤에 읽으면 잠이 왔고 낮에 읽으면 집중이 되지 않았다. 권당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이지만 의무감으로 읽는 책이 아닌데도 나는 힘겹게 읽어 나갔다.


아침에 아이를 등교시키고 직장에 오면 한 시간 가까운 시간이 남지만 나는 주로 구내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거나 인터넷 서핑으로 그 시간을 때웠다. 오늘부터 빈속에 요구르트 한 병을 먹고 책을 읽었다. 이렇게 하나씩 나를 변화시켜 보고자 한다. 그럼 나의 5년은 3년이 될 수도 혹은 1년이 될 수도 있다는 믿음으로 말이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은 시간에 읽지는 못하더라도 읽어나갈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오늘 내가 터득한 나만의 해방이다.




오늘의 감상,

일주일 전의 사건은 여전히 내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불쑥불쑥 떠오르고 꿈자리에도 나타난다. 그러나 이제 그 의식을 의도적으로 지우려 하지 않는다. 명상을 하면서 배운 것은 '알아차리기'라는 수련법이다. 내 의식을 지배하는 잡념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것으로도 우리는 그 잡념을 극복할 수 있다. 내 우울감의 원인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다 보면 마음의 평정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그때까지 나는 나를 지배하는 굴욕감의 대상과 계속 마주할 것이다. 의도적으로 끌어오지는 않지만 잠재의식 속으로 밀어내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많이 평안해진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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