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일기, +3일(2021. 5. 5)
가사휴직을 시작한 달이 공교롭게도 가정의 달이고,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앞으로 6개월 정도 입시를 앞둔 두 아이에게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할 생각이긴 하지만 우리 집에 어린이는 없다. 생후 9개월을 갓 넘긴 개린이를 빼고는... 이 녀석도 사람 나이로는 열세 살이라고 하니 이번이 마지막 어린이날이 될 것이다.
입시생들에게는 휴일도 주말도 없다. 따라서 오늘 이른 아침부터 우리 집엔 나와 아내와 호두(강아지) 셋뿐이다. 비록 사람은 아니지만 유일한 어린이를 위해 오전에 산책을 다녀왔다. 집 근처 낙산공원에는 오전부터 삼삼오오 가족단위 나들이객이 눈에 띄었다. 우리도 가족단위에 포함되긴 하지만 왠지 허전하다.
무용을 전공하는 고3 딸아이는 새벽같이 레슨을 위해 학교에 갔고 미술 입시를 준비하는 중3 아들 녀석은 9시부터 시작하는 죽음의 12시간 실기수업 레이스(?)를 위해 학원에 데려다주었다. 아침부터 4시간씩 중간에 30분의 식사시간을 포함하여 세 클래스를 마치기까지 장장 13시간을 학원에서 보낸다. 어린이는 아니라도 가혹한 어린이날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나는 예체능을 막론하고 대한민국의 과잉 교육을 혐오하는 사람이다. 야간 자율학습이라는 명목으로 밤 10시까지 아이들을 학교에 잡아놓고 마치 사육하듯 다루는 시절을 경험했던 나로서는 내 아이만큼은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예체능에 흥미를 느껴할 때 애써 말리려 하지 않았다. 돈이 많이 든다느니 미래가 불투명하다느니 주변에 훈수 두는 이들은 많았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물론 돈이 많아서도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적어도 내 아이 세대에서만큼은 좋아하는 일을 찾게 해주고 싶었다. 직업으로서의 전망 따위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제아무리 판검사에 의사가 된다 한들 본인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말이다. 주변에 특목고니 영재고니 보내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에게는 목표 달성 외에 아이의 행복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하면 행복은 따라오는 거야'라는 확신이 너무도 확고하였다. 난 도대체가 그들의 신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 일에 얼마나 통달했으면 저런 확신이 나올까 싶었으며, 입 다물고 있는 그녀들의 남편이 궁금했다. 그들은 집에는 매일매일 들어오는 것일까? 의구심이 들곤 하였다.
난 내 아이들이 무용을 전공하고 미술 입시를 준비하도록 했던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재정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어마어마하게 고생하고 있는 것만큼은 부인하지 않겠다. 그래도 그 아이들이 화창한 봄날에 칙칙한 열람실에 처박혀 책과 씨름하는 것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있음에 만족한다. 물론 대한민국의 입시 열풍은 장르와 종목을 가리지 않기에 그들의 학업도 결코 정상적이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다. 그래서 버틸 힘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고3 시절 야자 시간에도 입시와는 관계없는 책을 읽었다. 그것은 내가 대한민국의 광기 어린 교육 환경에 저항할 수 있는 가장 소심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하여도 모의고사 점수 몇 점을 올리기 위해 재미도 없는 교과에 매달리는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고3 때 역대 최악의 내신성적을 기록하였고 심지어 어떤 과목에서는 ‘양’을 받았다. 수우미양가의 그 '양' 말이다. 나는 그때까지 실기평가가 들어가는 음악이나 체육을 빼고 '미'를 받아본 적도 없었다.
오늘의 감상,
아무튼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이라고 노래하지만 우리 집에 있는 우리들 중 하나는 학교에서, 나머지 하나는 학원에서 실기수업에 매진하고 있다. 나는 아내와 함께 둘째 아이가 좋아하는 저녁 도시락을 챙겨서 중간에 큰아이를 학교에서 픽업한 후 오후 5시 반까지 둘째의 학원에 간다. 점심, 저녁 짧은 30분짜리 식사시간을 두 번씩이나 학원 안에 갇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먹이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나마 차 안에서 엄마, 아빠와 대화를 나누며 도시락을 먹이고 싶어 번거로운 일을 벌인다.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나에게는 아가들이니 슬픈 어린이날에 조금의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