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재와 대운

해방일지, +8일(2022.05.18)

by 낙산우공

삼재라는 말을 믿지 않았던 적이 있다. 명리학이니 토정비결이니 음양오행이니 하는 것들이 내 삶에 깊이 개입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예측할 수 없는 한해의 운을 점치고 싶었던 고대사회의 유물 정도라고 생각했다. 생년월일시만으로 한해의 운세와 평생의 사주를 꿰뚫을 수 있을까? 명리학도 결국 통계학의 영역이 아닐까? 과거를 짚어내는 신통함에 비해 미래는 언제나 개인의 의지에 달렸다고 하면서 교묘히 피해 가는 말들이 그 장르의 가치를 희석시키곤 하였다.


나의 삼재가 언제인지를 비로소 알게 된 것은 2006년 여름, 일본에서였다. 우연히 들른 도쿄의 한 사당에는 띠별로 삼재에 해당하는 시기가 목판에 걸려 있었다. 그 과거의 연도를 되짚어보다가 '아이쿠'하는 감탄사가 절로 났다. 나에게 1998년부터 2000년에 걸쳐 삼재가 들었던 것이다. 1997년 겨울에 이 나라를 덮친 IMF 구제금융 사태는 나의 삼재 해를 송두리째 흔들어 댔다. 나는 그때 처음 인생의 바닥을 치는 기분을 체험했다. 컴컴한 동굴에 갇혀 햇볕이 보이지 않는 날이 이어졌다. 그 끔찍했던 과거의 기억은 아직도 내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데 그때가 나의 삼재였다니...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삼재라는 말을 강하게 신뢰하지는 않았다.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이들이 모두 유사한 경험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는 삼재 해에도 승승장구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 삼재를 겪고 나니 나는 유독 삼재를 심하게 앓는 사주일 거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두 번째 삼재는 2010년부터 2012년이었고 이 때도 나는 인생의 바닥을 쳤다. 우리 나이로 마흔이 되는 2011년 1월 나는 자의 반 타의 반 백수가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유치원생 두 아이의 아빠에게 이보다 가혹한 시련은 없었다. 나는 4개월을 헤매다가 겨우 자리를 잡았다.


그때부터 나에게는 다음에 올 삼재에 대한 두려움이 시작되었다. 나의 세 번째 삼재 해는 올해부터다. 그 공포와 불안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작년에 내가 휴직을 감행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삼재가 시작되기도 전에 나는 그 전조를 느꼈고 이대로 대책 없이 삼재를 맞을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더 대책 없는 휴직계를 제출했다. 전부터 가장 걱정했던 것은 쉰을 맞는 나이에 삼재를 겪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내가 겪은 두 차례의 삼재는 매번 나의 신분을 변화시켰다. 백수에서 대학원생으로 그리고 직장인으로, 직장인에서 백수로 그리고 공무원으로....


나에게 삼재는 항상 사회적 신분의 변화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공무원 신분인 내게 또다시 삼재가 온다면 나는 더 이상 변화할 신분이 없었다. 그런데 그 시기의 나는 가장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해야 할 운명이었다. 내 자유의지로 변화를 시도하기에 나는 너무나 무거워져 있었다. 그걸 알기 때문에 내게 닥칠 시련과 변화를 감당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떻게든 조용히 세 해가 지나기만 바랄 뿐 나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초라하고 위태로웠다.


불안한 마음으로 작년 연말에 토정비결을 봤는데 기가 막히게 좋은 운세가 나왔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운세였다. 삼재가 시작되는데 어떻게 이런 운수가 나올 수 있을까 의아해졌다. 재미 삼아 보는 토정비결이 썩 맞지 않는 해가 많았기에 평소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겠지만, 올해는 남달랐다. 믿을 수 없었다.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다가 이런 걸 알게 되었다.


"삼재와 대운이 만나면 복삼재가 된다."


사람마다 십 년 단위로 인생의 큰 변화가 생기는 대운이 있는데 나의 대운은 매번 한 살 때 찾아온다고 했다. 서른하나, 마흔하나, 쉰 하나... 이렇게... 올해 나는 우리 나이로 쉰한 살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 나의 대운과 삼재 해가 딱 맞아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섣불리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불안한 마음을 조금은 잠재울 수 있는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용기를 내어 복직을 했는데 나의 복삼재는 온데간데없다.


사업이나 정치를 하는 집안에서는 점을 많이 본다. 예측하기 힘든 승부수를 던져야 할 일이 많기에 그럴 수 있으리라. 나는 살면서 점을 친 적이 딱 두 번 있는데 한 번은 어린 시절 인사동 사주카페에 갔다가 억지로 본 것이고 두 번째는 가까운 지인 한분이 몹시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여 힘들어하길래 아는 분의 추천으로 도사(?) 한 분을 만난 것이다. 첫 번째는 기억조차 희미할 만큼 인상적이지 못했으나 두 번째는 용하다는 분이어서인지 꽤 신뢰가 갔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의 대운이 한 살을 주기로 온다는 것도 알았다.


사주팔자와 삼재, 대운이 제아무리 요란하게 나의 운세를 맞춘다 한 들 지금의 나를 통제할 수는 없다. 나는 그보다 이병률 시인의 글귀에서 나를 돌아본다.


"우리는 안 괜찮으면서 괜찮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혼자를 핑계로 혼자만이 늘릴 수 있는 힘에 대해 모른 척합니다. 누구든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겠지만 당신만은, 방에서 나와 절망하기를 바랍니다.


오래 전하지 못한 안부를 전합니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바다는 잘 있다. 나는 방에서 나와 절망하고, 혼자만이 늘릴 수 있는 힘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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