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일기, +25일(2021. 5. 27)
우리 집에는 지난해 추석, 생후 2개월이 갓 넘었을 무렵에 데려온 반려견 한 마리가 있다. 암컷이고 말티즈와 푸들의 교배종인 말티푸라는 아이다. 쉽게 말해 믹스견이다. 반려동물 인식표 등록을 신청할 때에도 따로 품종분류가 안되어 있었다. 물론 말티푸는 잡종 1세 이후에 품종 유지가 안되기 때문에 믹스견이 맞다. 그 분류와 달리 매우 고급스러운 취급을 받고 있지만 말이다.
이 아이는 말티즈와 푸들의 외모와 성격을 반반씩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소형 애완견들이 그렇듯 인형 같은 외모 탓에 아이들을 비롯한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이름은 호두, 동글동글 울퉁불퉁한 호두를 닮았는지 응석과 애교뿐만 아니라 유난스러운 게 참 별나다. 이 녀석의 성격과 말썽에 대해서는 따로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오늘은 이 녀석의 중성화 수술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반려동물을 길러본 경험이 전무한 아내와 유달리 겁이 많은 둘째는 처음에 이 아이를 데려오는 걸 망설였지만 아직도 인형을 끼고 사는 이 둘의 취향을 간파한 나의 예측은 적중했다. 호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둘째 가라 하면 서러울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한두 달 전 호두가 첫 생리를 하면서 중성화 수술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나는 생후 일 년도 안된 아이에게 수술은 무리라는 입장이었다. 특히 수컷과 달리 암컷은 큰 수술이 될 것이고 중성화가 건강과 수명에 필수적이진 않다는 의견을 지지하였다. 딸아이는 반대였다. 보통 첫 생리 전에 수술을 해주는 게 좋고 특히 노견이 되었을 때 치명적인 병에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는 입장이었다. 우리 딸은 나를 닮아 성격이 급하다. 호두를 데려올 때부터 가장 적극적이었던 만큼 그 애정 또한 각별하다. 호두도 딸아이를 가장 잘 따른다. 이 예민한 아이의 눈곱과 털 관리는 딸아이만 할 수 있다.
아무튼 호두가 첫 생리 때 고생하는 걸 보고 난 뒤 우리는 중성화를 결정했고 여느 애들보다는 늦은 생후 10개월이 지나 어제 수술을 하였다. 호두는 유난히 겁이 많은 탓에 유치가 빠지지 않고 대부분 남아 있었다. 터그 놀이나 이갈이 장난감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유치가 빠진다는데 이가 아팠는지 몸을 사린 덕에 12개나 되는 유치를 수술 도중에 모두 발치했다. 절개 수술도 모자라 발치까지 했으니 아이의 몸이 힘겨웠을 것은 뻔하다. 측은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어제부터 아이의 응석을 다 받아주면서 간호 중이다.
어머니 간병을 명목으로 휴직을 한 내가 엉뚱한 강아지 간병에 시간을 쏟고 있다고 비난받을 법 하지만, 나라도 집에 남아 아이를 돌보니 딸애는 마음을 놓는다. 나의 휴직은 참으로 여러 가지 이유로 절묘하고 탁월한 시기에 결행되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고 있다. 솔직히 아내와 아이들이 떠난 빈집은 쓸쓸하다. 그런데 이 녀석의 눈빛과 온기는 내가 허전함을 느낄 틈을 주지 않는다. 고마우면서 성가신 이 녀석의 이름은 호두다. 인간이 먹는 음식의 단맛을 알고 사료를 거부하기 시작한 호두다.
오늘의 감상,
어제 수술을 마치고 집에 온 뒤 모든 음식을 거부하는 호두는 가장 좋아했던 습식사료까지 거들떠보지 않았다. 약을 먹여야 하기에 소낙비가 쏟아지는 아침부터 샵에 들러 각종 보양식을 사 왔다. 최근 닭가슴살에 눈을 뜬 호두는 닭가슴살을 품은 수제 삼계죽을 정말 게눈 감추듯 해치웠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몸이 축났을 땐 보양식이 최고... 오늘 저녁은 삼계탕이 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