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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Sep 08. 2022

부자유친

아빠와 아들, 그 단순하고 복잡한 관계

찰리 채플린이 남긴 수많은 어록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삶은 클로즈업 해서 보면 비극이지만, 롱샷으로 보면 희극이라는 이 말은 너무나 많이 인용되어 자칫 식상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찰리 채플린이라는 인물이 남겼기에 그 진정성이 느껴지곤 한다.


요즘의 내 삶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비극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하루하루 시시각각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복기해 보면, 어제 오후 3시를 전후하여 아들은 방과 후 학교 과제로 인사동 화랑에서 미술작품을 관람하고 저녁 드로잉 학원에 가야 했다. 학교에서 인사동까지는 꽤 먼 거리라 대중교통 이용이 서툰 아들에게 단단히 길을 일러주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는 길을 가르쳐 주지 않아 급하게 길 찾기 어플을 확인해서 대화창에 집으로 가는 교통편을 알려주었다.


혹시 늦게 끝나서 시간이 빠듯할지도 몰라 안되면 택시를 잡아주겠다는 이야기를 남겼더니 예상대로 즉각 늦을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이는 내가 아닌 아내에게 너무 피곤하니 드로잉 학원을 안 가고 싶다는 톡을 남겼다. 지난주에도 모의고사를 봐서 힘들다고 학원을 빼먹은 상태였다. 나는 아이 일에 유난스럽고 극성을 떠는 열혈 학부모가 아니다. 그러나 아들은 언제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부모가 도와주길 바랐다. 본인이 스스로 무언가 시도하는 것에 매우 서툰 아이였다. 그래서 도움을 주기 시작한 것이 이렇게나 되었다.


나는 언제나 아이에게 말한다. 네가 원해서 선택한 길이고, 그걸 더 잘하고 싶다고 해서 엄마 아빠가 도와주는 거다. 그래도 그 일은 너의 일이다. 그걸 혼동해서는 안된다. 마음은 열심히 잘해서 뛰어나 보이고 싶지만 현실은 힘들고 버겁고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아이는 자주 꾀를 부린다. 그 꼴을 못 봐주겠어서 몇 달 전에 각서를 썼다. 학과 수업, 실기수업, 방과 후 교과 또는 실기학원 등등 그 어떤 것에든지 특별한 사유 없이 결석하게 되면, 엄마 아빠는 일체의 부가적인 지원을 끊겠다는 내용이었다. 부가적인 지원이란 대부분 아이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 각서를 쓴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이미 여러 차례 각서 내용을 위반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대책 없는 소리를 하는 아이에게 나는 단단히 화가 났다. 그리고 아이의 하소연은 매번 나를 배제하고 제 엄마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 얄팍한 수법도 불쾌했다. 그래서 다시 일러주었다. '각서를 잊었느냐? 택시를 제공하겠다는 것은 저녁 학원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서다'라고... 그런데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한 뒤 아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전화도 대화 톡도 일체 반응이 없었다. 몇 차례 통화를 시도하다가 지친 아내를 대신해 결국 나와 통화가 되었다. 아이의 대답은 이랬다.


너무 힘들고 버거워서 갑자기 집에 들어가기 싫어졌다. 그래서 택시에서 내려 집에 가방을 던져놓고 집 근처 공원으로 무작정 걸어갔다는 것이다. ㅠㅠ 나는 여기서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호통을 치는 대신에 이렇게 말했다.


"그냥 휴학하거나 자퇴하는 게 어떻겠니? 너도 잘 알겠지만 너는 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하는 것에 절반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 1년도 다니지 않았는데 그렇게 힘들어하면 그건 네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빠는 굳이 벅찬 일을 꾸역꾸역 하다가 몸도 마음도 다 망가지는 걸 권하고 싶지 않다."


아들은 나의 과격한 의견에 살짝 겁을 먹은 것인지 꼬리를 내렸다. 대신 저녁을 거르고 방안에 박혀 있다가 제시간에 학원에 갔다. 밤 10시에 학원을 마친 아이를 데려오며 타일렀다. '작년에 그렇게 고생해서 원하는 학교에 들어갔는데 이제 1년도 안 하고 힘들어서 못 견디겠다고 하면 앞으로 남은 2년을 어떻게 버틸래? 선생님께서도 처음 1년은 엄청나게 힘들 거라고 누누이 말씀하시지 않았니' 대략 이런 분위기의 말들이 오가면서 서로의 감정이 누그러졌다. 나는 추석 연휴 4일 동안은 아이를 마음껏 쉬게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아들이 돌변하여 다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이유는 오후에 다녀온 전시회 감상문을 작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게 된 것이다. 아이는 극단적인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이런 개쓰레기 같은 학교가 어디 있어? 작품사진을 찍었는데 이게 만화인지 디자인인지 회화인지 구분이 가지 않아. 그런데 나더러 어떻게 감상문을 쓰라는 거야?"


겨우 진정되었던 나의 마음에도 다시 불이 일어났다. 나는 다음의 말을 남긴 채 침실로 들어갔다.


"내일 학교 가지 마, 그리고 연휴 마치고 담임선생님 면담 잡아. 휴학하던지 자퇴하던지 결정하자... 힘들게 살지마. 못 견디면 하지 않는 거야, 나도 내일 아침일찍부터 너 학교에 데려다주지 않아도 되니까 늦잠 잘 거야"


아내가 아이 방에서 한참 동안 나오지 않는 것 같았지만 나는 잠이 들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여느 때와 다름이 없었다. 아이는 힘들게 들어간 학교를 절대 휴학하지 않을 거라 말했다고 한다. 대신에 한 달만 쉬고 싶다고 했다. 짐작한 일이었지만 아들은 학교생활이 뜻대로 되지 않아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2학기가 시작되면서 다시 체력적으로도 한계에 부딪치고 있었다.


어쨌든 오늘 하루만 잘 넘어가면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딸아이 대학입시 때 먹이던 '공진단'(1개에 5만원씩이나 하는)을 꺼내 먹였다. 조금 쓰긴 했지만 짧은 시간에 기운을 차리기에 이만한 약이 없다는 생각에 억지로 먹여놓았더니 아이는 양치를 하다가 공진단은 물론 아침 식사한 것까지 모두 토해버렸다. 그것도 변기가 아닌 세면대에... 속상한 마음을 삭히며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회사로 향하던 그때 딸아이가 대화방에 이런 글을 올렸다.


"휴대폰...

변기에 빠졌어..."


단말기 할부금이 아직 16개월이나 남은 휴대폰이었다.


나의 롱샷은 언제쯤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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