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를 받아들이기

해방일지, +14일(2022.05.24)

by 낙산우공

어릴 때는 나이 든 남자가 좋아 보였다. 젊었을 적엔 그렇게 멋있어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도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적당히 얼굴에 주름이 잡히면 단점으로 보이던 외모는 사라지고 원숙하고 점잖은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 지긋한 세월의 흔적이 그를 완성형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만 같았다. 그것이 단순한 착시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흔히 중후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인상은 대부분 보이는 부분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남자(?)는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철이 들지 않았다. 나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반면에 여성들은 어떻게든 노화를 늦춰보려고 애를 쓴다. 온갖 피부과 시술이 성행하는 이유는 뻔하다. 곱게 늙는다는 말의 실상은 젊어 보인다는 얘기다. 얼굴에, 목에 자연스레 자리 잡는 주름과 잡티를 없애고 리프팅이니 보톡스니 온갖 의료기술이 동원되는 이유다. 오드리 헵번의 자연스러운 노화를 이야기하면 여자들은 눈에 쌍심지를 켠다. 모든 여자가 오드리 헵번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이 그토록 노화에 진저리를 치는 이유도 이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겠다. 적당한 백발로 중후한 척 겉멋을 내는 중년 남성이나 오만가지 시술로 인조인간이 되는 중년 여성이나 자연스럽지 않다.


노화의 실체를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 몸의 변화를 관찰하면 되는 일이었다. 나도 머리 위에 내려앉은 서리로 인해 뜻하지 않게 인상 좋다는 말을 듣게 된 남자 중 하나다. 나조차 가끔 거울을 보면 놀란다. 너무 성숙해 보이는 한 인간이 내 앞에 나타나니 말이다. 그리고 어이없어 웃는다. 거울 속 남자의 내면을 알기 때문이다. 성숙은커녕 여전히 헤매고만 있다. 그런데 진짜 노화는 백발과 주름에서 끝나지 않는다. 요즘 내가 가장 당혹스러워 하는 것이 이것이다.


예전엔 나이 든 분들의 입가에 침이 고이는 모습을 부담스럽게 바라보았다. 본인의 입술가에 침이 고인다는 사실을 저분은 모르는 걸까? 왜 이야기에 취해 저런 흉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까 의아했다. 그런데 요즘 내게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제아무리 깔끔한 성격이라도 이 증상을 해결할 수는 없다. 나도 모르게 입이 살짝 벌어지고 이내 입가엔 침이 고인다. 말을 하지 않을 때도 그렇다. 무심코 스스로 그것을 알게 되면 난 소스라치게 놀라 입가의 침을 닦아낸다. 이게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이란 걸 최근에야 알게 된 것이다.


노화의 흔적은 이뿐이 아닐 것이다. 난 좀 더 나이가 들면 한여름에도 절대 반바지를 입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털이 수북한 젊은 남자의 맨다리보다 부담스러운 게 근육과 살이 빠지고 피부는 탄력을 잃어 축 늘어진 노인의 다리이기 때문이다. 그 노화가 싫은 게 아니다. 굳이 타인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노화는 갱년기를 지난 남녀 모두에게 소리 없이 그러나 신속하게 다가온다. 노안이 온 것은 5년도 더 되었다. 대부분의 노화는 보기에 어떤가를 떠나 사람을 몹시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한다. 산업혁명기 이전의 시선으로 보면 노화는 너무나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이제 그만 일하라는 뜻일 테니까 말이다. 물론 더 정확한 의미는 죽을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면 사라지는 게 가장 자연스럽다. 모든 자연생태계는 그렇게 진화해 왔다. 그런데 인류문명은 산업화 이후에 인간의 생산 가능 연령을 무려 만 64세로 늘려 버렸다. 고령사회의 그늘은 이걸 더 늘리라고 외친다. 연금 적자와 경제성장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이다. 그런데 나의 몸은 신석기시대에 머물러 있다.


일흔이 넘어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많은 이들을 본다. 머리만 염색해 놓으면 그들은 50대 중년 남성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들을 부러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나 나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세월을 거슬러 열정을 불태우는 꽃중년(?)으로 살 것인지 몸이 주는 신호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조용히 현역의 삶을 접을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 50세에 무슨 터무니없는 하소연이냐며 호통을 칠 것이다. 이들이 화를 내는 이유를 안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나에게 나타나는 모든 형태의 노화를 인정하고 수용한다. 내가 현역 연장을 힘겨워하는 이유도 노화현상이다. 정년이 보장된 직장에서 그까짓 게 뭐가 힘들다고 앓는 소리를 하냐는 비난을 많이 듣지만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 했다. 나는 더 이상 현역에서의 꿈이 없다. 미래가 없다. 더 이상 도달할 목표가 없다. 그저 생계와 가족을 위해 버틸 뿐이다. 나는 처음에 은퇴 이후의 무언가를 위해 내가 현역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알게 되었다. 나는 그냥 늙은 것이라는 걸... 현역의 삶을 연장할 만큼의 체력과 열정이 소진했다는 걸 말이다.


그 정도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평안감사를 죽을 때까지 하고 싶어 하는 사람과 당장 때려치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듯이 말이다. 나는 이제 지치고 힘겨운 것뿐이다. 이렇게 살아내는 하루하루가 말이다. 고작 22년 직장생활을 해 놓고 무슨 엄살이냐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의 노화는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진행된다. 따라서 나는 해방을 꿈꾼다. 당장의 삶이 달라질 순 없지만 난 조금씩 해방되고 있다. 오늘은 노화에서 해방되었다. 나는 오늘부로 내가 나이보다 더 늙었다는 걸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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