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의 의무

공무원은 왜 복지부동할까?

by 낙산우공

「국가공무원법」 제57조(복종의 의무)에는,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 조문이 공무원 사회를 "상명하복"의 군대사회와 유사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이 조문은 이 법이 제정된 1949년부터, 그러니까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부터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다.


공무원 조직도 군대와 같이 일사불란한 지휘체계가 필요할 때가 있다. 상관의 업무지시를 하급자가 사사건건 트집 잡기 시작하면 어떤 일도 진행되기 어렵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이 조문은 필요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건 공무원 사회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어떤 조직이든 마찬가지다. 다만, 공무원 조직은 그들이 수행한 직무의 결과가 일반 국민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를 주기 위해 선언적인 조문이 들어왔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조문 하나로 인해 공무원 사회가 얼마나 경직적으로 운영되고, 소위 "영혼 없는" 공무원을 무수히 양산하는지를 알게 되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공무원의 복지부동 사례가 완벽하게 이를 설명해 준다. 공무원은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이 부당하건 불합리하건 심하게는 불법 내지는 편법을 내재하고 있건 간에 이를 거부할 수 없다. 그래서 공무원 조직의 인사부서에서는 이런 말까지 하게 되었다.


"공무원 간에 갑질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소속 상관이 직무상 부당한 행위를 강요하더라도 법적으로 하급자인 공무원은 이를 거부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복종'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남의 명령이나 의사를 그대로 따라서 좇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관의 명령에 불응할 수 없다. 이 조문이 확대 해석되어 급기야 "공무원 간에는 상관의 갑질도 허용된다"는 터무니없는 결론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야말로 영혼 없는 공무원식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조직원이 서로 수평적인 관계에서 합의제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일부 특수한 조직(연구조직, 위원회 조직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조직은 의사결정권을 갖는 상급자와 이를 따르는 하급자로 구성되어 운영된다.(이러한 구조를 통상 계선(line) 조직이라 부른다) 이때 상급자도 그 직위에 따라 의사결정의 범위가 제한된다.(이를 전결 권한이라 한다) 즉, 모든 상급자는 자신의 전결 권한 내에서 의사결정의 재량권을 갖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재량의 범위를 넘어 부당한 업무지시를 하면 직권 남용으로 불법행위가 성립하긴 한다. 다만, 입증이 어렵다.


그런데 공무원법에 난데없이 등장한 '복종의 의무'는 상급자의 재량행위를 무한대로 확장시켜 버렸다. 복종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하급자는 상관의 재량권 남용을 이유로 저항하기 힘들다. 특히나 보수적인 공무원사회에서는 말이다. 제아무리 타당한 논리로 항변하여도 상관에게 대드는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 놈' 취급을 받기 쉽다. 그렇게 조직에서 소외된다. 이때부터 멀쩡한 공무원은 영혼을 거세(?)당한다.


물론 공무원사회가 이런 멀쩡한 공무원들로만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복종의 의무를 공무원의 당연한 책무로 받아들이고 언젠가 상급자가 되어 똑같이 되갚아주겠다는 생각으로 버티는 이들도 많다. 이들은 자각증상이 없다. 문제는 이들의 의식이 처음부터 이렇게 고착화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개념 없는 공무원의 대국민 갑질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책무와 권한을 혼동한다.


공무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복지부동'이다. 납작 엎드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공무원이 복지부동하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책임을 떠안기 싫을 때다. 이게 다수다. 상관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게 되면 나중에 후폭풍이 돌아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 때 공무원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이 분위기를 캐치하고 납작 엎드린다. 이게 전형적인 소극행정이다.


그러나 간혹 부당함에 대한 저항으로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도 있다. 상관의 지시에 저항할 힘은 없지만 내가 지시를 따르지 않고 버티면서 최소한 부당행위에 동참하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상관의 지시를 전면 부정하지는 않지만 차일피일 업무지시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다. 이게 현행 공무원법 제57조를 위반하지 않으면서 공무원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 된 것이다. 슬프지만 말이다. 저 유명한 씨랜드 화재 참사 당시 수련원 인허가를 해주지 않고 끝까지 버티던 군청 공무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렇듯 공무원의 복지부동은 연원이 깊다. 그런데 정말로 놀라운 것은 현행 공무원법의 '복종의 의무'가 최초 제정 당시 조문에서 크게 두 가지를 개정하였다는 사실이다. 1949년 최초 입법 당시의 조문을 보면 "공무원은 소속 장관의 직무상의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단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라고 나와 있다. 즉, '소속 장관'이 '소속 상관'으로 변경되었고, 결정적으로 단서조항이 삭제되었다. 이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개정인지를 알아보자.


먼저, 소속 장관의 명령이란 해당 부처 장관의 명령을 말한다. 장관은 사무관(5급)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무원은 자신의 직무수행이 장관의 업무지시 범위를 벗어나는 것인지, 장관의 직무수행 방향을 거스르는 것인지만 판단하면 된다. 즉, 장관의 직무수행 방향에 부합한다면 소속 상관(과장, 국장 등)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업무지시의 부당함에 저항하여 의견을 진술할 권한(단서조항)까지 부여받고 있다. 즉, 하급자라고 해서 영혼 없이 상관의 지시를 있는 그대로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조문이 어떻게 지금의 형편없는 조문으로 개악(개정)되었는지 그 연혁을 찾아보았다. 이 결정적인 조문 개정은 5.16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장악한 제3공화국이 수립된 1963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한민국의 복지부동하는, 영혼 없는 공무원의 역사가 제도적으로 확립된 지 어느덧 60년을 맞고 있다.


* Image by Siggy Nowak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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