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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Dec 19. 2022

짐을 지다

부모가 된다는 것(2017.11.07)

성인이 아이와 다른 건 사회적으로 온전히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당연히 권리를 향유하는 만큼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게 성인에게 권리와 책임이 주어지는 것은 사리분별이 가능한 지적 능력과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스무 해 동안 정상적인 사회화 과정을 거쳤다면 말이다. 개인에 따라 그러한 자격을 갖추지 못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설령 그만한 역량에 미달하더라도 성인으로서의 책임에서 면책되지는 않는다. 법적으로 행위능력을 상실했다는 선고를 받지 않는 한.


어려서는 나름 지각 능력을 갖췄다고 스스로 느낄 때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이 답답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인생의 진로를 개척해야 할 때 다시 무거운 현실감을 감당하기 어려워 벗어나고 싶어 지기 마련이다. 세상은 냉정하고, 나의 서글프고 억울한 사연쯤이야 귓등으로도 들어주지 않는다. 들어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 엄중한 세상의 규칙을 깨닫기까지 우린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며, 그 과정에서 똑같이 타인에게 관대하지 못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이 순환과정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반복되었으며, 우리는 부모라는 멍에를 쓰고 자식을 사람 구실 하는 사회 구성원으로 키워내기 위해 온갖 애간장을 태우게 된다. 천둥벌거숭이처럼 겁 없고 물불 가리지 못했던 아이들도 또 누군가의 부모가 되었을 때 그 엄혹한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며, 철없던 과거는 까맣게 잊은 채 꼰대가 되어 제 아이를 가르친다.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이미 당신의 머리에는 백발이 성성하고, 몸은 노쇠하여 말을 듣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나이를 먹고, 부모 노릇을 하다가 세상을 등진다. 내게 천근의 짐이 지워졌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만큼 늙었을 때 비로소 모든 짐을 내려놓을 것이다.


내게 천근의 짐이 지워졌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그 짐을 만근처럼 느끼면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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