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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Nov 05. 2022

Mud Fighter

부끄러움을 거세한 자(2012.06.01)

진흙탕 싸움이라는 표현이 즐겨 인용되는 곳은 주로 정치권이지만, 대체로 치열한 생존경쟁이 강조되는 분야일수록 이전투구가 자주 일어나곤 한다.

 

살면서 이 싸움에 한차례라도 가담하거나 휘말려 본 경험이 없다면 당신은 진정한 선비이거나 아마도 계룡산 암자 주변에서 폭포수를 온몸으로 맞고 바위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는 수행자일 가능성이 높다.

 

세상은 갈수록 성과지상주의로 치닫고 경쟁과 탈락이 일상화되어가는 사회, 방송에는 온갖 오디션 프로그램이 범람하고, 그 사연과 치열함에 열광하는 대중이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비이성적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대한민국이 드라마 공화국이고 드라마가 한류 콘텐츠의 첨병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특유의 기발하고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은 열정으로 도배된 다이나믹 코리아의 그늘이기도 하다. 막장드라마의 설정은 특정한 사건에서 힌트를 얻었을 터이나 어느새 신문 가십거리도 안 되는 보편적인 현상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특정의 사건을 희화화했더니 많은 이가 공감하여 일반화되더라... 그렇게 진흙탕 놀이는 온 국민의 오락이요, 존재를 인식하는 수단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9시 뉴스를 보며 날치기 국회의 낯 뜨거운 행태를 비난하던 우리는 몰이성과 무개념의 포로가 되어 다섯 살배기 아이처럼 육탄 놀이에 즐거워하는 동심(?)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내 비약이 그저 비약에 그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진흙탕 놀이의 성격과 특징을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정리해 본다.

 

첫째, 진흙이 있어야 한다. 물론 충분히 많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상대를 눕혀서 함께 구를 수 있는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다만, 상대가 매우 조심스러운 사람이라면 가볍게 진흙물을 뿌려서 상대의 몸을 더럽히는 초반의 접근 기술이 중요하다.


이 싸움에 능숙한 이들은 주로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가볍게 손을 흙탕물에 저으며 이곳이 홈그라운드라는 사실을 소름 끼치도록 천연덕스럽게 각인시킨다. 대부분의 싸움은 초반 기선제압이 열쇠다. 능글맞은 웃음에 불쾌해 오던 차에 한두 방울의 진흙물이 흰색 셔츠에 흩뿌려지는 순간 당신이 진정한 Mud Fighter가 될 확률은 90% 이상이다.

 

둘째, 먼저 내 몸을 더럽힐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미 진흙투성이인 경우 상대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싸움을 거는 이가 잃을 게 없는 상황이라면 승부는 결정 난 것이나 진배없다. 따라서, 이때는 진흙탕 주변을 얼씬거리지도 말아야 하고 상대의 집요한 시비를 외면할 수 있는 정신력과 일정한 거리 유지가 관건이다.


설령 진흙물이 조금 묻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태연자약할 수 있는 연기력을 갖추었다면 상대의 기대를 한순간에 꺾어버리고 싸움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예상된다.

 

셋째, 은근과 끈기다. 웅녀인지 웅족인지 모호하지만, 우리는 곰의 아들 단군의 자손이다. 진흙탕은 맨땅이나 풀밭에 비해 심하게 행동의 제약이 온다. 따라서 엄청난 체력 소모를 동반하고, 21세기에 실종되어 가는 불굴의 헝그리 정신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진흙탕 싸움은 탄탄한 기본기 위에 쌓은 실력을 겨루는 올림픽 경기가 아니라, 규칙도 없고 심판도 없이 사각의 철창에서 누구 하나가 항복을 해야만 승부가 결정 나는 도박사들의 격투기장이라는 것이다.


그곳에는 체면도 상식도 없으며, 얼마나 전투적이고 얼마나 끈질기고 얼마나 자학적인 맹수의 야성을 지녔는가가 승부를 가른다. 당연히 정당한 승패와 성적에 따른 논공행상이 아니라 승자독식의 all or nothing이 적용되는 비인간적인 게임이며, 승자에 대한 찬사도 패자에 대한 위로도 없이 철저하게 game money가 지배하는 곳이다.

 

상처뿐인 영광도, 영광 뿐인 상처도 없이 최소한의 감정적 보상도 기대할 수 없는 비정한 세계, 그곳은 탐욕과 비뚤어진 욕망이 넘치는....

 

아... 지저분한 얘기를 꺼내다 보니 격해졌음을 느낀다.

 

결론적으로, 진흙탕 싸움은 시도해서도 휩쓸려서도 안되며, 늘 긴장하면서 경계해야만 겨우 벗어날 수 있는 현대사회가 잉태한 괴물이라는 말이다.

 

21세기와 함께  종말을 맞이해야 하는인간성을 한순간에 상실하고 황폐한 금수의 영혼이 스며드는 치명적인 유혹....

 

그래서, 이전에서 싸우는 놈은 개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집 복슬강아지 말고... 그냥 개.... 욕할 때 인용하는 그 개....

멍멍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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