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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Jun 16. 2022

도지 이야기

네 이름이 모니?

우리 아들은 어려서부터 별명이 많았다. 행동이 남다른 탓도 있지만 그만큼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고 보면 된다. 본인은 알 턱이 없지만 말이다. 이 녀석은 세 살 터울의 누나에 대한 피해의식이 강하다. 형제간에 경쟁심리가 유난스럽다는 건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세상이 되었으니 그러려니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부모 입장은 또 다르다. 날마다 벌어지는 신경전을 중재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공평무사하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아이들을 키워보면 안다. 미묘한 부분에서 아이는 차별을 느낀다. 문제는 그들의 촉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아이의 마음에는 돌덩이가 되어 박힌다. 그런데 매번 그걸 인정하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통제가 되지 않는다. 제아무리 금쪽이 전문가도 해결할 수 없는 사건, 사고들이 날마다 반복된다. 나는 19년 동안 아이를 키웠지만 여전히 철부지 아빠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 둘째는 속상한 일도 많고 억울한 일도 많다. 같은 상황을 받아들이는 민감도가 남다르다. 그것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알고나도 사실 대응은 쉽지 않다. 그저 아이의 예민함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가 조금은 너그러워졌다고 믿을 뿐이다. 육아는 원래 답이 없다. 그리고 오늘은 골치 아픈 육아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 아들 별명의 유래를 소개하려니 서두가 길었을 뿐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 녀석은 많은 별명을 갖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지금까지 확고부동하게 불려지는 별명은 바로 "도지"다. 아이들과의 카톡방에서도 무심히 쓰고 있는 이 이름에 본인도 크게 불만을 갖지 않는다. 어릴 때 하도 손이 많이 간다 하여 농담 삼아 "새우깡"이라는 별명을 붙여 준 적도 있지만 누가 뭐래도 이 녀석의 이름은 "도지"다. 이 이름의 유래를 지금부터 설명하려 한다.


"도지"의 뜻은 크게 세 가지를 품고 있다. 그만큼 연원이 깊다. 첫째는 "돼지"다. 우리 둘째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것이 있으니 무언가를 배우고 체득하는 시간이 좀 더디다는 것이다. 어른들 말로 속칭 '늦된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그렇다고 이 아이가 평균 이하의 지능을 갖고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 무엇이든 급하게 몰아붙이면 기대한 만큼의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다.


태어나 몸을 뒤집고 앉고 걷는 것이 그랬고, 말하는 것이 그랬다. 하지만 이 아이는 오래 걸린 시간만큼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곤 했다. 남들보다 좀 늦는 것 같다는 걱정이 들려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반듯하게 무언가를 성취해 내곤 했다. 걷는 것이 그랬고 말하는 것이 그랬다. 글도 마찬가지였다. 유치원에 들어갈 때까지 한글을 완전히 떼지 못했고, 그걸 걱정하던 엄마는 유치원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걱정을 토로하기에 이르렀다. 선생님께서는 가볍게 말했다. "이름 석자만 쓸 수 있게 해서 보내주세요... 아무 걱정 마세요..." 그런데 유치원에 다니고 얼마 되지 않아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정말 이름 석자만 쓰더라구요..."


 그런 아이가 한글 철자법을 익히면서 힘들어했던 것이 복모음이었다. "ㅏ, ㅔ, ㅣ, ㅗ, ㅜ"가 아닌 "ㅐ, ㅒ, ㅕ, ㅖ, ㅛ, ㅚ, ㅙ, ㅠ, ㅟ... "가 들어가는 철자를 힘겨워했다. 그래서 언제나 "돼지"를 "도지"라 썼다. 그걸 보면서 내가 한 번은 장난 삼아 "이런 도지 같은 놈"이라고 한 것에서 지금의 "도지"가 유래되었다. 이게 바로 "도지-돼지설"이다.


두 번째는 조선을 대표하는 명의 "허준"의 라이벌 "유도지"다.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의 이야기는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텔레비전 대하사극으로 만도 여러 번 방영되었다. 그중 허준 역할로 배우 "전광렬"씨가 나오는 드라마가 있었다. 여기서 허준의 스승인 "유의태"에게는 하나뿐인 아들이 있으니 그 이름이 "도지"다. 그런데 스승은 금지옥엽으로 키운 "도지"보다 "허준"을 더 사랑한다. 스승의 아내는 늘 이게 불만이라 유난스레 아들 "도지"를 싸고돈다. 이렇게 옥동자 같은 아들이 바로 "도지"다. 우리 아들의 별명은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게 바로 "도지-도지설"이다.


마지막으로 "도화지"다. 우리 아이는 앞에서 얘기했듯 어려서부터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특히 어른들에게 예쁨을 많이 받는다. 어린이집에서는 급식도우미를 하시는 아주머니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고, 유치원에서도 유난히 예뻐하는 선생님이 계셨다. 특히 이 녀석을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졸업때까지 봐 온 학습지 선생님이 계셨는데 중학교에 입학하고 몇 년이 흘러서까지 길에서 만나면 아이 칭찬을 하셨다. 학습에 있어서는 엄청나게 속을 썩였는데도 말이다. 중학교에서는 정년을 앞둔 상담 선생님과 매주 명상과 티타임을 함께 했다.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선생님과 친한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 아들 녀석도 이해하지 못하는지 모른다. 아무튼 우리 아이를 예뻐하시는 어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바로 "도화지"같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 백지 같다는 뜻이다. 이건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아무튼 긍정적인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화지"의 줄임말, "도지"가 이 녀석의 별명이 된 것이다. 이게 바로 "도지-도화지설"이다.


이상이 나의 둘째, "도지" 별명이 유래된 이야기다.  오늘도  녀석을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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