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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Apr 15. 2023

예동마을

성묘를 다녀오다

거제에서 아버지의 산소까지는 300킬로미터 가까이 되는 거리다. 경상도에서 지리산을 지나 전라도로 넘어가는 길은 고속도로가 뚫려 이제 3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게 되었지만 험한 주변 산세를 보며 지나려니 왜 백제와 신라 때부터 두 지방이 다른 말투와 문화를 갖게 되었는지 알 법도 했다.


아들과 할아버지 성묘를 다닌 지는 꽤 오래되었다. 입시 때문에 바빴던 한 해를 빼고 나면 매해 두 번씩은 꼬박꼬박 다녔다. 사진으로 밖에 뵌 적 없는 할아버지를 유독 챙긴 이유는 여러 가지겠으나 짐작컨대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컸다. 살아계셨다면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셨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내 아쉬움이 아들의 판타지를 부추겼을 것이다.


거제에 가면 꼭 다녀오리라 진작부터 아들과 약속한 길을 오늘 12일 만에 결행하였다. 아침 8시에 출발하자던 계획은 식사를 챙겨주다가 한 시간이 늦춰졌지만 교통체증이 없는 동네라 12시 좀 넘어서 산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는 동안 억수같이 비가 퍼부었지만 산소 근처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잦아들어 성묘에 지장이 없는 부슬비가 되어 있었다. 꼭 30여 년 전 아버지 발인날 같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는 아버지 돌아가신 뒤로 모든 제사를 전폐하셨으며 산소에서도 항상 국화꽃다발에 기도를 드리는 걸로 갈음하셨다. 그게 못내 아쉬웠던 나는 결혼 전 아내와 함께 성묘를 와서 북어포에 소주 한잔을 따라드리고는 세상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게 벌써 21년이 지난 일인데 아들의 제안으로 이번엔 좀 더 거한(?) 상을 차려드렸다.


“주과포혜”라고 성묘 차례에는 술, 과일, 건포, 식혜를 준비하라기에 편의점 오징어포에 비락식혜를 급조하였다. 차례상으로는 형편없지만 이장을 앞둔 내 아버지께서는 우리 부자의 마음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어본다.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건 아버지의 유언이셨다. 다음 달이면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까지 세분의 묘를 서울근교로 이장하기로 했다. 추모공원의 봉안묘를 분양받아 옮기게 되었으나 30여 년 만에 고향을 떠나는 아버지께 술 한잔은 올리고 싶었다.


때마침 그친 비로 무사히 성묘를 마친 뒤 서울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던 때보다 마음이 여유로웠기에 평소 즐겨가던 갈치조림 전문점에서 식사를 하고 곰소염전의 유명한 빵집에도 들르기로 했는데 아들의 우울증 약이 변덕을 부리기 시작했다. 오후 2시 전후로 입맛을 급격하게 떨어뜨리는 통에 우리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거제로 돌아와야 했다.


덕분에 8시에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후 아홉 시간을 넘겨서야 식사를 하게  되었고 나는 내리 6시간 넘게 운전을 했다. 아들과 생활하다 보니 이런 일은 일상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변덕에 자신도 무안했던지 갖은 핑계를 대는 아들에게 나도 모르게 쌀쌀맞게 대해버렸더니 바로 시무룩해져 헤드셋을 쓰고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듣는줄 알았던 아들이 한마디 했다.


“나도 수시로 변하는 내 마음이 못마땅해. 그래서 어떻게라도 합리화를 하고 싶었던 거야.”


그 마음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그 마음에 매번 휘둘리는 게 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지 난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없는 일은 매일 수시로 일어나니 난 50년 넘게 헛살았다. 아픈 아이 하나 돌보지 못한다. 아버지를 뵙고 왔는데 다시 아빠(?)가 보고 싶다. 돌아오는 길에도 비는 억수같이 내렸다. 오늘은 하늘이 나 대신 울어준 것 같다. 성묘 다녀온 오징어포에 남은 소주라도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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