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공과 늘공

공직사회의 진입장벽과 특권의식

by 낙산우공

한국사회를 다양한 연줄로 엮인 복잡한 네트워크 사회라 부르는 이유는 출생에서부터 성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출신 배경과 연고를 따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대구경북(TK), 부산경남(PK), 서울경기(SK), 충청, 호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출생지를 따지고 소위 S.K.Y로 불리는 명문대학 출신이 사회의 주류를 장악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고교평준화가 실시되기 전에는 4대 공립, 4대 사립 혹은 지역별로 서열화된 출신 고교까지 따졌으니 말이다. 엘리트 공무원이 장악한 공직사회는 그 어느 곳보다 이런 연고가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을 것이란 사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정부가 행정고시와 기술고시를 통합하더니 급기야 고시라는 단어를 없애고 5급 공무원 채용시험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시를 통해 5급 이상의 관료를 채용하는 방식은 조선시대의 과거제와 닿아 있다. 7급, 9급 공무원 시험과는 격을 다르게 하기 위해 "고등고시"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야말로 고등한 시험이란 뜻이다. 따라서 고시 패스는 과거 급제와 같이 해석되었고, 사시, 행시, 외시를 모두 합격한 고시 3관왕이란 말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유명한 정치인들 중에 고시 3관왕 출신이 제법 있지만 이들이 공직생활을 오래 하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그저 최고의 두뇌를 가졌다는 걸 증빙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 말이다.


공직사회는 이렇게 일단 고시에 합격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뉜다. 7급이나 9급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5급 사무관으로 올라온 사람들을 승진 사무관이라 부른다. 그 반대는 당연히 고시를 패스하여 단번에 5급 사무관이 된 고시 사무관이 되는 것이다. 제아무리 좋은 학벌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도 고시를 패스했느냐가 공직생활의 성패를 좌우한다. 이른 나이에 7급 공무원으로 들어와서 고시를 통해 임용된 사무관보다 먼저 승진을 해도 마찬가지다. 기수를 따지는 것은 고시뿐이다. 그중에서도 행정고시다. 그들이 주류다. 기술직 공무원을 뽑기 위해 치르는 기술고시는 이공계 출신의 공직 등용문이며 행정고시와 똑같이 5급(사무관)으로 임용된다. 그런데 그들은 늘 자신의 기수를 행정고시 기수에 맞춰 부른다. 예를 들어 기술고시 20회는 행시로는 28회... 이런 식이다. 모든 기수는 행시 기수로 수렴된다. 그들이 주류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경력직 공채를 통해 임용된 경우(과거에는 이들을 특채라 불렀다)는 비주류 중에 비주류다. 잘 나가는 부처의 경우 고시 출신이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 즉 정년이 보장된 늘공(직업공무원) 사회도 출신 배경에 따라 보이지 않는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고시(5급 신입공채)와 승진(7, 9급 신입공채)과 특채(경력직 공채) 출신이라는 신분(?)의 벽은 꽤나 공고하다. 유리천장은 여성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간혹 9급 공무원 출신으로 1급 공무원 또는 장/차관이 등장하면 화제가 되는 이유다. 육사 출신이 아닌 ROTC나 학사장교 출신이 군사령관이나 참모총장이 되었을 때처럼 말이다.


이쯤 이야기했으면 대한민국 공직사회가 얼마나 경직되어 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위 늘공의 세계가 이러한데 정년 보장 없이 임기제한(2년 내지 3년)에 걸려 있는 공무원(흔히 말하는 '어공')이 공직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을지는 뻔하다.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이다. 나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매우 거부감을 갖고 있다. 공무원은 공무원이다. 어공과 늘공을 구분하는 것은 늘공으로 분류되는 세력이 헤게모니를 쥐고 가려고 창조해 낸 이분법이다. 우리가 '어공'이란 표현을 쓰는 순간 그들의 조직 논리를 수긍하는 꼴이 된다. 어공은 사실 '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들이 아니라 포지션이 '어정쩡한 공무원'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공직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취급하니 제아무리 잘난 '어공'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쉽지 않다. 물론 권력의 실세를 짊어진 어공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말이다.


어공과 늘공 얘기가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지난 정부 공정거래위원장에 지명된 모 교수님이 취임사에서 늘공인 직원들에게 어공인 위원장으로서 당부한 이야기가 회자되면서다. 내용은 대략 이랬다.


"'늘공'인 여러분들이 전문성과 자율성에 근거해 내린 판단을 일관되게 실행할 수 있도록 외풍을 막아주고 조직과 직원을 보호하는 것이 '어공'으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이다"


굉장히 신선하게 보이는 이 취임사가 나에게 불편하게 느껴진 건 이런 이유에서다. 임기가 따로 없는 장관으로서 진심이 담긴 말을 한 건 분명하지만 그는 너무 순진했다. 이 취임사는 늘공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말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말에서 '늘공'과 '어공' 대신에 '직원'과 '위원장'이라는 표현을 썼어도 충분히 의미가 전달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굳이 비공식적인 단어를 들먹인 것은 '늘공'을 존중하기 위한 뜻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그는 대한민국 '늘공'의 조직력과 결속력을 익히 알고 있기에 그들과 타협하지 않으면 제대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아마도 그리 말했을 것이다.


