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많아서

해방일지, +23일(2022.06.02)

by 낙산우공

복직하고 석 달만에 이틀의 휴가를 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연차를 쓰긴 했지만, 그저 쉬기 위해 휴가를 낸 것은 처음이다. 말이 이틀이지 징검다리 휴일과 연휴 탓에 내게는 무려 6일간의 자유가 허락되었다. 어제는 아이들과 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다. 작년 가을에 이미 확인했지만 관리받지 못하는 산소는 을씨년스럽다. 안타까운 마음에 잡초와 덩굴을 맨손으로 뽑아냈지만 돌아오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눈에 밟혔다. 일 년에 두 번 벌초를 맡기는 것으로는 시골에 방치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의 봉분은 언제나 감당 불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


10년에 한 번쯤 흙을 완전히 들어 엎고 새로 잔디를 깔지만 이번엔 채 6개월도 되지 않아 엉망이 되었다. 집에서 250킬로미터 떨어진 아버지의 고향은 볕 좋고 바람 좋은 땅이라고 주변에서 말들 하지만 아무도 관리하지 못할 바에야 명당이 무슨 소용일까 싶다. 어머니는 당신 돌아가시기 전에 전부 화장해서 서울 근교 깔끔한 공원묘지에 모시고 싶어 하지만 형들은 요지부동이다. 봄, 가을 한 번씩 성묘 가는 시간도 내기 어려운 그들이 왜 산소 이장에는 반대를 하는 건지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자고이래로 조선에서는 묫자리 보는 걸 제일로 쳤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는 처음에 선산에 모셨는데 자리가 좋지 않다고 아버지께서 40년쯤 전에 지금의 땅을 사서 옮기셨다. 당신과 어머니 들어가실 자리까지 생각해서 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장을 한 뒤로 우리 집에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고 하여 묫자리 덕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형들도 그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말로는 고향 땅에 묻히신 게 제일이지요 하지만 어머니는 고향땅이 대수냐며 자식들이 고생 않고 자주 찾아오는 게 제일이라 하신다. 근교에 모신들 자주 찾아갈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우린 이렇게 매사에 걱정이 많다. 나와 달리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형들조차 풍수지리와 조상신의 영향력을 근심하니 말이다. 아니면 그들이 가진 게 너무 많아 행여라도 해를 입을까 노심초사하는 건지도 모른다. 내 처가의 본가는 서울 근교에 공원묘지를 꽤 많이 분양받아 갖고 있었지만 그조차 관리하기 어렵다며 큰아버님 생전에 모두 화장하여 조그만 가족묘에 모셨다. 같은 공원묘지이지만 제법 큰 봉분 자리를 파서 돌을 두르고 화장한 유골함을 스무 개 정도 함께 모시는 것이다. 온 집안이 한 묘에 합장되는 꼴이긴 하지만 나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마음이 불편할 때 잠깐 들르기에는 제일이었다. 그곳에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지 않는가?


우린 이렇듯 걱정과 근심이 많다. 그래서 머뭇거리고 망설여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아이들 일에서부터 집안일, 직장일, 이웃 일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전전긍긍이다. 오늘도 맘 편히 쉬려고 휴가를 냈지만 결재 올리고 나온 일이 마무리되지 않아 마음에 걸린다. 서면으로 모두 보고를 완료한 일인데도 전자결재가 끝나지 않아 꺼림칙한 것이다. 대면보고를 하고서 다시 전자결재를 올리는 이중적인 업무절차가 황당하지만 일은 대부분 이렇게 진행되곤 한다. 걱정이 많은 건 가진 게 많은 탓이다. 가진 게 많으면 그걸 잃기는커녕 더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욕망에 충실한 게 아니라 욕심에 복무하며 산다. 이고 지고 가지도 못할 것들에 왜 이리도 집착하는 것일까?


더 가지려는 욕심은 덜 가져본 결핍의 결과일 수 있다. 덜 가져본 불행의 보상심리 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놓치는 것은 덜 가졌을 때 느낀 아쉬움이 더 가졌을 때 채워지는가의 문제다. 결핍을 채우기 위한 욕망은 대게 끝이 없다. 그것은 욕망이 아니라 중독이기 때문이다. 중독의 결말은 언제나 여지없이 파멸일 뿐이다. 모든 걸 버릴 각오를 해보자.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해방은 여기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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