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일기, -1일(2021. 5. 2)
나의 공식적인 휴직 기간의 시작은 월요일인 내일부터이지만 실질적인 휴직일은 주말인 어제, 노동절부터라고 할 수 있다. 21년의 직장 생활 중 첫 휴직을 May day에 시작하게 된 것은 결코 의도한 일이 아니지만 공교로우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름대로 휴직이 자유로운 선택이 될 수 있는(그렇다고 누군가 나처럼 섣불리 휴직을 감행하지는 않는) 직장에 다니면서 언젠가 꼭 이 제도를 써먹어보리라 다짐을 해 왔지만, 그날이 오늘이 될 줄은 불과 한 달 전에도 알지 못하였다.
이렇듯 사람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제법 파격적인 결정을 한순간에 내려버리기도 한다. 그 복잡하게 얽히고설켜있는 묘한 상황의 조우를 나는 운명이라 부른다. 조직개편으로 새로운 업무를 담당하게 된 지 3년 하고도 8개월, 나는 이 일이 낯설지 않으면서도 마뜩지 않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자제하는 편이지만, 이번에 맡게 된 업무는 의미를 떠나 도무지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난 의미 없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특히 그것이 생업이었을 때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내 일이 가치 있고 생산적인 일인지를 판단하기 전에 스스로 생업으로서 자신의 일을 존중하고 그 일에 충실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거창하고 폼 나는 일인지 따위를 따지는 짓은 어리석거나 배부른 자의 몫이다. 물론 내 일이 불법적이거나 사회에 해악이 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그것은 생업이 될 자격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21년의 시간 동안 생업에 종사하였으며 그 일을 통해 독립을 했고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내 삶을 지금의 수준까지 이끌어준 것은 온전히 나의 생업의 덕이며 난 그런 의미에서 나의 생업을 존중한다. 이는 모든 노동자들이 지켜야 할 도리이다. 그렇게 불평불만은 삼가면서 생업에 종사해 왔지만 운이 좋았던지 나의 생업은 최근의 3년 8개월을 제외한 지난 17년 동안 놀라운 확장을 이루었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형편은 아니지만 내가 첫 직장을 통해 전문성을 쌓았던 일이 점점 더 확대되면서 나는 나름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축복이라 말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난 3년 8개월은 좀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모든 조직은 조직의 존재 이유가 있으며 그 존재 이유라는 명목은 가끔 퇴행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약 4년 전에 일어난 조직개편은 내 시각에선 퇴행이었으며 나는 소속된 부서가 다른 부서에 통합되는 경험을 했다. 그곳에서 나의 위치나 지위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내 인생에서 생업을 버티어내는 가장 큰 수단을 잃었다. 난 의미 없는 일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지만 재미를 찾을 수 없는 일은 도무지 버티어내기 힘들어한다. 이 또한 배부른 소리라 한다면 반박할 말은 없다.
생업이 개인의 자아실현과 닿아있다면 가장 행복할 것이다. 모든 인간에 대하여 현대사회는 헌법을 통해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개인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생계를 보장해 줄 수단이 필요하며 그것은 다름 아닌 생업이다. 생업에 종사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말이다. 그건 대다수의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특권이다. 따라서 생업과 행복이 연결되어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이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은 모든 노동자가 아는 바다.
따라서 생업은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적당한 수준으로 삶의 영역을 차지해야 한다. 두 가지가 양립하기 위해선 말이다. 그렇지만 생업이 제아무리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을 보장해 준다고 해도 개인의 삶에 있어서 절반 이상은 족히 차지하는 시간을 영혼 없이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난 3년 8개월 동안 내가 그렇게 무심한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첫째 가족이었고, 둘째 조직 내에서 이 상태가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희망이었다. 그렇게 조직에는 4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었다.
나는 미묘한 변화의 태동기에 선봉이 되어 새로운 일을 부여받았으며 어찌 보면 기존 업무를 벗어나는 과외의 업무를 큰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더 이상은 무심한 시간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앞에서 운명에 대한 정의를 하였다. 내가 새로운 변화에 거부감 없이 참여한 이유는 바로 변화에 대한 희망이었는데 어떻게 휴직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귀결되었는가를 돌이켜 보면 운명이 개입되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공교롭고 절묘한 사건의 조합을 나는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따라서 나의 휴직은 운명에 순응한 것이며, 내가 도모하고자 했던 삶의 변화는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나는 10년 남짓 남은 생업의 시간을 버티어 내기 위해 10개월의 짧은 휴직을 선택했으며 이 휴직과 복직의 시간까지 내게 또 어떤 운명이 다가올지 신중하게 지켜볼 계획이다. 내 휴직의 배경과 짧은 소회를 공식적인 휴직 기간이 시작되기 하루 전에 이 짧은 글로 대신한다.
오늘의 감상,
노동절을 뜻하는 May Day는 조난신호(Mayday)를 뜻하기도 한다. 나는 노동절에 긴급 구조를 요청하는 마음으로 휴직을 했다. 노동자의 권익과 복지를 향상하고 안정된 삶을 도모하기 위해 노동절을 제정했다고 한다. 내가 조난신호를 보내는 심정이라고 말했으나, 열악한 대한민국의 노동환경을 생각하면 나의 경우가 절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고 각자의 행복추구권이 보장되는 세상은 자본주의 현대사회에서 요원한 일일지 모른다. 그 안에서 각자의 자존을 지키는 방식은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길. 나의 조난신호는 긴급하고 절박하기보다는 간절함에 가깝다고 고쳐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