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근육을 만들다

휴직일기, +18일(2021. 5. 20)

by 낙산우공

10년 전쯤이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 모든 걸 내려놓고 싶던 때였다. 지금과 비슷한 상태였는데 더 젊었고 상황이 더 나빴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흔 즈음이었고 그래서 나는 10년마다 찾아온다는 인생의 대운이 매번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달라질 무렵이란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서른 즈음에도 비슷하였다. 더 젊었고 상황이 더 나빴던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 10년 전 무렵, 지치고 힘들어 어디에고 기대고 싶었으나 나를 지탱하여 줄 그 무엇도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던 시절... 우연히 TV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게 되었다. 제목은 '마음의 근육을 만들다'... 나는 그 다큐멘터리 방송을 접하고 비로소 깨달았다. 몸과 같이 마음에도 근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미리미리 그것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정신적인 체력도 바닥을 치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때 나는 몸에도 마음에도 그 어디에도 근육이 없었는데 준비 없이 중년을 맞은 것이다. 결과는 참담하였다.


그 방송을 보고 난 후 코이케 류노스케라는 일본 승려를 알게 되었고 그의 베스트셀러 저서 '생각 버리기 연습'을 읽었다. 그의 책 내용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그저 마음의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머릿속을 비우라는 것이고 그 수련방법으로 참선과 명상을 제안하고 있을 뿐이다. 별다른 것이 없다는 게 별 볼일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가 제안하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것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문제는 실천에 달렸던 거다.


그렇게 다시 10년이 흘렀고, 나는 휴직을 결행하기 하루 전날 주말에 회사에 나와 그때 따로 저장해 두었던 방송을 다시 보았다. 나는 책과 같이 기억하고 싶은 방송(주로 교양, 다큐 프로그램)의 유료 콘텐츠를 구매하여 간직하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코이케 류노스케의 또 다른 저작, '흔들리지 않고 휘둘리지 않고 담담하게(류노스케의 평상심 수업)'를 읽었다. 그렇게 4시간가량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노력 끝에 내린 결론은 휴직이었다. 내가 지난 10년 동안 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해 시도했던 많은 노력들이 모두 실패한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바로 시간의 문제였다.


내가 좋아하는 글귀 중에 '시은(市隱)'이라는 단어가 있다. 세상을 피해 시중에서 숨어산다는 뜻이다. 즉 목구멍에 풀칠을 하기 위해 저잣거리에서 돈벌이를 하더라도 속세를 떠나 고고하게 숨어 사는 처사(處士)와 같이 은둔하며 산다는 말이다. 일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옛 양반 가문의 선비가 아닌 이상 우리에게 생계는 필요조건이다. 따라서 경치 좋은 곳에 집 한 채 짓고 책을 벗 삼아 살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우린 모두 경제적 활동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생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삶을 채우는 것은 주객이 뒤바뀐 일이다.


내가 시은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조선의 여항 시인인 시은 박계강을 알게 되면서다. 여항(위항) 문학은 양반가 사대부가 아닌 하급 관리와 평민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조선 후기의 문학 양식을 말한다. 박계강의 시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한 시 몇 편 중에 생업의 고달픔을 노래한 시가 있어 소개해 본다.



먹고사는 일이 내겐 정말이지 골칫거리


지팡이 짚고 올라 아득히 먼 곳 바라보니

만경창파에 수도 없이 많은 산들

먹고사는 일이 내겐 정말이지 골칫거리

강가에서 늙어가지 못하는 신세라네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이 시는 박계강이 남산에 올라 지은 것이라고 한다. 멀리 보이는 기막힌 경관을 즐기지 못하고 생업에 치이는 평범한 삶의 현실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평생 기자 생활을 하다가 느지막이 소설가로 성공한 김훈 작가의 글 '밥벌이의 지겨움'을 읽어보면 밥벌이에 대한 애잔함이 극에 달한다. 지난 몇 년간 내 사무실 책상 앞에는 이 두 편의 글이 붙어 있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와 함께...


김훈 작가의 글에 나와 있듯이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밥은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진저리 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우리는 도리 없이 밥벌이에 나서야 하지만, 우리는 밥을 벌기 위해 일을 하지만 그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이 마지막 글귀가 늘 나의 귓전을 맴돌았다. 도리 없는 밥벌이에 빠져 나는 목표와 수단을 혼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이케 류노스케가 말하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법은 밥벌이와 병행하기 매우 어렵다. 그도 승려 신분이었기에 평정심을 가질 수 있었고 그런 삶을 권유하고 있지만, 우리의 직업은 승려가 아니다. 이것이 내가 지난 10년간 마음의 평온을 찾는 것에 실패한 결정적 이유다. 명상과 참선을 평생 함께 하였다는 스티브 잡스는 그것으로 인해 놀라운 천재성을 발휘하였는지 몰라도 누구도 그를 평온한 자로 기억하지 않는다.


나는 10개월의 휴직 기간 동안 명상과 요가를 실천할 계획이다. 최근 2주간 그 루틴을 몸에 익히고 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아내와 아이의 출근과 등교를 돕고 나면 8시 30분...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하고서 15분간 목과 허리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15분간 명상을 한 후 30분의 요가 수련을 하고 있다. 물론 아직 초보단계이지만 대략 1시간가량이 소요되는 이 절차를 평일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하고 있다. 이와 같은 루틴이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면 조계사 불교 아카데미에서 운영하는 참선 수련에 참여해 보고자 한다.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의 근육을 만드는 과정이 될 것이다. 관건은 이와 같이 만들어진 근육이 다시 생업에 복귀한 후에도 유지될 수 있도록 루틴을 지키는 일이며, 나의 더 큰 관심사는 그렇게 만들어진 근육이 일상의 삶에서 부딪치게 되는 오만가지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극복해 낼 수 있는가다. 나의 휴직 10개월은 다양한 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사실은 마음의 근육을 만들어 남은 10년을 평온하고 건강하게 밥벌이에 임하는 동시에 끝끝내 우리의 목표가 될 수 없는 밥벌이 이상의 삶을 영위해 보려는 것이다.


그 실험이 이제 시작되었다.




오늘의 감상,

휴직을 하고 나니 하루 세 끼를 해결하는 게 또 하나의 일이 되었다. 둘째가 온라인 수업을 하는 날은 아이의 취향에 따라 배달음식을 시켜 먹지만 혼자 집을 지키는 날에는 가급적 간단히 집에 있는 음식으로 해결하려는 중이다. 그런데 3일을 연 짱 찬밥을 데우고 몇 가지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려고 하니 지겹기도 하고 입맛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혼밥 한 끼를 해결하려고 거창한 요리를 배우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미식가는 아니라도 입에 맞는 음식을 찾아먹는 편이었는데 내 한 몸을 위해 수고로운 걸음을 할 만큼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라면과 계란 프라이를 벗어나 새로운 레퍼토리를 개발할 시기가 되었다. 언젠가 불행히도 맞이할지 모르는 독거의 삶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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