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일기, -7일(2021. 4. 26)
아침부터 부산하였지만 여느 때와는 달랐다. 나는 출근 준비를 할 필요가 없었고 그저 아이들의 등교를 챙기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평소보다 20분 정도 늦게 일어났지만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입고 씻지도 않은 몸으로 중3 둘째를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중간고사가 시작된 아이들은 등교 시간이 서로 달라 오후에 시험이 시작되는 고3 첫째를 11시 좀 넘어서 학교에 모셔다 드렸다. 오는 길에 밖에서 대강 점심을 해결한 뒤 집에 돌아오니 12시 반이었다... 다시 옷을 벗어던지고 침대에 누웠더니 머리가 베개에 닿는가 싶은 차에 곯아떨어졌다. 그렇게 2시간 남짓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커피를 데우고 이 글을 쓴다.
지천명의 나이 쉰이 되어 육아휴직도 아닌 가사휴직을 시작하게 된 나는 가장이다. 가장의 기준을 나누는 다양한 잣대가 있으나 나는 무엇으로도 가장이다. 세대주이고, 가계경제의 주채무자(?)이며, 공교롭게도 예체능계 수험생인 아이들의 주보조인력(?)이다. 예체능계 수험생의 일과를 아는 이들이라면 무슨 말인지 수긍이 갈 것이다.
아무튼 가계수입의 60% 이상을 책임지는 내가 특별히 쟁여둔 재산도 없는 상황에서 휴직을 감행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궁금증을 살 법하다. 참고로 가사휴직은 단 한 푼의 급여도 나오지 않는다. 무노동-무임금, 물론 당연한 일이지만 고3, 중3 입시생 자녀를 둔 가장에게는 가혹한 일이다. 그것을 감수하면서 내가 휴직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간이 결정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때에는 그 이유가 단 한 가지로 압축되지 않는다. 그만큼 내게는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대부분의 결정적인 선택은 단 한 가지의 사유로 결행되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나의 휴직 결정에는 단 한 사람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나 휴직의 시작을 아직 일주일이나 남겨둔 채 잔여 연가를 사용하고 있는 오늘, 그 골치 아프고 속상하고 때때로 분기탱천하였던 사연을 굴비 엮듯 풀어내고 싶지는 않다. 그저 오십 줄에 접어든 중년 가장이 퇴직 같은 휴직을 감행한 사실 만으로도 화제성만큼은 충분하다고 생각하기에 오늘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나는 정녕코 가사휴직에 걸맞은 사유로 휴직을 하였기에 결코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없다. 특히 아이들의 입시가 마무리되는 앞으로 6개월 정도는 말이다. 그래서 이 글은 자주 올라오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내가 직장 생활 21년 만에 결행한 첫 휴직이었기에 그 배경과 경과와 결론을 남겨야겠다는 의지만큼은 확고하다. 그러한 사유로 이 글은 비정기적이지만 나름대로 꾸준히 올라오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오늘의 감상,
나는 늘 수면시간이 짧았다. 늦게 잤으며 일찍 일어났다. 그 이유가 그저 내 체질 탓이라고 생각했다. 간혹 주말에 낮잠을 즐길 때도 한 시간을 넘긴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은 늘어지게 2시간을 넘게 잤으나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팠다. 이 현상은 나에게 두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그동안 내게 잠이 부족했거나, 근자에 극도로 피로했거나.... 그런데 나의 결론은 둘 다 해당되는 것 같다. 이렇게 보살핌을 받아야 할 나의 몸은 너무도 혹사당하고 방치되었다. 제 몸 상태도 의식하지 못한 채 나는 무엇을 하고 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