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food, comfort food

휴직일기, +34일(2021. 6. 5)

by 낙산우공

얼마 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국민 방송인 유재석 씨가 을지로 주변의 허름한 음식점에서 라면을 먹는 장면이 나왔다. 내 취향과 같이 푹 삶은 라면 면발을 한 젓가락 들어 올리는 그 장면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난 그날 라면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였다.(아내와 아이들은 덜 익은 꼬들면을 좋아한다) 그의 라면 사랑이야 익히 유명하기도 하였지만 방송에서도 자신의 소울푸드라고 공언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 라면을 사랑하는 이가 어디 그뿐이겠는가 하면서도 자신의 소울푸드라 단언하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 둘째 녀석의 이번 학기 영어 수행평가는 쓰기와 말하기였는데 주제는 “My comfort food”였다. 자신의 컴포트 푸드에 대해 주어진 문법과 어휘를 사용하여 일곱 문장 이상을 작문하고 그 내용을 암기하여 발표하는 게 평가의 주요 내용이었다. 아들의 학업을 보조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나는 네 번의 수업에 걸쳐 진행되는 수행평가를 주의 깊게 지켜볼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아들의 컴포트 푸드가 밀크티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주말이면 8시간 이상을 미술실기 수업에 매달리는 아들은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절정에 달했을 때 밀크티로 위안을 받는다고 한다. 아들의 미술학원이 끝나는 밤늦은 시간이면 아내는 어김없이 밀크티를 미리 준비해 달라는 문자를 아들에게서 받는다. 그렇게 힘들고 고달픈 삶을 위로해 주는 음식이 있다는 것은 각박하고 황량한 세상살이에 조금은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그것이 밀크티이건 라면이건 말이다.


4년 전이던가 홍콩 여행에서 유명하다는 국숫집을 찾아가느라 구글맵을 켜놓고 한참을 헤맨 적이 있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갔더니 대기 줄이 길어 또 한동안을 서서 기다렸다가 먹게 되었는데 그때 국수와 함께 나온 것이 시원한 밀크티였다. 커다란 원탁 테이블에 앉아 일면식도 없는 이들과 뒤섞여 먹었던 그날의 밀크티와 국수는 지금도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 모두의 단골 이야깃거리 중 하나다. 아마도 그때가 아니었던가 싶다. 아들은 처음으로 비지땀을 흘리며 낯선 외국의 밤거리를 헤매었고 늦은 시간에 주린 배를 달래주었던 밀크티와 국수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그 탓인지 아들은 밀크티도 국수도 잊지를 못한다.


먹방이니 쿡방이니 온통 먹는 얘기뿐인 세상이지만 나의 소울푸드라는 걸 굳이 생각해 본 일이 없다. 먹는 걸 즐기고 나름의 취향이 있어 분명한 기호음식이 있지만 그중 나의 삶에 위로가 되는 음식이 있었는지를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명색이 소울푸드니 컴포트 푸드니 하려면 잊지 못할 사연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할 것만 같다. 그래서 곰곰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삶의 위로가 될만한 것이 있었는지를...


가장 먼저 떠오른 음식은 냉면이다. 난 라면, 짜장면, 칼국수, 냉면 등등 면류에는 환장을 하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냉면은 장르와 가격대를 불문하고 좋아한다. 유명한 장충동의 평양냉면에서부터 오장동의 함흥냉면, 거기에 엄청나게 매운 양념과 육수에 푸짐한 면으로 승부하는 정체불명의 값싼 냉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냉면을 사랑한다. 그러나 냉면을 소울푸드라 명명하기엔 무언가 아쉬움이 남았다. 특별히 냉면을 좋아하게 된 계기나 사연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치찌개, 청국장, 설렁탕, 육개장... 다양한 음식이 떠올랐으나 모두 그저 나의 입맛 취향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에 문득 두 가지 음식이 떠올랐다.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그들 음식의 이름은 다름 아닌 김밥과 만두... 떡볶이와 함께 흔해 보이는 분식집 단골 메뉴인 김밥과 만두가 무에 그리 특별하길래 소울푸드의 반열에 올랐을까 궁금해질 법하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김밥과 만두는 분식집 메뉴가 아니다.


