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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Apr 21. 2023

홍철책빵 서커스점

하고 싶은 거 하thㅔ요

이곳에 가고 싶다고 말 한 건 거제에 내려가기로 결정했던 날부터였다. 첫날은 일정이 너무 많았고 거제에서 김해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니 천천히 가보자 했다. 그러더니 언젠가부터 여기 얘길 하지 않기에 이렇게 못 가보고 지나가나 보다 했었다. 오늘 오후 숙소에 틀어박힌 지 이틀이 다 되어가면서 네가 급격히 가라앉기 전까지는 그랬다.


꿈을 많이 꾸었다면서 12시가 다 되도록 일어나지 못하던 너는 아빠가 사 온 소금빵에 주스 한잔을 마시고는 또 잠수를 타기 시작했지. 거실에 에어컨을 틀어놓고 이불을 돌돌 말아 애벌레가 되어서는 핸드폰 동영상에 초점 없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내가 밀린 설거지를 마치고 샤워를 하는 동안에도 너는 그렇게 있겠거니 했었다. 그래도 침실이 아닌 거실에 나와 있으니 다행이라고 여겼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내 앞에 던져진 스케치북을 보고도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네가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려 했는데 너무 엉망으로 그려서 현타가 왔다고 말할 때까지 난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어. 점점 가라앉는 너를 달래 점심약을 먹이고 홍철책빵을 가기로 했을 때에도 이틀 만에 밖을 나서게 되었구나 좋아했지.


한 시간 좀 못되어 도착한 홍철책빵 주차장에는 빈 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손님이 왔다는 것을 알았지만 주차할 곳을 찾느라 붐비는 카페에서 내가 힘들어할 것은 크게 걱정하지 못했어. 그래도 사람이 적은 창가자리를 고른 건 아빠의 배려였다고 믿어주길 바란다. 다만 블라인드 없는 창에 봄볕이 따가운 것도 그곳이 한산했던 이유였지. 어쨌든 그곳은 평일에도 핫플레이스였어. 거제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말이야.


기념품을 고르고 기분 좋게 나갈 뻔했는데 뒤늦게 화장실에 가려했던 내 잘못이 제일 컸다는 건 알아. 특히 붐비는 홀 앞에서 너를 5분 가까이 홀로 세워 놓았으니 아빠는 정신이 나간 게 분명해. 조만간 서울에 올라가면 숱하게 마주치게 될 이런 상황에서 너를 어떻게 케어해 줄 수 있을까 네가 불안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런데 너에게 사과하면서도 아빠의 표정이 굳어진 건 그만큼의 이유가 있단다. 제아무리 배려심 많고 섬세한 인간도 누군가를 자기의 몸처럼 보호해 줄 순 없어. 특히 순간순간 돌변하는 너의 신체증상을 알아차리기도 힘드니까. 일상으로 복귀를 계획하는 너의 입장에서는 마냥 아빠 탓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걸 숨길 수 없었다.


숙소에 돌아왔을 때 내가 조금 진정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놓이지만 너도 마음의 준비와 연습이 필요한 시기란 걸 잊지 않길 바랄게. 제멋대로인 것 같지만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고 있는 홍철에게서 네가 조금의 영감을 받았으리라 믿어. 내가 좋아하는 노홍철이란 캐릭터를 아빠도 좋아하고 응원한단다. 홍철책빵의 냅킨에 쓰인 글귀가 아빠는 아주 마음에 들어.


“하고 싶은 걸 하thㅔ요”


하고 싶은 걸 해도 돼. 우린 그럴 자격이 있어. 어리석고 소심해서 자꾸 잊어버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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