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졸한 분노

휴직일기, +30일(2021. 6. 1)

by 낙산우공

나이가 들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화를 잘 낸다는 것이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분을 참지 못해 터뜨리는 분노가 아니라 화가 나게 한 불합리한 상황과 이유를 조목조목 따져가며 감정을 표출하는 일이 잦아졌다. 화를 내는 요령이 생긴 것도 같았고 자뭇 세련되어 간다는 착각도 했다. 어릴 땐 좀 억울하고 분한 일을 겪더라도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많았다. 내성적인 성격 탓도 있었고 나 하나만 참으면 분위기를 망치지 않고 적당히 넘어가겠거니 하는 기대 때문이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무난한 사람으로 각인되어 갔다.


그런데 제때 제대로 화를 내지 못하면 같은 상황은 늘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나는 더더욱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런 경우가 잦아질수록 마음은 무거워져 갔고 그렇게 쌓인 화가 폭발하게 되면 난 정말로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 같았다. 그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부당한 일을 강요당했을 때 그것이 어째서 불합리한지 차분하게 조목조목 이야기하면 그만이었다. 난 꽤 논리적인 사고력을 갖고 있었고 그 논리를 꽤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재주가 있었다. 언젠가부터 난 주위 사람들로부터 점잖고 조용하지만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사람으로 인식되어 갔다.


그렇게 적절하게 불쾌한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상대가 나를 만만하게 대할 수 없도록 하는 일은 사회생활, 특히 직장에서는 필요조건이 되어 갔으며, 그렇게 습득된 화내는 기술은 일상생활 여기저기에서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었다. 간혹 학교에서 부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한 내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변호해 주었고 무지한 고객을 우롱하는 기업이나 영업점들을 응징하기도 하였다. 정보의 비대칭이나 몹쓸 갑을관계를 이용한 횡포에 난 분연히 맞섰고 대부분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정신적 감정적 소모는 차치하고 말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은 나의 기술이 맥을 추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곤 한다. 논리적인 주장과 합리적인 판단이 무력화되는 일은 직장 내에서 비일비재하다. 그런 경우는 대체로 위계와 권력구도에 따라 의사결정이 작동되는 집단이 갖는 필연적 한계다. 최근 국내 굴지의 IT기업에서 부당한 상사의 처우에 상처 받은 직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안타까운 기사와 같이 자의식이 강한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내상을 입히기도 한다.


나에게 가사휴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경제적 손해를 떠나 탁월한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의 자유로운 낮과 밤을 때때로 지배하는 우울감의 그림자도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분명 휴식이 필요했지만 그런 상황에서 그런 맥락으로 감행한 이유는 불합리하고 부당한 조직관리에 대한 분노였다. 6개월에 걸쳐 야금야금 내게 화를 북돋우었던 존재에게 나는 갖은 합리적인 논거를 들이대었지만 그의 폭주를 막을 수 없었으며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이 비루한 휴직뿐이었다. 그 결과, 조직 내에서는 그와 나의 불안한 동거에 균열이 심각했다는 것을 인지하였고 나는 복직 후에는 다시 그와 같이 근무할 일이 없어진 것은 명확하다.


내가 느끼는 분노의 뿌리는 무엇일까? 한 달 동안 명상과 요가, 갖은 생각 버리기 수련에도 불구하고 불현듯 뜬금없이 솟아나는 분노의 원천을 곰곰 생각해 본 결과는 무력감이었다. 그는 분명 내가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끊임없이 조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력한 저항으로 일관하였다. 내 저항이 무력했던 이유는 어떤 실력행사도 동반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더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속한 조직이 결국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관료조직이었기 때문이다. 연공서열이니 학연, 지연이니 하는 구태가 자취를 감추어가는 21세기에도 신분보장과 진입장벽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관료조직은 건재하다. 그 공고함의 역사가 깊기 때문이다.


