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일지, +149일(2022.10.06)
3주 정도 정신없이 일을 했다. 어떻게든 초과근무는 하고 싶지 않아 낮시간에 집중을 했더니 며칠 밤을 새운 것 마냥 몸이 버겁다. 급기야 어제 급한 대로 일을 마무리하고 칼같이 퇴근해서 오랜만에 거하게 술을 마셨다. 3년째 먹던 고지혈증 약을 끊었더니 술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가족력이 있는 중성지방 수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약을 먹기 시작한 게 벌써 3년...
모든 양약의 공통점은 부작용이다. 처음엔 간수치가 올라갔고, 얼마 안 있어 당뇨 수치도 조금씩 높아졌다. 몇 가지 약을 돌려먹었더니 다른 부작용은 잡았는데 술맛이 이상해지는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의사에게 상담을 했더니 의아해했다. 의사는 그게 어떻게 부작용이냐고 했다. 더 잘된 것이 아니냐면서... 금연패치로 담배 맛을 잃게 하듯 내게 고지혈약은 금주의 도우미라고 생각한 것이다. 담배를 끊은 내게 술마저 끊으라니...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맛없는 술을 조금씩 꾸역꾸역 마셨다. 언젠가부터 본래 술맛이 이모양이지 하면서 위안을 했는데 약을 끊은 지 3주도 되지 않아 나는 술의 맛을 다시 느낀다. 왜 이렇게 술이 맛있는 걸까? 자문하는 순간 딸아이가 말해줘서 알았다. 아빠 약 끊었잖아... 아차... 다시 걱정이 되었다. 약을 끊고 운동과 식단 조절로 체중을 줄이리라 마음먹었는데 나는 잃었던 술맛을 찾아 버렸다. 체중은 아직 늘지 않고 있다. 물론 3킬로는 더 빼야 한다.
꼭 약을 끊으려던 것은 아니다. 3년째 다니는 병원에서 두 달에 한번 처방을 받는데 자꾸 이것저것 검사를 권하기 시작했다. 피검사야 6개월 간격으로 받는 거라 치고, 혈압과 혈당 체크야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경동맥 초음파, 복부 초음파를 주기적으로 권하기 시작했다. 왜 그 검사를 해야 하는지 묻기 전에는 얘기해주지 않았다. 그냥 주기적으로 검사하는 게 좋다는 말뿐...
나는 직장에서 매년 복지포인트로 자동결제가 되는 정기 건강검진을 받는다. 국민건강보험에서 제공하는 기본적인 검사 외에도 꽤 정밀한 검사들을 받는다. 그것도 왜 그렇게까지 받아야 하는지 모르지만 별수 없이 매년 받고 있는데, 자꾸 그것들과 겹치는 검사를 권하는 동네병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부분의 동네 내과병원이 건강검진센터를 운영하면서 각종 의료장비를 겸비하기 시작했고, 그 운영비를 뽑기 위해서는 나 같은 갱년기 남성이 타깃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고지혈약의 장기 복용에 대해서 이런저런 내용들을 알아보니 도대체 이 약은 고지혈 수치를 낮추는 것 외에는 백해무익한 약이었다. 당뇨가 오는 게 당연했고 술맛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술을 먹어서는 안 되는 약이었다. 그리고 이 약을 먹은 뒤로 나는 더더욱 식단 조절에 무뎌져 갔다. 분식류를 좋아하는 식성 탓에 탄수화물을 과다 섭취했다. 이 약으로 중성지방 수치는 조절이 가능했지만 내 몸은 병들어 가고 있었다. 치명적으로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약을 끊었다. 마약중독자도 아닌데 이까짓 약을 못 끊을 리 없다. 문제는 약 없이도 나의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범위에서 유지되는지에 있다. 가뜩이나 피로감을 느끼는 요즘의 컨디션이 약을 끊은 탓인지도 모르는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최소한 한 달은 지켜보고 혈액검사를 하려고 하는데 나는 벌써부터 근심에 빠졌다. 그 짧은 시간에 동맥경화가 진행되어 뇌경색이나 심정지가 올 리야 없겠지만 나는 띄엄띄엄 운동을 하고 아주 조금 식사량을 줄였을 뿐이다.
이제 나는 조금씩 운동을 늘리고 있으며 또 조금씩 식단 조절을 하고 있다. 생활습관을 변화시키는 것이 먼저다. 약으로 몸상태를 유지한다는 게 얼마나 많은 부작용을 가져오는지 새삼 느끼고 있다. 이제야 술맛을 찾았으니 이제 몸을 찾을 거다. 내 몸은 내가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