난 집에서 직접 만든 김밥과 만두를 사랑한다. 어릴 땐 제법 식탐도 있었고 포만감을 느끼지 않으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만족스럽지 않았으나 요즘은 소식을 하는 편이다. 양이 줄기도 하였고 포만감을 느끼고 나면 속이 거북해져서인지 맛있는 음식이라도 적당히 먹는 걸 즐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가 터질 것처럼 불러도 신기하게 계속 들어가는 음식이 바로 집에서 한 김밥과 만두다.


나의 김밥과 만두 취향은 사실 엄마의 손맛이다. 내 어머니는 음식 잘하기로 유명한 전라도 분이시라 참 다양한 요리를 맛깔나게 해 주셨다. 나는 그중에서도 김밥과 만두를 각별히 사랑하였다. 소풍날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엄마 옆에서 김밥을 자르는 족족 받아먹었다. 식구가 많은 탓에 김밥이 산처럼 쌓이게 하셨으니 난 하루 세끼를 김밥으로 해결해도 전혀 물리지 않았다. 대학 때도 가끔 엄마의 김밥을 도시락으로 싸가서 학생식당에서 먹곤 했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친구들 때문에 항상 2인분 이상을 준비했다.


만두는 이북 음식이라 엄마가 하실 줄 몰랐는데 내가 중학생 때 이웃집 아줌마한테 배운 뒤로 우리 집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눈썰미와 요리에 대한 감각이 남다르셔서 한번 레시피를 배운 요리는 다양하게 응용하면서 당신만의 맛을 내곤 하셨다. 만두는 손이 많이 가는 대신에 금세 먹어치우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그래서 정성스럽게 만두를 빚는 게 쉽지 않다. 시중에 파는 만두의 맛이 집 만두만 못한 이유는 결국 재료와 정성의 차이일 것이다. 한 번은 온 가족이 오후 반나절 동안 만두를 빚은 적이 있는데 그중 절반 가까이를 저녁 한 끼로 해치운 적도 있다. 그때도 내가 혁혁한 기여를 했지만 말이다.


나이를 먹으면서부터 엄마와의 사이는 점점 나빠졌다. 어릴 때도 잘 맞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로 내 어머니께서는 자식들을 힘들게 할 때가 많으셨다. 우리 세대의 여느 어머니들처럼 희생과 헌신의 아이콘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난 3남 1녀의 막내지만 엄마 곁에서 14년째 살고 있다. 노년에 홀로 외롭게 사시는 모습을 볼 수는 없어 가까이 살고 있지만 아내와 아이들에 비하면 늘 그분과 데면데면하다. 서운함이 깊어진 일들이 꽤 있었지만 그런 구차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나는 집에서 한 김밥과 만두를 여전히 사랑하며, 운이 좋게 엄마의 맛은 아니어도 제법 정성스레 김밥과 만두를 빚을 줄 아는 아내를 얻었다. 김밥과 만두가 내게 소울푸드인 이유는 단순하다. 난 지금도 아내가 해준 김밥과 만두를 먹으며 엄마를 생각한다. 우리 집 옆 동에 사시는 완고한 엄마가 아니라 나를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김밥을 싸던 엄마가 떠오른다. 그 엄마는 정신없이 김밥을 싸다가 옆에서 잠이 든 나를 잠시 품어주던 엄마다. 외풍이 심한 주택의 아침, 서늘한 기운에 감기 들지 모르는 막내를 따뜻하게 안아주던 엄마다. 김밥과 만두를 먹으면 잠시 세월을 거슬러 엄마를 본다. 내게도 따뜻한 엄마가,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던 엄마가 있다. 내게 김밥은, 내게 만두는 그래서 보고 싶은 엄마다.




오늘의 감상,

아들이 학원의 앉은자리에서 30분 만에 뚝딱 해치우는 식사가 안타까웠던지 아내가 새벽부터 김밥을 준비하였다. 덕분에 나의 주말은 풍요로와졌다. 나는 하루가 지나 약간 쉰내 나는 김밥도 잘 먹는다. 물론 아내가 직접 만든 김밥에 한해서 말이다. 분식집 김밥메뉴는 충무김밥, 꼬마김밥, 마약김밥을 빼고는 질색하는 편이다. 김밥은 누가 뭐래도 정성인 모양이다. 값비싼 고급 김밥도 내 입에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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