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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Mar 28. 2023

뒤통수를 만져주는 여자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추억”을 보다가

우리가 살면서 가장 싫어하는 일 중 하나는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이다. 진짜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일뿐만 아니라 믿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도 똑같이 이 말을 쓴다. 그만큼 끔찍한 경험을 상징하는 말이 뒤통수를 건드리는 것이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뒤통수에 민감한 걸까?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일단 뒤통수는 뇌와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심장만큼이나 중요한 장기를 보호하고 있는 뒤통수에는 눈이 없다. 따라서 누군가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공격을 당하게 되면 충격은 배가된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뒤통수를 조심해 왔는데 잠시 방심한 틈에 여지없이 공격당하는 일이 종종 발생해 왔던 것이다.


누군가의 뒤통수를 치는 행위는 비열하고 신사적이지 못한 대표적인 행동이다.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공격을 하는 테러행위와 닮아있다. 뒤통수를 보호할 수단이 딱히 없던 인간이 뒤통수를 공격하는 행위를 그렇게 매도해 버린 걸 수도 있다. 아무튼 뒤통수는 인간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학창 시절 친구의 뒤통수를 잘못 건드리면 여지없이 싸움이 나곤 했다.


오늘 케이블 TV 채널을 무심코 돌리다가 추억의 명화, ‘바브라스트라이샌드의 추억‘을 보게 되었다. 음악이 워낙에 유명해서 그렇지 알고 보니 난 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한 일이 없었다.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어마어마한 배우가 등장하고 있지만 이 영화의 제목엔 항상 바브라~가 붙는다. 어쨌든 유명한 이 영화의 엔딩장면에서 남녀 주인공은 애틋한 포옹을 나누는데 내 눈은 여주인공의 한쪽 손이 남자의 뒤통수를 어루만지는 모습에 꽂혀 버렸다.


이 장면에서 비로소 나는 남자의 뒤통수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뒤통수는 타인의 공격에 취약한 반면 가장 중요한 장기를 품고 있어서 언제나 누군가의 손길에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가끔은 그 취약한 부위를 매만지는 것만으로 엄청난 위로를 받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엄마가 아이를 안을 때 한쪽 손은 어김없이 뒤통수를 받치고 있다. 머리를 세울 힘이 없거나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엄마의 모성이 남아있어 여자들은 남자와 포옹하면서 뒤통수를 만져주는 게 아닐까? 그런데 남자들 역시 어릴 적 엄마의 손길이 느껴져 여자들의 이런 행위에 무방비로 무장해제되는 거라는 내 가설이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젊었을 때 잠시 만났던 한 여자는 자주 내 뒤통수를 어루만져주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보다 세 살이나 어린 그 친구의 손길에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다 큰 남자의 뒤통수를 어루만지는 여자의 행위는 나에게 마법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내 아내는 단 한 번도 나와 포옹하면서 뒤통수를 만진 적이 없다. 물론 요즘엔 포옹하는 일도 잘 없다. 연애할 적에도 언제나 그게 아쉬웠지만 입 밖으로 말하긴 어려웠다. 그런 건 말로 전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한 이후에 여자와 포옹하며 뒤통수를 내 준 기억이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의 딸아이는 어릴 적 아빠의 팔 위에 안겨 걷던 시절에도 항상 조막만 한 손으로 나의 뒤통수를 만졌다. 아빠가 자기를 안고 걷는 게 불안해서였는지 아니면 어른들이 자신을 안을 때 하던 행동을 따라한 것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그저 아이의 자그마한 손과 그 온기가 내 뒤통수에 느껴질 때 나는 여느 여인의 손길 못지않은 위로를 받았다.

이제 대학생이 되어버린 딸과는 포옹할 일이 없다. 애교 없는 첫째라 그런지 스킨십에 민감하다. 아이의 사춘기가 시작된 이후로 나 역시 조심스러워 쉽게 다가서지 않았다. 입시결과가 나올 때 정도가 이 아이와 포옹이 허락되는 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면에 고등학생 아들놈은 여전히 엄마 아빠와의 포옹을 갈망한다. 우울증 치료를 받게 된 뒤 부쩍 더하다.


아빠와 스킨십이 늘어난 후 아들의 손은 꽤 과감하게 내 몸을 공략하는데 가끔은 뒤통수에 올라오는 일도 있다. 그럴 때마다 슬금슬금 부아가 치미는 것으로 보아 남자의 뒤통수는 여전히 여자의 손길에만 허용되는 금단의 영역인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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