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태생적으로 삐딱한 시선을 지녔고 그 근거가 취약하지 않기도 하다. 그런 내가 공직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는 나 스스로에게도 고민이 깊었던 부분이다. 그러나 공직사회에서도 나와 같은 캐릭터가 필요하다는 것이 내 결론이었고 그 솔직한 생각을 여과 없이 드러내었던 경력직 채용면접을 통해 나는 임용되었다. 때때로 적응하기 힘든 분위기에서 갈등도 있었지만 그렇게 나는 10년의 공직생활을 나름대로 성실하게 꾸려왔고 그렇게 평가받아왔다고 자부하였으나 이번 일로 많은 것이 무너져 내렸다.


국가공무원법 제57조에 따르면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난 이 조문을 늘 책상 앞에 붙여놓고 근무하였다. 결국 이 한 줄의 의무가 나로 하여금 무력감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관료주의라는 말은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내게 공직자의 자세를 가르쳐주었던 고위 관료 출신의 한 교수님은 국가와 사회를 지탱하는 관료사회의 가치를 말씀하시면서 관료주의가 때로는 국가를 유지하는 '항상성'을 제공한다고 하셨다.


항상성은 생명체가 최적 조건에서 벗어나는 변화를 최소화하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즉 관료사회는 국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항상 최소한의 변화만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직사회가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응 수긍이 가는 이야기였고, 공직에 발을 들인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많은 것이 혼란스러웠던 시절 나를 잡아주었던 말이기도 하였다.


나는 10년이 조금 넘는 민간경력과 10년이 조금 넘는 공직 경력을 보유한 다소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리고 앞으로 10년이 조금 넘는 기간이 지나면 정년을 맞는다. 나의 경력이 정년에서 멈출지 그 뒤로 이어질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 이유가 앞에서 말한 분노 때문만은 아니다. 10년의 세월 동안 누적되어 온 많은 생각들이 나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10개월의 가사휴직이 내게 남은 10년의 답을 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시작하였지만 이제 한 달을 넘기는 나에게 그다지 명쾌한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당연한 것이지만 말이다. 앞으로도 내 생각을 비워내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깨닫는 것이 조금씩은 나타날 것이라 믿는다. 첫 달을 보내면서 벌써 큰 것 하나를 건졌기 때문이다.


내가 나름의 파격적인 휴직을 결정하게 된 배경에서 나는 한 달 내내 자유롭지 못하였는데 오늘 비로소 한 가지를 깨달았다. 우연히 김수영 시인의 탄생 100주년 기념 기사를 보다가 그의 유명한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한 부분을 읽게 된 것이다. 시를 많이 읽지 않는 편이지만 백석과 기형도 선생님의 시를 좋아한다. 특히 기형도 선생님의 '엄마 생각'을 매우 사랑한다. 김수영 선생님은 워낙에 현대문학사에서 저명한 분이고 강렬한 눈빛의 흑백사진만으로도 충분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계시지만 그분의 시를 미처 찾아 읽지는 못했다. 그런데 아주 우연히 첫 문장을 보고 놀라 그 시의 전문을 찾아 읽고 나서 나는 전율하였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첫 문구는 이렇게 시작하고 아래와 같이 끝을 맺고 있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 중략.....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이 시가 나의 옹졸한 분노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한 달 동안 끙끙대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주었다. 마흔을 넘기면서 시를 읽기 시작했다. 왜 사람들이 시를 읽는지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다.




오늘의 감상,

나는 오늘도 새벽부터 분주하였고 오전 내내 명상과 요가에 몰입하였으며 그 뒤로 가사에 전념하였다. 그 중간중간 불쑥불쑥 들어오는 생각 속에서 허우적거렸고 두어 차례 서운하였으며 서너 차례 분노하였다. 그리고 이 밤에 시를 읽는다. 내 마음은 차분해졌으며 이제 옹졸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어렴풋이 본 것만 같아 반갑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Nursing my pup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