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ather’s tomb

휴직일기, +15일(2021. 5. 17)

by 낙산우공

열흘이 지나서야 생각이 났다. 지난 1년 동안 아버지 산소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1991년 크리스마스 이후 한식과 추석, 해마다 두 차례 빠뜨린 적이 없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형들과 약속 잡기가 어려워지면서 한 번씩 거르는 일이 생겼다. 그때마다 형제 중에 한 명씩은 빠지는 일이 있어도 나만큼은 꼬박꼬박 출석부를 찍었다. 전라북도 부안, 서울에서 차로 이동하기엔 당일치기가 버거운 곳... 채석강으로 유명한 변산국립공원을 끼고 있는 부안군 행안면 진동리가 내 아버지의 고향이다.


고향의 양지바른 땅을 골라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묘를 선산에서 이장해 오시고는 당신과 어머니의 자리도 미리 마련해 놓으셨던 그곳에 1991년 크리스마스 차디찬 겨울비가 내리던 날, 내 아버지는 묻히셨다. 아침까지 말짱하던 얼굴로 등산을 가셨다가 오시는 길에 끔찍한 변을 당하신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커다란 멍이 든 얼굴로 의식을 잃은 채 누워계시던 모습이다. 입관식에 잠시 뵙기는 하였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영혼이 빠져나간 육신을 보는 일을 꺼린다. 물론 그럴 기회도 많지 않지만, 영화든 뉴스든 변사체가 나오는 장면은 극도로 피하게 되었다.


형들과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나는 가족들과 함께 성묘를 다니곤 했다. 꼭두새벽에 길을 떠나 30분도 머무르지 못한 채 도장만 찍고 오는 것 같은 당일치기 성묘는 너무나 싫었다. 공사다망하신 형들과 굳이 자식들의 성묘길에 끼어야 직성이 풀리시는 어머니(내 어머니는 고인에 대한 애도에 관심을 보이신 적이 없다) 덕에 우리의 성묘는 항상 토요일(어머니는 주일을 철저히 지키시는 독실한 신자셨다)로 잡혔고, 고속도로 체증이 극심한 극성수기 한식과 추석 시즌에 이 거사를 감행하기 위해서는 항상 이른 새벽부터 옆 동에 사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나와 한강을 가로질러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서 강남에 사는 형들과 만나야 했다.


일 년에 두 차례 벌초를 따로 맡겼지만 항상 산소에 가보면 무성한 풀더미와 잡초 사이에 방치된 듯 초라한 아버지의 묘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의무감에 못 이기듯 20분 남짓 건성건성 호미와 낫질을 하고 나서 3분짜리 묵념 같은 기도로 우리의 성묘는 끝이 났다. 돌아가야 할 길이 멀기에 서두르는 인상을 강하게 남기고 도망치듯 떠나가는 우리의 뒷모습을 보시며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그래도 반가우셨을까?


형들과 산소에 갈 때도 난 항상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내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사진에서밖에 뵙지 못했다. 그래서 제 사촌들은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지만 나는 꼬박꼬박 데려가려 했다. 내 길동무이기도 하였고, 할아버지의 온기를 잔디에서라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내 아버지에게 “스무 살 막내가 이렇게 장성하여 손주들을 데리고 왔어요”하고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굳이 다자녀가구도 아닌데 9인승 카니발을 탔고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를 달릴 수 있는 덕에 언제나 성묘길엔 내차를 이용했다. 돌아오는 길 꽉 막힌 경부고속도로에서 모세의 기적을 보는 듯 길이 열리는 경험을 하며 형들이 질러대던 탄성은 나의 심기를 뒤틀리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들은 전용차로가 끝나기 전 만남의 광장에서 유유히 자신의 차로 갈아타고 집으로 향했으며 난 숨막히는 한남대교를 넘어 한시간 가까이 토요일 오후의 서울을 만나곤 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의 성묘길 동반자는 아내와 아이들로 바뀌었다. 내 차도 바뀌었다. 디젤차의 승차감은 버스전용차로를 제외하면 그닥 매력적이지 않다. 물론 요즘의 카니발은 과거와 다른 것 같긴 하지만... 우리는 변산의 콘도나 펜션을 빌려 여유로운 성묘를 했다. 할아버지 고향이 어떤 곳인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새만금 간척지도 가보고 채석강에도 들렀다. 곰소항의 천연 염전도 구경하고 젓갈정식도 먹어보는 성묘는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조금 멀리 고창 청보리밭에 가서 황토흙집에 묵어보기도 하였고, 토종 장어구이를 즐기기도 하였다.