내가 행정부의 한 부처에 근무할 때 나보다 세 살 정도 어린 서기관(4급)과 같은 부서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는 나름 공직사회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던 고시 출신 '늘공'이었다. 10년 좀 넘는 공직 경력을 갖고 있던 그는 사무관 시절 교육훈련으로 유학도 다녀왔고 돌아와서는 잠깐 차관 비서실에 근무하다가 서기관 승진을 했다. 나와 근무할 때는 아직 과장 보직을 받기에 연차가 차지 않아서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빈둥거리던 시절이었다. 그가 당시에 사무실에서 자주 보여주던 모습은 등을 지압할 때 쓰는 둥그렇게 굽은 모양의 나무 대기를 들고 골프 연습을 하는 거였다. 친한 동료에게 주말에 필드에 나가자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말이다.


그런 그가 나와 술 한잔 들이켜던 날 해준 말이 있다. '자기는 회사에 지분이 있다고...' 주식회사도 아닌 행정부에서 우리 사주를 주었을 리도 없는데 그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도 모르는 지분을 갖고 있던 그는 행정부의 로열패밀리였던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지만 그는 실제로 지분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잠깐 육아휴직을 하더니 복귀해서 얼마 안돼 과장이 되었고, 그중에서도 나름 요직이라는 길을 거치다 얼마 전에는 유럽의 한 국제기구에 파견을 갔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코스를 그는 승승장구하며 밟고 있다. 그는 고시를 패스했고, SKY를 나왔으며, 나름 요직에서 나름의 성과를 내서 유학도 다녀왔고 해외파견도 갔다. 곧 국장을 달 것이다. 언젠가 뉴스에서 차관이나 장관이 되어 있는 그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를 일 못하는 직원으로 기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와 근무했던 6개월간 그가 일하는 걸 본 적은 없다. 그는 일을 해야 할 때와 놀아야 할 때를 정확하게 알았다. 그건 대부분의 늘공들에겐 상식이었다. 승진연수가 채워져 갈 무렵 조직에서 존재감을 보여줘야 할 때 그들은 미친 듯이 일했다. 그리고는 그 과실을 알차게 따먹었다. 그렇게 늘공은 공고하게 자신들만의 기득권 체계를 만들어갔다. 나머지는 모두 주변인이다. 정무직 장/차관도, 개방형 직위공모로 들어오는 임기제 고위직도, 대통령비서실에 모여 있는 별정직 행정관들도 모두 주변인이다. 모든 권력은 고시 늘공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해도 될 만큼 그들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BH(Blue House)라 불리던 청와대 비서실에 파견을 나가는 늘공들이 있다. 이들은 특별히 선발된 자들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공직사회를 넘어 정치인과 인맥을 트게 된다. 그렇게 과장급 행정관으로, 그 뒤엔 국장급 선임행정관으로, 그 뒤엔 1급 비서관으로 한 번씩 BH를 경험하고 온 이들은 돌아오면 날개를 달았다. 그런데 정권 말에 BH에 들어가는 건 모든 늘공들이 꺼리는 일이다. 다음 정부를 누가 차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레임덕이 찾아온 BH는 '순장조'들의 무덤이 된다.


MB정부 말에 있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해 본다. 행정부에 근무하다 보면 가끔 BH의 행정관들과 상대해야 할 일이 생긴다. 이때 정권이 몇 년 차인가에 따라 태도가 바뀐다. 정권 초반에는 BH 요청사항은 가장 긴급을 요하는 업무가 된다. 그런데 정권 말이 되면 그렇지 못했다. 한 번은 내가 있던 부처에서 기획했던 정책에 대해 BH에서 딴죽을 건 적이 있다. 이런 통보는 주로 부처에서 파견 나와 있는 행정관을 통해 연락을 받게 되는데 당시 나의 과장은 BH 수석비서관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그가 나름 당당하게 핏대를 세우며 전화로 논쟁을 벌이는 것을 보며 도대체 누구와 통화를 하길래 저렇게 언성을 높일 수 있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평소 그런 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알고 보니 당시 나의 과장과 통화했던 BH의 인물은 과장급 행정관도, 국장급 선임행정관도 아닌 수석비서관 직속의 무려 1급 비서관이었다. 그것도 우리 부에서 파견을 나간 고위직 공무원이었다. 평소에 눈치 빠른 나의 과장이 왜 저렇게 무모한 짓을 하는지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된 사실은 당시에 파견 나간 고위직 공무원이 순장조라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소문이었고, 심지어 그는 고위직이었으나 고시 출신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과장의 담대함은 거기에서 나왔다.


이것이 대한민국 공직사회의 감춰진 민낯이다. 잘 나가는 늘공은 명예와 사명감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성취감과 우월감으로 일한다. 공직사회의 높은 진입장벽이 그들의 성취욕을 자극할 뿐 아니라 그 관문을 통과한 자만이 거쳐갈 수 있는 제한경쟁사회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우월감을 다시 확인한다. 슬프지만 그게 대세다. 물론 순수한 열정과 소명의식으로 무장한 이들도 간혹 있지만 그들은 주류가 아니다. 따라서 조직에서 소외되고 조용히 사라졌다.


어느 조직에나 사내 정치가 있고 줄을 탄다. 기업의 경우 더 심하다. 공직사회는 줄을 타지 않아도 정년까지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신입 공채와 연공서열을 따지던 기업은 변하고 있다. 기업이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능력과 실적이 꽤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고 무한경쟁의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이 기업을 변화시킨 것이다. 공직사회는 다르다. 능력과 실적이 포장될 수 있다. 그래서 학벌과 기수가 더 앞선다. 기업은 일류, 정부는 이류, 정치는 삼류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공정하고 투명하지 못한 조직을 어찌 일류라 부르겠는가?


* Image from 정부상징체계 디자인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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