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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Dec 02. 2022

고백

우울증을 앓는 아들에게(2022.08.17)

너의 아픈 마음속을 모두 헤아릴 수 있다면 세상은 나에게 아빠라는 가벼운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을 게다. 그런 전지전능한 마법이 내게 있었다면 오늘처럼 마음 졸이며 너의 안부를 묻는 일은 없었겠지. 심지가 굳지 못하고 남의 말에 쉬이 상처를 받는 건 아빠를 닮은 것이란다. 그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내 경험으로 그런 너를 너그럽게 이해해줄 세상 또한 없다는 걸 일찌감치 깨우치게 될 거야. 아니, 이미 그 단계에 이른 것 같기도 하네.


너의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드는 걱정은 네가 살면서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네 마음이 그 불행을 감당하지 못하는 거야. 유난히 예민한 너의 감성은 때로 놀라운 창의력의 원천이 되겠지만 그만큼 민감하게 너의 감정을 흔들어놓기도 할 테니까... 그때마다 네게 닥칠 우울감을 치유하는 길은 온전히 너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게 아빠는 안타깝고 슬프다. 여느 사내아이들처럼 씩씩하거나 혹은 무신경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너를 너무나 잘 알기에 말이다.


어린 시절에 넌 티 없이 맑은 아이였고, 다정한 말투와 살뜰한 배려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지. 어린이집 급식도우미 아주머니부터 동네 놀이터에 마실 나오신 할머니들까지 너의 사랑스러운 말투와 행동에 넘어가지 않은 사람은 없었어. 네가 지금도 그 시절을 그리워할 때마다 아빠의 마음은 무너지는구나. 창창한 젊은 날의 네가 10여 년 전으로 퇴행하고 싶은 이유가 무언지 알 것 같아 가슴이 미어진다.


누구도 타인의 삶을, 마음을, 감정을, 생각을 대신해 줄 수 없지만 죽음마저도 빌려가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라 아빠는 너의 버거운 하루하루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만 싶다. 네가 꿈을 꾸고, 그걸 이루어 가고, 소소한 감정에 희망을 품고, 밝고 긍정적으로 사람들과 관계하는 법을 언젠가는 터득할 것이라 믿어. 너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과 행동을 상대할 힘이 생길 거라 믿어. 그 부정적인 감정들을 조절하고 그런 공격적인 반응들을 제압하는 영리함을 너는 갖고 있지.


네 안에는 그 모든 것이 들어있어. 왜냐면 너는 아빠의 아들이고 예민한 성격마저 판박이로 닮았기 때문이지. 네 안에는 너의 우울감을 관리할 수 있는 현명함이 숨어있단다. 그걸 찾아내는 일에는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의지만 있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야. 그렇게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익히게 될 거야. 그럼에도 너의 우울감은 불쑥불쑥 너를 찾아오겠지. 그때마다 너는 그 녀석을 잘 달래주어야 돼.


때론 그 녀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지만 그 녀석과의 스킨십은 가볍게 가야 해. 그 녀석은 너에게 무한한 예술적 감성을 일깨워주겠지만, 마약과도 같이 너의 몸과 마음을 치명적으로 좀먹을 테니까. 너는 아주 가끔 그 녀석을 품어주면 돼. 그리고 네 안에 충만한 긍정을 끌어내면 돼. 아빠는 언제나 너를 응원해. 열 번쯤 싸운다면 서너 번은 져주어도 돼. 그래도 반드시 여섯 번은 이겨야 돼. 넌 할 수 있어. 넌 마법 같은 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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