그런데 오늘 성묘 가는 나는 혼자다. 큰애가 무용을 전공하면서 그 아이에게 주말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우리 가족의 주말도 사라졌다. 재작년에는 바쁜 큰애와 아내를 남겨두고 휴가를 내어 아들과 둘만의 성묘 여행을 다녀왔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아들은 아빠와 둘만의 한적한 여행을 좋아했고 부안 내소사의 고즈넉한 전나무 숲길은 남자 둘이 즐기기에도 충분히 이채로웠다. 아들은 내소사 기념품샵에 들러 아빠와 커플 염주를 사고 한 동안 즐겁게 차고 다녔다. 군산 이성당의 빵도 푸짐한 조개 짬뽕도 여행의 즐거움을 한층 더해주었다.


그런 아들도 입시로 바쁘다. 오늘 혼자 성묘 가는 아빠에게 가을에는 꼭 같이 가자고 말하는 아들의 버킷리스트 1번은 성묘다. 물론 자칭 절대미각의 소유자인 아들의 식탐을 자극하는 맛집과, 아빠와 둘만의 여행이 갖는 오붓함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런 즐거운 여행의 기억 속에 할아버지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 그 기억이 아들로 하여금 할아버지에 대한 좋은 느낌을 간직하도록 해준다면 나도 할아버지도 더없이 기쁜 일이 될 것이다.


내 아내도 내 아버지를 뵌 적은 없다. 그러나 성묘 여행을 통해 내게 들은 이야기로 아버지에 대한 따뜻한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나는 술을 마시다가 기분이 아주 좋아질 때마다 가족들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너희 할아버지가 아빠한테 얼마나 잘해주셨는지, 아빠를 얼마나 각별히 생각하셨는지 귀가 닳도록 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아내는 그 이야기를 지겨워하지 않고 즐겁게 들어준다. 아빠기 지금 기분이 엄청 좋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 흥을 깨고 싶지 않아서 나를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도 나는 백번도 더 들었을 그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


오늘 나는 혼자만의 성묘길에 처음으로 철도를 이용하고 있다. 편도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동승자도 없이 혼자 고속도로를 달리기는 싫었다. 역 주변에 카쉐어링 서비스를 이용하면 굳이 차를 가져가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게 성묘를 다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유명하다는 전주 콩나물국밥을 먹어보려고 한다. 서울에서 먹는 맛과 별 다를 것은 없겠지만 그래도 전주역을 거치며 전주 명물 한 가지는 경험하고 가야겠다는 마음에서다. 그리고 아이들의 입시가 끝나는 11월 성묘 여행의 사전답사이기도 하다. 벌써 아버지께서 작고하신지 30주기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이지만 마음은 즐겁다.




오늘의 감상,

아침 열차 예약을 가장 시간이 빠른 용산역으로 하였는데 주말부터 쏟아지는 폭우로 갑작스런 한기가 느껴져 옷을 갈아입다가 제 시간을 놓치는 낭패를 볼 뻔하였다. 게다가 온라인으로 출력한 홈티켓을 놓고 오는 불상사까지... 급한 마음에 지하철 1호선 용산역에서 철도역으로 환승하는 가장 빠른 방법을 검색하여 이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티켓은 코레일 앱을 다운받아 해결하였다. 나의 발 빠른 대처가 왠지 아버지의 도움이지 않을까 하는 따뜻한 생각을 해보며 오늘의 여정이 무탈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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