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변과 숙변

해방일지, +25일(2022.06.04)

by 낙산우공

썩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다. 화장실 유머라면 몰라도 굳이 언급할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하고자 함은 조금의 관찰이 필요한 현상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오십 년을 살면서 변비를 겪어본 게 군대 훈련소 음식에 적응하지 못했던 일주일 정도가 전부다. 그만큼 소화능력과 대장 운동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남보다 민감한 소화기 계통을 가진 탓에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급하게 용변을 보는 경우는 종종 있어왔다. 이것도 꽤 익숙해져서 조짐이 보이면 미리미리 잘 대처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작년 휴직 후부터 유난히 화장실에 가는 횟수가 늘었다. 특별히 자극적이거나 생소하거나 상한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닌데 정상적인 대변을 하루에도 수차례 보는 일이 잦아졌다. 어차피 한가한 휴직자의 일상이라 다급한 일이 있지 않고는 횟수와 무관하게 볼 일을 봤다. 맘 편히 내 집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거칠 것이 없었다. 유독 볼 일 보는 시간이 늘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열 달을 채우고 복직을 한 뒤로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바쁘거나 정신이 없을 때는 거르기도 했지만 얼마 전부터 나는 회사에서 많게는 네 번이나 대변을 본다. 눈을 뜨자마자 화장실 가는 게 습관이 된 지 오래되었는데 어찌 남들은 하루 한두 번 보는 일을 나는 서너 배나 자주 겪게 된 걸까?


아무래도 이런 증상에는 심리적 원인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쾌변은 삶의 질을 향상해주는 면에서 중요하지만 만성변비 환자가 아니라도 숙변이 있는 것은 일반적이다. 그렇다고 이를 제거하기 위해 약을 찾아 먹거나 병원에 다니는 경우는 없다. 가끔 평소와 달리 새벽 일찍 일어나 용변을 보게 되는 경우 바이오리듬이 깨져 잔변감이 남을 때가 있다. 이럴 땐 오전에 한번 더 화장실을 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나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그 정도가 범상치 않다. 그래서 돌이켜 보았다. 나는 평소에도 용변 후에 가벼운 잔변감이 남을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화장실에 죽치고 앉아있을 만큼 한가하지 못했고 그렇게 시원하게 볼 일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냈다. 그런데 휴직을 하고부터는 최소한 화장실에서만큼은 방해받지 않을 정도의 여유가 찾아왔다. 특히 가족들이 모두 집을 나선 이후에는 더 그랬다. 그렇게 나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쾌변을 즐겼다. 이 또한 휴직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그런데 복직을 하고부터 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볼일 보는 횟수도 시간도 줄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휴직기간의 습관이 다시 찾아왔고 나는 전보다 자주 그리고 오래 볼일을 본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곰곰 생각을 더듬어 내린 결론은 이랬다. 나에게 화장실은 방해받지 않는 자유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사방으로 높은 파티션이 둘러 쳐져 제법 프라이버시가 보호되는 사무실의 자리조차 가끔은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불쑥 전화가 걸려 오거나 누군가 나를 찾을 때는 말이다.


이럴 땐 나의 소재조차 은폐되는 점에서 화장실만 한 공간이 없었다. 나는 한가한 시간을 틈타 조용히 화장실로 향했다. 그곳에 있을 동안은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그 시간만큼은 나는 투명인간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처가와 화장실은 멀수록 좋다는 옛 속담은 그야말로 옛말이 되었다. 나에게 화장실은 자유였다. 고작 화장실에서 자유를 찾다니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나는 휴직기간 동안 완벽한 쾌변을 위해 화장실을 찾았고 복직 후에는 숙변을 핑계로 완벽한 자유를 위해 화장실을 찾는다.


오늘부로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해방감을 느끼는 게 나의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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