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력결핍장애라는 착각(2022. 4. 29)
둘째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오늘 첫 중간고사를 치렀다. 단단히 벼르고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기대를 걸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공부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유치원 시절부터 또래에 비해 교구놀이나 학습 진도를 잘 따라가지 못했고 그게 스스로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 같다. 자신감 넘치고 당당했던 아이가 소심해지더니 친구를 사귀는 일도 쉽지 않아 했다. 짓궂은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기 일쑤였고 그렇게 시작된 불화가 아이들과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학습부진아를 대상으로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상담 프로그램에 추천되기도 하였다. 아이들 앞에서 공연히 놀림감이 될 것을 걱정하여 학교의 제안을 거절하였고 대신에 알음알음 전문상담센터를 알아보고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는 우려했던 일들(학습부진, 소통장애...)에 대한 과학적인 진단이었다. 우리 아이는 조용한 ADHD였다. "세상에 그런 것도 있나?" 싶었지만 8년이 흐른 지금은 꽤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금쪽이 어쩌구 하는 아동관찰 예능을 통해서 말이다. ADHD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말하는데 우리 아이는 과잉행동장애가 없는 ADHD라는 거였다. 쉽게 말해 주의력결핍장애(ADD)였다. 자주 '멍' 때리는 아이들을 이런 부류라 칭하기도 한다.
그 결과를 알게 되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우리는 아이의 증상에 대한 과학적 진단을 받았을 뿐 뾰족한 해법은 제시되지 않았다. 그저 그것으로 족했다. 나는 아이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고(특히 학업적인 면에서...), 그저 밝고 건강하게 자라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못한(?)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아이는 누구보다 크고 야무진 꿈과 야망이 있었다. 그걸 외면하는 건 부모로서 직무유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아이가 중학교 2학년 첫 학기 시험을 망친 뒤부터 아이의 공부를 봐주기 시작했다. 대학 때도 제일 싫어했던 일이 과외 알바였는데 가장 가르치기 힘들다는 자기 자식을 상대로 과외를 하게 된 것이다.
그 지난하고 힘겨웠던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가끔 불같이 화를 냈고 아이는 엄마를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그런 모습이 참 못났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그런데 아이는 마음이 너무나 여렸다. 반면에 잘하고 싶다는 의지는 너무나 강했다. 그렇게 우여곡절의 시간이 흘렀고 아이는 제법 성적을 올려서 원하는 예고에 입학했다.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지만 그동안 아이는 자신감을 많이 회복했다. 성취보다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은 없다. 무언가를 이루어냈을 때 느끼는 희열은 찰나에 그치지만 그때 흡수된 자신감은 평생을 간다.
그래서 아이는 고등학교 입학 후에 더 성실해졌고, 더 단단해졌다. 통학거리가 멀어 힘들어했지만 꿋꿋하게 견디는 모습이 기특하여 나도 새벽마다 아이의 등굣길을 함께 했다. 중간에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일주일간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훌훌 털고 다시 일상에 복귀했다. 그렇게 오늘 첫 중간고사를 보았다. 그것도 본인이 가장 자신 있어하는 국어과목이었다. 열심히 준비했고 모의시험 결과도 좋았다. 그런 아이가 시험이 끝난 후 카톡창에 이런 글을 올렸다...
"만(망)했어... 죽고 싶어"
아침 일찍 학교로 나서며 "목표를 100점으로 수정했어"라고 자신 있게 말하던 아들이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궁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험 종료 5분을 남기고 OMR카드를 교체했단다. 그런데 시간이 모자라 서술형 문제 답안을 한 글자도 옮기지 못했다고 한다. 작년 기출문제지에 서답형 배점은 30점이었다. 아이는 전에 입시 준비를 할 때도 죽고 싶다는 말을 가끔 했다. 난 그 말이 너무 섬뜩하여 많이 혼을 냈다. 그렇게 쉽게 던질 수 있는 말이 아니라고...
나는 아이를 다독이고 싶었지만 그냥 화가 났다. 내가 한 일도 아닌데 이 상황이 너무나 화가 났다. 답안 작성을 잘못한 것도 결국 본인 탓이다. 그만큼 신중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객관식 답안 하나를 고치기 위해 서답형 30점을 버린 것이다. 그 어리석은 행동에 그저 화가 났다. 아니 5분도 안 남았는데 선뜻 답안지를 교체해준 선생님에게도 화가 났다. 그냥 모든 게 화가 났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 아이는 9살에 ADHD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 아이의 ADHD 검사 결과는 상대적으로 꽤 높은 수준이었다. 그런 아이가 중학교 3년을 잘 견디고 입시에 성공했다. 나는 모든 걸 망각하고 잔뜩 기대감만 높이고 있었던 것이다. 자식에게 욕심을 내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자식은 나의 욕망을 투영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저 독립적인 자아를 지닌 존엄한 존재다. 부모가 아이에게 바라는 건 하나다. 자존감을 잃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것. 나는 아빠로서 낙제다.
집에 돌아온 둘째는 생각보다 덤덤해하고 있다고 딸아이가 알려줬다. 애써 감추고 있는 것이겠지만 나는 아이만도 못한 부모가 되었다. 누구보다 시험을 잘 치르고 싶었던 건 아이다. 그래서 같은 반 아이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싶어 했다. "나도 우등생이야!!!"라고 속으로 외치고 싶었을 것이다. 가장 실망했을 아들은 나에게 아직 영어, 과학, 한국사, 사회가 남았다고 말했다.
신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남았다고 말한 이순신 장군 같았다.
그리고 나는 나라를 망친 '선조'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